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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엔 샴페인 Oct 20. 2023

차단 하다, 차단 당하다

 나도 누구에게 언제든 메신저 속에서 차단이 될 수 있는 존재란 걸 깨닫게 되는 순간 밀려오는 기분은 가히 산뜻하진 않아도, 또 마냥 구리지도 않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도 그렇게 살갑게 챙기는 사람이 아닌지라 소홀한 건 맞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의 목록에서 자연스레 자취를 감추게 되는 인맥이 된다는 건, 사실 그들은 나에게도 딱히 필요한 존재가 아니였음에 오히려 예측한 결과이기도 했다. 

 감히 자신들이 연락을 먼저 취했는데도 받지 않았던 나의 불성실하고 오만한 태도는 결국 내가 유발한 내 잘못임을 자인한다. 그래서 내심 캥키는 탓에, 연말과 연시의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작은 덕담이라도 보낸 나의 가식은 다행히도 도달하지 못하는 비운, 아니 행운을 맞이하게 되었지.

 그 연락은 바다를 떠도는 유리병 속 메시지처럼 삭제와 차단 속 어딘가를 유영하고 다니겠지...아니면 미리한 차단 덕에 감정에 거슬리는 일말의 불편함도 느낄 수 없게 자신들의 영양가 충만한 인맥관리를 탄탄히 유지 중이겠지. 

 새해가 밝았건만, 날아오는 메시지는 그렇고 그런 뻔한 종류의 짤과 흔하게 볼수 있는 단체 톡들이 빼곡할 뿐. 진심 나의 행복과 안녕과 복을 빌어주는 메시지는 받은 적이 언제인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사회생활과 인맥관리에 여념이 없이 살뜰히 챙기고 살지 않은 벌을 이렇게 연말과 연시엔 고스란히 돌려받나 부다. 벌이라고 표현하면 내가 무슨 엄청난 잘못을 저지른 응당의 댓가처럼 들리니, 그건 또 아니고, 그저 필요에 의해, 이젠 나의 쓸모가 그들에겐 더 이상 어떠한 효용 가치도 일깨워줄 일이 없으니, 그냥 평생 안 봐도 그만인 그저 그런 사람이 된 것일 뿐 딱히 별일이 아니다.  

 인간 관계는 원래 그렇게 둘 중 누구 한 쪽이라도 필요한 쪽은 어떻해든 연락을 이어나간다. 살기위한 가장 작은 몸부림같은 그 처절함에 난 이미 진력이 났고, 머리가 지끈거리는 탓에 나야말로 먼저 단칼에 자르는 버릇은 어릴 때 부터 있었던지라, 나이가 들며 떨어져 나가는 인간들의 그물망을 굳이 손 볼 이유도 메꿀 생각도 하지 않는다. 

 더불어 사는 삶이 어느 시점에 가선 멀미나게 끔찍스러워 졌다. 딱히 돌아보지 못할만큼 흉한 상처로 도배된 인생도 아닌데, 그 어딘가에 가끔씩 떠오르는 악연같은 사람들은 ‘어디선가 잘 살고 있을 테지’ 오히려 안부가 궁금한 정도지, 다시보기가 죽기보다 싫은 관계도 그닥 없으니, 그냥 지금 사는 게 우선이지 흘러간 사람들 돌이켜 볼 짬이 있다면, 그저 낮잠 한잠 늘어지게 자는 게 훨씬 바람직한 실로 무감성, 무신경의 사람이다. 나는 그렇다. 그런 사람이다.

 그 사람들은 그래서 나를 무 자르듯이 그렇게 자른 것이다. 아무리 해도 한 켠을 넉넉히 내어주지 않는 나의 옹졸함의 기운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느껴가며 굳이 나에게 잘할 일이 무엇이랴. 그들이 자신의 인생에서 나를 배제시킨 건 참 잘한 일이라 칭찬한다. 사실 mentally, physically, financially 난 그들에게 영양가 빵점인 인간이다. 그렇다고 mentally, physically, finacially 그들에게 베푼 적도 없지만, 민폐 끼친 적도 없고, 구걸한 적도 없으니 쌤쌤이다.

 나도 알게 모르게 아니, 미필적 고의스럽게 그 속 다 채워주지 못했으니 입이 두 개라도 할 말이 없다. 두 개는 좀 성에 안차려나,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고 하면 그동안 나를 위한 그들의 인내심에 위로가 되려나. 

 나와 올해 들어 이번 생에 연을 끊어주신 모든 이들에게 새해를 들어 고개숙여 인사드린다. 당신들의 조금 늦은 선견지명에 감탄할 뿐이다. 그들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원래 사람이란 어떻게들 알고, 대박을 치면 스물스물 모이고, 쪽박을 차면 어디론지 자취를 감춰버리고 마니 개코가 장착된 비상한 머리의 동물임은 태생적으로 엽렵하다.

 글고 보니, 나역시 새해 맞이 폰 정리 좀 해야 겠다. 사람 사이 에만 유효기간이 있는 것이 아니다. 만료가 임박한 쿠폰들이 폰에 차오를때면 매번 연장과 연장을 거듭해 언젠가는 꼭 써야지 써야지 하면서도 때를 놓쳐 날려버리거나, 까먹거나, 두고두고 묵혀둔 것들이 수북하다. 거추장스러우니 차라리 없느니만 못하다. 오늘부로 아디오스! 잘가라, 삭제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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