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씌어지는 죄
꽤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던 한 지인이 이렇게 말했다.
“남자들은 여자들보다 범죄를 많이 저지르니, 엄마가 아들을 잘 키워야 한다.”
그 말을 듣자마자 마음이 불쾌해졌다.
내가 아들 둘을 키우기 때문일까?
아니면, 세상이 너무 쉽게
엄마에게 책임을 넘기기 때문일까.
우리는 늘 아이의 잘못을 부모의 책임으로 돌려왔다.
그리고 그 책임은 대부분 엄마의 몫이었다.
하지만 범죄는 단순히 가정양육 하나로
설명되지 않는다.
경제적 조건, 사회 구조, 또래 집단, 미디어 환경,
개인 성향, 정신 건강…
수많은 요인들이 엉켜 작용해
누군가의 선택을 바꾸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양육, 교육, 감정 노동, 정서 책임까지
모두 엄마에게 귀속시키고,
문제가 생기면 가장 먼저 엄마를 탓한다.
양육 책임과 범죄 발생을 같은 선상에 두는 것은
큰 오류다.
범죄는 “사람”이 저지르는 것이지
“남자”가 저지르는 것이 아니며,
양육은 아들이든 딸이든 사람으로서
건강하게 자라도록 사랑과 돌봄을 쏟는 일이다.
아이의 모든 행동이 곧바로
엄마의 잘못으로 귀결되는 사고방식은
논리적으로도 틀렸고, 윤리적으로는 폭력이다.
대부분의 엄마들은 아이를 키울 때
잠을 줄이고, 몸을 갈아넣고,
사랑과 책임을 온전히 쏟아낸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엄마는
눈에 보이지 않는 수고와 긴장을 견디며
아이를 지켜내기 위해 살아간다.
나는 특히 이 말이 더욱 아프다.
나의 둘째는 발달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때부터
나는 임신 기간 동안 내가 무엇을 잘못한 것일까
계속 되뇌이며 죄책감 속에 살아왔다.
둘째를 잘 키우기 위해 나는 스스로 공부해야 했고,
조금의 변화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며 늘 긴장했다.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지만,
더 많은 치료, 더 많은 교육을 위해
없는 힘까지 쥐어짜야 했다.
사랑도 더 많이 주었고,
시간도 더 많이 들였고,
혹시라도 부족할까,
혹시 내가 과잉보호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혹시 너무 무심한 건 아닐까,
매 순간 스스로를 검열해야 했다.
그럼에도 세상은 이렇게 말한다.
남자는 위험하다.
아들이라 큰일이다.
장애아는 이상하다.
엄마가 문제다.
내 아이는 아직 아무런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았고,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았는데도,
세상은 이미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한다.
낙인은 그렇게 앞서서 찍힌다.
문제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는데도
사람을 먼저 비난하고 겁을 준다.
이건 단순히 논리의 문제가 아니다.
존엄의 문제다.
사람은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존중받아야 하고,
가능성이 있는 존재로 바라봐야 한다.
그런데 세상은 너무 쉽게
아이의 미래를 ‘위험’으로 규정하고,
엄마의 사랑과 수고를 한순간에 ‘실패’라고 단정한다.
나는 그 말을 이제 거부하고 싶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아들을, 아이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들지 않기를.
그리고 지금 이순간도
아이를 잘키우기 위해 애쓰는
수많은 엄마들의 삶을
죄책감이 아닌 존엄과 연대로 바라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