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파타야 여행을 다녀와서
태국, 파타야라니
회사에서 보내주는 해외연수라니. 아니 사장님께서 분명 쉬다오라고 하셨으니 여행이다.
아주 오랜만에 가는 해외여행. 회사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좋은 일도 있는 법.
그러나 여행지는 태국이었다. 태국이라고 하면 더욱이 파타야라고 하면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이 당연시되어버린 곳이다. 와이프한테 뭐라고 이야기할지부터 걱정이 되었다.
더욱이 사내 8명이 간다고 하면 ‘만만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다’라고 예상했다.
그렇지만 ‘장기근속’과 ‘모범사원’이라는 예쁜 단어로 포장하여 승리를 거두고 모두의 관심과 우려(?) 속에 휴양지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태국, 무려 파타야에 갔다.
늘 설레는 그곳, 공항
출발은 오후 5시. 회사의 깊은 배려 속에 오전 출근은 하지 않아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물론 태국에 빨리 가서 더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겠지만 괜찮았다.
집합시간은 오후 3시.
집에서 빨리 나가고 싶었다. 11시 40분에 나가 공항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 3박 5일 일정의 살림을 모조리 담은 배낭을 메고 있었지만 전혀 무겁지 않았다.
1시에 도착해서 라운지로 향했다. 라운지라니. 누런 불빛과 음식, 여행 전 여유로워 보이는 사람들 속에서 나도 여유 있는 척해보았다.
6년 만의 해외여행이라 어색함이 가득했지만 라운지에서 들려오는 알 수 없는 외국어를 들어 보려 애를 쓰며 몸을 풀어 보았다.
크고 작은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색색의 사람들이 오고 가는 곳. 유니폼을 입은 콧대 높은 언니들이 척척 걸어 다니는 곳. 시끄러운 비행기의 굉음조차 가슴 뛰게 만드는 곳. 그렇게 굳이 여행을 가지 않아도 설레게 하는 곳이 공항인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간다 태국에.
인천도시가스 해외연수팀
꼭 짓다 만 것 같은 수안나품 공항에 도착했다. ‘음.. 역시 츄렌드는 인더스트리얼 인테리어지’라고 놀란 마음을 안심시켜 보았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을 때 현지인 가이드 한분과 ‘김수미’를 닮은 한국 남자가이드 한분이 기다리고 있었다. 놀랍게도 목소리마저 김수미였다.
현지 가이드 손에는 ‘인천도시가스 해외연수팀’이라는 종이가 들려 있었다.
그랬다. 해외연수라 함은 태국에서 무엇인가를 배우고 오라는 뜻이 담겨있던 것이다. ‘아.. 쉬고 오라고 보내주신 건 아니구나’ 생각했다. 파타야로 향하는 버스에서 잠을 잘 수 없었다. ㈜자는 왜 빠졌을까...
오! 파타야, 오! 을왕리
우리 숙소는 다 망한 쇼핑몰 앞에 자리 잡고 있었다. 다행히 우리 호텔은 망해가지는 않는 것처럼 보였다. 꽃 목걸이 대신에 도마뱀 세 마리가 반겨주었다.
짐을 대충 풀고 몇 명이 길거리로 나왔다. 근처에서 맥주를 먹자고 했지만 망해가는 쇼핑몰 쪽은 엄두가 나지 않았다. 파타야 해변으로 향했다.
가는 길은 멀었지만 전혀 심심하지 않았다. 바닥에 기어 다니는 바퀴벌레를 피하느라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파타야 해변에 도착했을 때 ‘아! 을왕리네’ 생각이 들었다. 아 그냥 10년 전 을왕리였다.
밤바다라 보이지 않았지만 바다색도 을왕리의 그것과 같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 아침은 다르겠지라고 맥주를 홀짝였다. 맥주 맛이 씁쓸했다.
해외연수 1일 차
숙소는 잠이 잘 왔다. 물론 피곤이 한 몫했다. 아침 일찍 일정이 시작되었는데 황금절벽사원으로 간다고 했다.
황금절벽이라니 금을 부었나 싶었지만 도착해서의 느낌은 응??!!
그랬다. 그냥 14k 금으로 부처님 라인을 딴 거였다. 생각보다 시시했지만 그 크기와 규모가 컸다. 세계에서 가장 큰 부처 이미지라고 했다.
태국 푸미폰 국왕 즉위 50주년 기념으로 60억 원어치의 금으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부처와 국왕이 무슨 관계인지 모르겠지만 조경도 잘 해놓고 패키지여행 1번 행선지로는 썩 나쁘지 않았다.
부처님 아래에 태국어로 ‘프라풋 마하 와치우라 웃따모팟 싸싸다’라고 쓰여있었다. 읽다가 번뇌에 이를 것 같았다. 부처님 이름이라고 한다. 감히 함부로 외워 부를 수 없는 이름이었다.
다음 행선지는 농눅 빌리지였다. 우리나라 민속촌 같은 느낌인데 별게 다 있었다. 식물, 공룡, 과일, 카페, 코끼리. 그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극장 같은데 들어가 민속공연을 보았다. 전통의상을 입고 춤을 추고 노래 부르다가 코끼리가 나와서 싸웠다. 실제 코끼리가 나와서 싸울 때는 좀 괜찮다 생각했다.
그러다 갑자기 “쌈바! 바바밤 바바바바바바~” 우리 귀에 익숙한 브라질 쌈바음악이 나오면서 카니발 페스티벌 복장의 무희들이 나와 춤을 추기 시작했다. 분명히 민속 공연이라고 했는데? 연수 1일 차에 벌써 혼돈이 오기 시작했지만 태국은 타국의 문화를 자국문화로 잘 승화하는 좋은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애써 정리해 보았다.
내가 태국을 간다고 주변에 이야기했을 때 가장 많이 듣는 소리가 “고추 조심해”였다. 내 거가 아닌 다른 누구의 것이 덜렁 나올 수 있다는 것이었다. 개인적으로 그런 쪽은 선호하지 않기 때문에 경계심을 바짝 올리고 다녔다. 경계심의 정점은 ‘알카자쇼’에서 찍었다.
패키지 일정 안에 들어가 있는 알카자쇼는 트랜스젠더가 나와서 공연하는 세계 3대 이색쇼에 꼽힌다고 한다.
호기심 반, 불쾌감 반으로 공연을 관람했다. 얼굴 한번 보고 고추 한번 보고 하느라 통 공연에 집중할 수 없었다. 고추 감별사가 되어 나왔다.
지나치게 여성중심적인 사회와 역사적인 면으로 트랜스젠더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완전하지 못한 자신을 돌아보며 얼마나 회의감이 들런지라는 씁쓸한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그토록 원하는 지향점에 이른 자신을 돌아보며 행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큰 키를 자랑하며 공연장 밖에 서있는 그녀들 앞으로 작은 발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해외연수 2일 차
이튿날 해가 들지 않았다. 분명 오늘은 바다를 가는 날인데 아쉬웠다. 선착장에 도착해서 산호섬인 꼬란섬으로 향했다. 가좌동 엠파크(중고차단지)에서 일할 것 같은 문신 가득한 형님이 보트를 운전해 주셨다. 조금 거칠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다들 같은 마음이었는지 입도 눈도 닫아버리고 가는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죽 늘어선 해변에 안락한 의자와 파라솔이 꽂혀있었다. 뒤에 있는 상점에서 깔아 놓은 듯 보였다. 분명 해운대 파라솔을 밴치마킹했으리라 생각이 들었다.
다들 쉴 때 나와 몇몇은 씨워킹을 옵션으로 신청해서 했다. 김수미와 현지 가이드가 날 보며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회사 직원 2명과 70살 정도 되어 보이는 중국인 관광객 8명이 씨워킹하는 곳으로 갔다. 들어가기 전에 장비를 보았는데 그냥 머구리에 물호수로 공기를 계속 주입하는 방식으로 보였다. 덜컥 겁이 났지만 눈앞에 펼쳐질 푸른 바다와 산호 그리고 유유히 노니는 물고기를 생각하며 들어갔다.
씨워킹은 금방 끝났다. 눈앞에는 식빵가루 가득한 바다와 배가 불러 오지 않는 물고기들 뿐이었다.
순식간에 80불이 날아갔다.
파타야에서의 마지막밤의 시작은 씨푸드레스토랑이었다. 꽤 괜찮은 호텔에 부채새우를 비롯한 갖가지 해산물이 있었다. 이내 인천도시가스 해외연수팀에 설사병이 창궐하였다. 다행히 약국이 눈에 보여 약은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물론 나는 마지막 날까지 아주 멀쩡하게 다녔지만 몇몇은 다음 행선지에 도착할 때마다 우사인볼트마냥 뛰어내려 화장실을 가기 일쑤였다.
마무리는 야시장과 밤문화였다. 역시 소문난 잔치에는 먹을 게 없었다. 실망감에 썽바우를 탔다.
200바트. 바가지를 써보았다.
해외연수 3일 차
전 날 바가지 때문에 쓰린 속을 달래러 태국 컵라면을 사러 갔다. 태국고추만 한 크기여서 세 개를 샀다. 룸메이트 하나 나 두 개. 맛은 썩 괜찮았다. 신맛이 나는 컵라면은 처음이었지만 쓰린 속을 달래기는 적당했다.
파타야에서의 마지막행선지는 악어농장이었다. 한국인 관광객이 꽤나 자리 잡고 있었고 공연이 시작되었다. 보는 내내 동물의 왕국에서 봤던 물면 비틀어버리는 악어의 습성이 생각났다. 다행히 숙련된 공연자의 솜씨 때문인지 공연자의 팔이 비틀리는 일은 없었다.
목숨을 담보로 어렵게 돈을 버는 그를 보며 인천도시가스 해외연수팀으로 온 내가 쬐끔 자랑스러웠다.
패키지 여행은 역시 라텍스였다. 살면서 내가 라텍스 가득한 곳에서 누워보리라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런 곳이 실제로 존재했던 것이다. 옆에서는 한국인 중년 여성이 “라텍스 12만 원 오케이?”를 수 없이 반복했다. 라무새를 뒤로 하고 우리는 드디어 방콕으로 향했다.
방콕에서의 일정은 김수미 가이드가 추천한 선상 야경파티였다. 전원 다 신청한 옵션에 김수미 가이드는 행복해했다. 말은 그럴싸했지만 코요테와 싸이 노래가 나오는 그냥 배였다. 좋았던 점은 무한으로 맥주를 제공해서 세병이나 먹었던 것이다. 옆자리에 아무 것도 먹지 못하는 설사쟁이들은 야경만 바라볼 뿐이었다.
방콕의 야경은 서울의 야경과는 사뭇 달랐다. 고수부지가 가로막아 빌딩이 멀리 자리 잡은 서울과는 달리 방콕은 짜오프라야강과 건물사이의 간극이 없어 이색적이었고, 생각보다 멀끔한 건물들이 즐비하게 자리 잡고 있어 꽤 괜찮은 뷰를 자랑했다.
여행을 마치며
마사지의 나라 태국은 역시 다르다며 뭉쳤던 어깨가 다 펴진 줄 알았는데.
역시 한민족으로 똘똘 뭉친 꼬레아는 공기부터 달랐는지 착륙하자마자 어깨가 돌덩이 같이 뭉쳐왔다. 어쨌든 이제 다시 현실로 돌아온 것이다. 3박 5일 김수미와 8인의 사내들이 함께했던 좋은 시간은 추억으로 고이 간직해야 하는 것이다.
인사시즌인 관계로 사장님을 비롯한 임원분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은 가슴속에 살짝 접어두며, 여행을 오롯이 즐기기만 하기엔 팔만원은 턱없이 부족했다는 아쉬운 생각이 들지만 비교적 좋은 단독 여행 패키지를 선택해 준 관련부서 담당자에게 감사를 전한다.
태국에서의. 무려 파타야에서의 즐거웠던 한 때를 고이 저장해 두었다가. 가물고 힘든 회사 생활이 닥쳐오면 수도꼭지를 힘껏 열어 이 즐거웠던 한 때의 그 기분을 콸콸 쏟아 마셔보려 한다.
인천도시가스 해외연수팀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