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잠을 둘쑥날쑥 자서 그런지 별로 한 게 없는 것 같은데도 금방 지친다. 피곤함이 쌓여 몸도 마음도 추욱 처질 때면 자동반사인 마냥 핸드폰을 잡게 되는데, 인터넷이라는 늪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억지로라도 나를 분리시켜야 된다(그러나 잘 안 될 때가 많다. 피곤함으로 의지가 약해져 있을 때는 더욱더.)
그렇게 핸드폰을 아래층에 두고 작업실로 올라가던 중 아침에 열어두었던 창문 틈으로 달이 보였다. 만월. 그것도 여린 하늘색과 분홍색으로 물들여진 참으로 부드러운 달이었다.
평소 즉흥적이지 못한 나지만 허겁지겁 카메라를 메고 집을 나왔다. 내가 본 그 달을 담기 위해 숲으로 발길을 옮기던 중 생각지도 못한 하늘을 보자 그대로 넋을 놓아버렸다. 마치 드넓은 바다에 파도처럼 쏴아 퍼져 나가는 수많은 구름들... 내 위로 펼쳐진 이 하늘이 어찌나 광활한지! 그 순간 몸과 마음이 탁 트이며 무겁게 짓눌려 있었던 내 자신이 자유로워지는 걸 느꼈다.
이 느낌을 담을 수 있을까 사진을 연달아 찍어봤지만 역부족이었다. 어쩔 수 없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달을 다시 찾아보았지만 그새 구름 뒤에 숨었는지 보이지는 않고 까까 소리만이 고요한 숲을 메우고 있었다. 위를 보니 그들의 까만 윤곽이 여럿 보인다. 까마귀들은 이 근처에서 수십 마리 이미 본 적이 있기에 그곳이 그들만의 특별한 장소라는 걸 알 수 있었다.저만치 멀리 있으니 나는 신경 안 쓰겠지 하고 다가서자, 푸드득 순식간에 모두 날아가 버렸다.
미안했다. 위협을 느끼고 날아갔을 텐데.. 나름 휴식을 취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뒤늦게라도 해치려고 하는 게 아니야 소심하게 외쳐봤지만 그들이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는 모르겠다.
달은 해가 다 지고 나서야 다시 찾을 수 있었다. 창문틀 사이로 본 그 모습은 결국 담지 못했지만 그 달은 나에게 멋진 하늘과 자유로움이라는선물을 주었다. 그리고 덕분에 알게 된 이 작은 숲의 새 모습. 초저녁의 숲은 낮과는 달리 차분하고 고요했다.
나는 달만의 이 부드러운 빛을 참 좋아한다. 사진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실제로는 달의 얼룩진 표면도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