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석제, 2014)
친절하지 않은 소설이다. 챕터가 없고, 화자가 계속 바뀐다. 369쪽의 장편 소설로 등장인물이 많은데, 그 등장인물이 죄다 ‘나’로 등장해서 헷갈릴 때가 많았다. 일관성 있게 하나의 화자(1인칭 혹은 3인칭)에 의해 전개되는 이야기나, 분절되고, 정리된 책의 레이아웃에 익숙해진 독자를 잠깐잠깐 시험에 들게 할 수 있는 책?
성석제 작가 특유의 입심이 울트라로 힘을 발휘했단 느낌이다.
한국의 근현대사를 관통하고 있는 한 가족의 3대에 걸친 이야기.
가난, 배고픔, 국가와 사회의 폭력, 초고속 성장 속에서 버려진 온갖 모습의 약자들.
그 속에서 살려고 발버둥 치다 결국 투명인간이 되는 사람들.
투명인간... 무슨 의미일까?
단순히 존재감 약한 사람들 정도의 의미는 아닐 텐데.
그들은 왜 투명인간이 됐을까?
선택으로? 아님, 어떤 외력에 의해?
만수는 우직하고, 착하고, 책임감 강한 우리네 오빠, 아빠처럼 온몸으로 가족을 떠받치고 살다 종국에는 마포대교를 서성이는 투명인간이 된다. 자기 삶은 없이 남을 위해 희생만 했던 사람들. 누군가 앞서나가고 돋보이도록 늘 뒷전에서 더 열심히 달린 사람들. 그러다 결국 사라져 버린 사람들. 그들이 만수, 투명인간?
“나는 기적을 믿지 않았다. 나는 힘들었고 불행했고 절망적이었고 좋아진 적이 없었다. 남의 눈에 보이지 않는 인간이 되는 것, 외면의 모습으로 어떤 평가나 동정을 받을 필요가 없는 존재가 되는 기적이 내게 일어났다는 걸 처음에는 믿을 수 없었다.” (346)
“햇볕이 따뜻하다. 소가 운다.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른다. 내 아들 태석이가 까르르 웃는 소리가 들린다. 앞치마를 한 아내가 손을 닦으며 나를 바라다보고 있다. 보고 싶은 사람들이 모두 모였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거기 있다. 보인다. 지금 같은 순간이 있어서 나는 행복하다. 내가 목숨을 다해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를 부르는 소리. 기쁨이 내 영혼을 가득 채우며 차오른다. 모든 것을 함께 나누는 느낌. 개인의 벽을 넘어 존재가 뒤섞이고 서로의 가장 깊은 곳까지 다다를 수 있을 거 같다. 이게 진짜 나다.” (366)
“이렇게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고 식구들 건강하고 하루하루 나 무사히 일 끝나고 하면 그게 고맙고 행복한 거죠. 도저히 참을 수 없을 것 같을 때에도 가만히 참고 좀 기다리다 보면 훨씬 나아져요. 세상은 늘 변하거든. 인생의 답은 해피엔딩이 아니지만 말이죠.” (367)
“죽는 건 절대 쉽지 않아요. 사는 게 오히려 쉬워요. 나는 포기한 적이 없어요.” (369)
나는 과연 얼마나 많은 투명인간들 사이에서 지금의 삶을 누리고 있는 것일까?
만수처럼 우직하고 순수하고 착하게 남을 위해 산다는 건 꿈도 꾸지 못할 일이지만, 늘 모기소리만 한 목소리로 누군가의 뒤에만 서 있었으니 혹시 나도 투명인간?
아... 그런데.... 작가는 어떻게 60∼70년대, 80∼90년대를 이렇게 징글징글할 정도로 밀도 있게 그렸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