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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욱 Dec 27. 2023

2023년 Best 5 브런치에 기록하다

성탄절 이후 약간의 여유로움이 피부로 느껴진다. 책상 위 달력을 흠칫 바라본다. 2일 출근하고 주말을 보내면 2023년 계묘년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문득 지난 한 해가 궁금해진다. 나에게 2023년은 어떤 시간이었을까? 2023년을 소환하기 시작한다. 페이스북과 브런치스토리에 올린 글과 사진을 검색한다. SNS를 시작하면서 과거를 기억하는 나만의 방식이다. 특정시점에서 의미 있는 시간, 기억에 남는 사람과 만남, 둘이 먹고 셋이 죽어도 모를 맛집 등을 기억하는 것은 삶을 풍성하게 하는 나만의 레시피이다. 연말이 되면 방송국에서 연예대상, 연기대상 등 각종 시상식이 성대하게 진행된다. 그런 곳에서 상 받을 일은 평생 없을 것이고 내가 기억하는 2023년 Best 5를 기억하며 브런치스토리에 기록으로 남기는 의미 있는 작업에 도전한다. 도전!


 1. 첫 해외 가족여행(베트남 다낭)


2023년은 아내를 만나 가정을 이룬 지 25주년 되는 해이다. 세상에서는 은혼식이라 명명하며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만 별다른 세리모니는 없었다. 돌이켜보면 부부가 될 수 있는 공통점을 찾으래야 찾을 수 없는 천양지차 외모와 대조적 성격을 보유한 남녀지만 부부의 인연으로 25년을 살아온 것이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마도 희생의 양을 계량화 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아내가 겪은 고통은 나보다 20배는 넘었으리라 추정할 수 있다. 그래도 아내는 즉시, 겉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보다 남편이 변화하기를 기다리는 현숙함이 돋보이는 여인이다. 아내의 지혜로움과 인내로 이제는 힘조차 발휘하지 못하는 평범한 아저씨로 전락하여 부부싸움조차 되지 않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아내를 힘들게 한 부분은 평생 갚아야 할 빛으로 남아 있다.  


결혼 25주년 기념일에는 특별한 행사를 치르고 싶었다. 아내에게 해외여행을 제안했다. 결혼 초부터 지속적으로 기획한 이벤트이지만 새벽기도를 하루도 빠질 수 없는 독실한 크리스천 아내에게 해외여행은 넘지 못할 벽이었다. 결혼 25주년의 특별함을 강조하며 다시 아내를 설득했다. 정성에 감복했는지 아내가 OK 했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해외여행 스케줄 만들고 준비할 일만 남았다. 마음은 지중해, 동유럽, 호주, 뉴질랜드 망망대해에서 멋지게 크루즈 여행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고 있지만 시간과 경제적 부담으로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삼고초려 끝에 경제적으로 저렴하고 지리적으로 가까운 베트남 다낭으로 결정하고 아내와 아이들에게 통보했다. 이후 여행사 선정부터 모든 여행일정까지 꼼꼼히 챙기며 가이드 역할을 자처했다.


누군가 여행의 즐거움은 여행지보다는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이라고 했던가? 1달 이상 여행을 준비하며 인터넷을 검색하고 유튜브를 찾아보며 보낸 시간이 마치 1개월 해외여행 한 기분이다. 드디어 전 가족이 여권을 발급받고 인천공항 출국장을 나설 때의 그 설레임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4시간 비행으로 도착한 베트남 다낭은 천혜의 자연경관과 한국인에게 맞는 찰떡궁합 음식, 우호적 한국문화 등이 기대 이상 만족감을 주었다. 


3박 4일 다소 짧은 일정이었지만 코코넛빌리지 비구니배. 호이안 야경, 바나힐 테마파크, 미케비치 해변은 꼭 시간 내어 다시 한번 꼭 가고 싶은 핫플레이스이다. 3박 4일의 짧은 여행을 마치고 인천으로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내 마음은 지난 25년의 결혼생활 중 채무를 일부나마 탕감받는 홀가분함을 맛볼 수 있었다. 브런치스토리에 올린 베트남 여행기는 브런치 게시 글 중 무려 70,000회 최다 조회수를 기록하는 역사를 만들었다.   

좌)베트남 다낭 손다리  우)코코넛빌리지 바구니배(틴퉁)



2. 딸의 취업과 실업, 취업준비생 1년


 2023년 연초 나를 가장 설레게 한 사건은 딸의 취업소식이다. 천안에 소재한 남00 대학교 입학@@처에 입학사정관으로 취업한 것이다. 딸의 전공과 실력을 잘 알기에 졸업도 하기 전 딸의 취업소식은 로또에 당첨된 기분이었다. 딸은 출퇴근 편의를 위해 천안시 교통의 요지에 아담한 월세방도 마련하고 본격적인 사회초년생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딸이 근무지에서 본인 이름 석자가 새겨진 명패를 카톡으로 보내온 그 순간의 희열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청년실업이 사회문제로 부각되는 현실에서 직장을 구해 사회에 안정적으로 진출한 것은 부모입장에서 가장 큰 걱정거리를 덜어버리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딸이 첫 직장에서 첫 월급을 받았다. 그리고 딸이 내 계좌로 30만 원을 보내왔다. 이게 뭐냐고 물었더니 아빠 용돈이란다. 그때 그 순간을 생각하면 아직도 심쿵하다. 그렇게 직장생활에 적응하며 문제없어 보이던 딸이 2개월차 월급을 받은 이후로 시무룩한 표정이 감지되었다. 딸에게 물어보아도 묵묵부답이다. 아내에게 물어보니 잦은 출장과 직장의 폐쇄적 조직문화에 적응하기 어렵다는 고민을 털어놓았다. 23년을 온실 속 화초처럼 살아왔으니 딸의 고충도 이해 못 하는 바가 아니었다.


그렇게 쉽게 홍역처럼 앓고 지나갈 줄 알았는데 결국 3개월을 못 버티고 딸은 바늘구멍을 뚫고 취업한 직장을 사직하였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위로해야 하나? 질책해야 하나? 대응하기가 어려웠다. 아내는 딸의 선택을 존중하고 위로하자고 한다. 별 다른 도리가 없다. 586세대의 직업관을 MZ세대에게 강요하는 것은 M16 소총 한 자루 주고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여하라는 것과 같은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그렇게 딸은 3개월 직장경력을 끝으로 백수가 되었다. 이제 뭐 할 거냐? 물으니 해외여행 다녀와서 생각해 보겠단다. 누굴 닮았지? 아빠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대단한 멘털이다. 딸은 친구와 일본 오사카여행을 다녀오자마자 피부관리사 자격시험을 보고 병원 피부과에 취업하겠다고 자신의 포부를 밝힌다. 내키지 않았지만 본인이 원하는 일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학원비를 지원해 주었다. 그런데 한 번 두 번 낙방하더니 5번까지 자격시험에 떨어진다. 인터넷 검색해 보니 피부관리사가 요즘 MZ세대 여성에게 각광받는 국가기술자격증이란다.


수십만 원 학원비 지원도 부담스럽고 이제 본인이 독학한다며 방구석에서 종일 마네킹과 씨름한다. 에구. 좋은 직장 그만두고 왜 저 고생을 하나!  답답한 마음 굴뚝같지만 조용히 지나치며 빨리 합격하기만을 응원한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4월에 도전한 피부관리사 시험은 12월이 되어서야 합격하였다. 6번의 도전으로 합격한 것이다. 합격소식에 좋아서 방방 뜨는 딸을 보니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본인이 가장 힘들었을 텐데 묵묵히 이겨낸 그 시간이 대견하다. 2024년 새해에는 피부과 취업을 위해 현재 이곳저곳 취업문을 열고 있다. 2023년 격동의 시간을 보낸 딸에게 마음으로 응원하며 아빠로서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3. 봉오동전투 영웅 홍범도 장군의 모욕


 2023년을 Hot하게 만든 뉴스메이커 한 사람을 선택하라면 주저 없이 일제강점기인 1920년 독립운동사에 길이 남을 봉오동전투 영웅 홍범도 장군을 뽑을 것이다. 대통령, 유명연예인도 아닌 독립운동가를 뉴스메이커로 보는 것은 평범한 상황은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독립영웅 홍범도 장군을 2023년 논쟁의 한복판으로 소환한 것일까? 사건의 발단은 육군사관학교 내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시도에서 비롯되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특정정당 연찬회에서 공산주의와 대적하는 이념정치를 선언하자 국방부장관과 육군사관학교가 홍범도장군의 과거 러시아 자유시참변 사건 및 공산주의 이력을 문제 삼으며 반공 이데올로기 프레임으로 홍범도 장군에 대한 역사적 업적을 재평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독립영웅 홍범도 장군의 흉상 철거 및 이전은 사회적으로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으며 현재까지도 사그라들지 않는 사회적 이슈이다.


중고등학교 국사 시간에 독립운동사 배우며 청산리대첩 김좌진 장군과 봉오동전투 홍범도 장군은 바로 기억에서 떠오르는 위대한 영웅들인데 그동안 역사교육을 통해 영웅으로 추앙하던 독립운동가를 갑자기 공산주의자로 재평가하며 영웅을 홀대하는 정부의 졸렬한 역사인식은 부끄럽기 짝이 없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덕분에 학교에서 교과서로 배우지 못한 홍범도 장군의 행적과 독립운동사 전반에 대해 유튜브와 관련자료 등을 찾아보며 역사를 심층적으로 공부한 것은 홍범도 장군이 나에게 주는 선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홍범도 장군이 지하에서 2023년 현재의 대한민국 상황을 보고 계신다면 무어라 말씀하실까? 부끄러워 고개를 못 들겠다

    


4. 민사소송 대법원 승소


  "송사 3년에 기둥뿌리 남지 않는다"라는 옛말이 있다. 사인간 분쟁이 소송으로 진행되면서 경제적, 시간적 부담과 당사자간 갈등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되는 경우가 많다. 공직생활 25년 하면서 행정처분에 따른 권리구제 차원에서 민원인이 제기하는 행정소송에 당사자로 참여하는 경우가 있으며, 감사업무 수행에 따른 징계처분으로 행정청을 대리하여 법원에 출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출석하는 교회를 상대로 하는 민사소송에 참여하는 것은 처음 하는 경험이었다. 2023년 2월 교회 회계장부 열람 및 등사신청 소송에 교회 대리인으로 참여하여 11월 대법원 승소까지 1년 동안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소비하였다


소송을 제기한 당사자는 같은 교회 청년부에서 한솥밥을 먹던 부교역자였다. 나이는 5살 정도 연상이고 신앙도 신실하며 교회봉사도 열심히 하여 개인적으로 중고차를 매입할 만큼 신뢰관계를 쌓고 지낸 사이였다. 그러던 그가 한순간에 돌변하여 교회 재정운영상황을 의심하고 10년간의 통장 입출금내역을 요구하며 교회가 이를 거절하자 민사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법으로도 보편적 사회통념으로도 그의 허황된 주장을 수긍할 수 없었지만 소송이라는 법적절차 앞에 충분히 준비하고 대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교회 측에서도 변호사를 선임하였지만 교회 내부의 재정상황을 변호사에게 디테일하게 설득하고 논리적인 변론서를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서당깨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라고 했던가. 결국 직장 법무담당관실에서 2년 남짓 행정심판 업무 경험을 밑천 삼아 직접 변론서를 작성하고 변호사가 최종 다듬는 형태로 협업하며 민사소송에 대응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지방법원, 고등법원 항소, 대법원 상고까지 지루한 싸움이었지만 교회 측 승소로 소송은 1년 만에 마무리되었다. 사건을 수임한 변호사가 "권사님 덕분에 쉽게 이길 수 있었습니다"라며 공을 나에게 돌리는 순간 그동안  변론서 작성에 투입한 시간과 노력이 헛되지 않음에 짜릿한 쾌감이 온몸으로 퍼지는 듯했다. 공든 탑은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는 진리를 깨닫는 순간이었다

     

5. 마을공동체와 운명적인 첫 만남


  2023년 7월 28일 경기도청 사회적 경제국 공동체지원과 공동체정책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2017년 5월 사무관 승진 이후 5번째 보직이다. 남경필 경기도지사 취임 이후 '따복공동체'가 도정의 핵심사업으로 급부상하였음에도 주무팀장인 나는 인사발령일까지 공동체의 의미와 부서 업무기능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공동체(community)는 사회주의 국가 집단농장 개념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으니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5개월간 공동체정책팀장으로 근무하면서 마을공동체 현장과, 마을활동가, 토론회, 성과공유회 등 각종 행사에 열심히 발품을 팔았다. 그 덕분인지 이제 공동체가 무엇인지,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조금씩 눈이 떠지는 느낌이다. 효녀 심청이 인당수에 빠져 소경 심봉사의 눈을 뜨게 한 순간이 이 같은 상황일까?  


'마을공동체 만들기'는 생활환경을 같이하는 지역주민이 자발적 참여와 소통으로 공동체를 구성하여 교육, 복지, 문화, 생활환경, 일자리 등 다양한 영역에서 지역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활동을 말한다

공동체에 기반한 마을기업 등 공동체경제 활성화 사업, 마을활동가 역량강화 등 지원사업, 생활환경 및 공공시설 개선사업, 마을공동체 공간조성 및 운영 지원사업, 마을의 문화예술 및 전통, 역사의 계승 보전사업, 재난 사전예방, 대응, 회복을 위한 사업 등 다양한 마을활동이 마을공동체 사업범위에 포함된다.


'분권'과 '자치'의 헌법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주민자치와 더불어 마을공동체 만들기 사업은 정부에서 중점적으로 육성하고 지원해야 할 사업이다. 정부가 직접 추진해야 하는 사회적 가치를 마을공동체가 자발적으로 추진하는 등 정부 업무를 민간이 수행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마을공동체 만들기 사업에 대한 지원과 육성은 점차적으로 퇴색하고 있는 분위기다. 정부와 지자체의 조직과 인력, 예산의 규모가 감소하고 있으며 시군 마을공동체지원센터 등 중간지원조직도 관련조례 폐지 등으로 존립근거가 없어지고 있으며 마을공동체활동원칙과 기본방향, 사업범위를 규정한 마을공동체활성화 기본법 등의 법제화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그럼에도 어려운 여건에서 마을공동체 활동으로 주민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기 위해 활발하게 활동하는 마을활동가들의 노력은 대한민국 사회를 지속적으로 건강하게 유지하는 밑거름이 되고 있다. 경직되고 폐쇄적인 조직문화인 공직사회에 25년 이상 물든 내가 요즘 부드러워졌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 것은 연대와 협력의 가치로 따스한 온기를 사회에 전파하는 마을활동가와 운명적 만남을 많이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에필로그)

 

한해를 돌이키며 가장 많이 사용하는 사자성어가 '다사다난(多事多難)'이다. 여러 가지 일도 많고 어려움도 많다는 뜻이다. 2023년을 돌이켜 보니 역시  '다사다난(多事多難)'이라는 말을 적용해도 틀리지 않을 듯하다. 어려운 것보다 좋은 것, 행복한 것을 기억하며 브런치에 기록하니 밥상 위에 맛있는 반찬을 많이 올려놓은 듯 한 해가 풍성해지는 느낌이다.


돌이켜보니 2023년 새해를 맞으며 연초에 세운 계획 중 많은 부분을 이루지는 못했다. 그러나 생각하지도 못한 성과도 많이 있었다. 본문에서 2023년 Best5로 명명한 사건들은 모두 계획하지도 예측하지도 못한 사건이다. 그러나, 가파른 산행 중 우연히 만난 깊은 산속 옹달샘처럼 청량감과 행복감을 맛보게 한 삶의 일부로 기억되고 있다. 2024년에는 또 어떤 다양한 형태의 행복과 우연히 마주하게 될까? 벌써 기대가 된다  


2023년 소소한 일상과 나만의 생각을 브런치스토리에 기록하며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던 것은 행복한 기억이었다. 보고서처럼 형식에 얽매여 의무적으로 써야 되는 것도 아니고 쓰고 싶게 만드는 브런치스토리의 유혹에 푹 빠진 시간이었다. 아마도 이 글이 2023년 브런치스토리 마지막 글이 될 것 같다. 2023년 부족하고 재미없는 글을 정성껏 읽어주신 구독자 여러분과 브런치 가족 모두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2024년 갑진년에는 더욱 알차고 행복한 순간을 브런치에 맛있게 남길 것을 다짐하며 2023년 대장정의 마침표를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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