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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욱 Jan 05. 2024

2024년은 인생의 터닝포인트

종로로 갈까요? 명동으로 갈까요? 차라리 청량리로 떠날까요?

2024년 청룡의 해 갑진년 새해가 시작된 지 5일이 지나간다. 신정 하루 쉬고 4일 근무하니 새해 첫 주가 쏜살같이 지나간다. 예년 지금쯤이면 동해바다를 찾거나 영험한 높은 산에 올라 새해의 연간계획을 야심 차게 설계하고 심기일전하며 삶의 의지가 충만할 시점이다. 지난해 소중한 사람들과 인연을 생각하며 전화나 문자로 감사인사를 건네고, 올해의 4자성어를 스크랩하여 업무수첩 맨 앞에 부착하며, 동문회, 향우회, 직장동료 모임 등을 준비하고, 체중감량, 어학학원 등록 등 반복되는 자기 계발 계획을 촘촘히 수립할 시점이다. 


그런데 2024년 새해가 시작된 지 5일이 지났지만 아직도 무엇을 해야 할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신년 계획수립은커녕, 직장에서 지급받은 2024년 업무수첩 맨 뒤에 이름 석자도 적지 않고 있다. 몸은 사무실에 있지만 마음은 허공을 맴도는 유체이탈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1997년 직장생활 이후로 지금 같은 경험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의욕도 없고 그냥 시간에 몸을 맡긴 채 하루하루 무기력하게 보내고 있는 기분이다. 사춘기를 능히 이긴다는 50대 갱년기 증상인가? 중년의 남성에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다는 권태기인가?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고 유튜브를 이리저리 검색한다. 알고리즘 덕분인지 은퇴 후 중년의 삶, 재테크 전략, 건강관리 등과 관련한 영상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보면 볼수록 우울하다. 유튜브를 닫고 브런치스토리에 접속한다. 2023년 5월 브런치스토리에 첫 글을 올리고 연말까지 총 38편의 글을 올렸다. 그래도 글을 쓰고 있으면 편안한 의자에서 잔잔한 호수를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마음이 평안해진다. 브런치 구독자수도 51명이나 된다. 저분들이 내 글을 읽는다고 생각하니 한 자 한 자 쓰는 글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다


비어있는 브런치 화면을 보니 브런치가 나에게 손짓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무 생각이나 자유롭게 글을 써 보라고... 항상 브런치에 글을 올릴 때는 특정 주제를 생각하고 글을 올리지만 지금은 주저리주저리 선술집에서 죽마고우와 편하게 막걸리 한잔 기울이며 넋두리하듯 무의식적으로 키보드 자판을 두들기고 있다.  


신년 벽두부터 가슴 한편을 짓누르며 가야 할 목적지를 설정하지 못하고 마음을 무겁게 하는 정체는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대한민국을 국가부도의 위기상황으로 몰고 간 IMF 구제금융이 시작될 즈음인 1997년 의왕시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하여 총 26년을 공직에 몸담고 있다.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니 편안하고 안락한 고급 승용차는 아니지만 편안한 통근버스를 타고 4차선 도로를 편안하게 달려온 기분이다. 각종 교통사고의 위험도 있었지만 신호등 잘 지키고 경찰 수신호 잘 따르며 운 좋게 사고위험에 노출되지 않을 수 있었다. 

무난한 여정이었다. 비록 내가 운전수가 되어 버스를 내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운전할 수는 없고 속도를 내 마음대로 올릴 수도 없지만 그래도 일정시간이 지나면 편의시설 잘 갖추어진 정거장에 정차하여 출발시점보다는 멋진 풍경을 볼 수 있고 휴게소 음식도 비싼 것을 먹을 만큼 부수적 혜택이 부여되고 있다. 


그런데 어느덧 시계를 보니 목적지에 도착할 시점이 가까워 온다. 통근버스에서 내려야 한다. 그리고 나만의 승용차로 갈아타고 새로운 길을 가야 한다. 통근버스를 타고 계속 주행하고 싶어도 통근버스를 더 이상 탈 수가 없다. 다른 사람들을 태워야 하기 때문이다. 선배들과 대화해 보니 통근버스에서 내려서 후련하다는 사람도 있고, 더 이상 통근버스에 승차하지 못함을 아쉬워하는 사람도 종종 보게 된다.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달력을 보니 2024년 1월이다. 26년의 공직생활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1999년 의왕시 내손동 택지개발사업추진과정에서 시청 광장에서 철거민들과 대치하던 기억, 2003년 손학규 지사 재임시절 서울대 황우석 교수 프로젝트 등 광교 테크노밸리 조성사업, 2005년 의회에서 공무국외연수를 담당하며 스페인, 미국, 유럽 등 전 세계를 누비며 국제교류를 담당하던 기억, 2015년 공직감찰 업무 유공으로 박근혜 대통령에게 대통령 표창을 받은 기억, 2017년 사무관으로 승진하던 모든 순간이 생생한 파노라마처럼 떠오른다. 


그러나 문득, 달력을 보니 퇴직할 날이 많이 남지 않았다. 2028년 6월. 공무원의 굴레에서 벗어나 합법적으로 자연인이 되는 순간이다. 통상적으로 공로연수기간 1년을 감안하면 3년 6개월 통근버스를 타면 나도 미련 없이 통근버스에서 내려야 한다. 그런데 통근버스에서 내려서 퇴직 후 인생 후반기 새로 이용할 교통수단에 대한 준비가 부족하다. 두려움이 엄습해 온다. 평생 열심히 일했는데 퇴직 후 굶고 살겠어? 나만의 확신은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유튜브를 통해 산산조각이 났다. 삼성 등 글로벌 초우량기업 임직원과 공직 최고위층으로 퇴직한 은퇴자들의 삶을 취재한 영상을 보면 준비하지 못한 은퇴는 축복이 아닌 재앙임이 분명하다


직장 생활하며 26년 동안 매년 신년이 되면 거창한 계획과 스케줄 등으로 업무수첩을 가득 채우며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반복적인 일상이 지금 이 순간 의미 없다고 느껴진다. 아마도 지금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재의 무기력함은 미래의 불안감에 대한 공포가 트라우마처럼 작용한 것이 아닐까? 


나에게 주어진 3년 6개월의 제한된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다. 편안하지만 천천히 목적지를 향해 운행하는 통근버스에서 2028년 6월 폼나게 하차하여 인생의 새로운 여정을 시작할 멋지고 쌈박한 교통수단으로 갈아타야 한다. 나의 애마로 때로는 산과 바다를 찾아 직접 클라이밍도 해보고 낚시도 하며 나만의 행복을 만끽할 준비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2024년은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르지만 새로운 인생의 출발을 위한 터닝포인트(Turning Point)로 한해의 순간을 채워야 하겠다. Brabo my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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