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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랑 Dec 21. 2023

칼국수에 관하여

하고 싶었던 것이 쉽지 않아 보일 때


 추운 겨울, 나의 영혼을 위로해 주는 음식 중 하나는 칼국수다. 오랜 시간 사골을 우려내어 뽀얀 국물에 김이 펄펄 올라오는 칼국수, 어슷썰기로 썰어낸 푸른색 대파 고명과 하얀 국물과의 조화, 이 위에 후추를 기침이 나올 정도로 양껏 뿌린다면 더할 나위 없다. 또한 칼국숫집들은 보통, 천년의 사랑을 하는 연인이라 할지라도 식사 후에 키스가 불가능할 정도로 마늘을 아낌없이 넣어 새빨갛게 무쳐낸 겉절이 김치를 함께 내어주는데, 이 또한 하나의 별미다.


 칼국수가 먹고 싶었던 나는, 친구 K와의 점심 메뉴를 칼국수로 선정하게 되었다. 우리는 안국역에서 만나 20분 정도 걸어 삼청동에 있는 미슐랭에 무려 일곱 번 연속으로 선정된 칼국숫집에 도착했다. 하지만 한국인들 모두 ‘이런 날에는 칼국수지!’하고 생각한 것인지 줄이 너무 길어, 대기자를 위한 텐트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K와 나는 긴 줄을 보고 질린 표정으로 서로의 눈치를 슬금슬금 보았다. 둘 다 남들이 하는 건 하지 말자는 홍대병이 있어 맛집에서 기다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칼국숫집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다른  음식점을 찾아 나서기로 하였다.


 K의 직업은 연구자이다. K와 함께 음식점을 고르면서 연구를 업으로 삼는 사람들에게 출처와 논리는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명장이 만든~>으로 시작하는 음식점 앞에서는 명장 자격증의 출처가 의심스럽기 때문에 그 음식점에서는 먹고 싶지 않다고 하였다. 따뜻한 메뉴를 팔 것 같아 추천한 <연남ㅇㅇ>라는 음식점에 관하여는, 이 동네는 삼청동인데 어째서 연남동의 이름을 쓰냐며, 삼청동은 종로구에 연남동은 마포구에 있기 때문에 아예 관할 구청조차 달라서, 너무 논리적이지 못한 작명이라 자신은 <연남ㅇㅇ>에서는 밥을 먹을 수 없노라고 말했다. 차라리 자신은 종로구에서는 <종로김밥>에서 밥을 먹고 싶다고 우겼고, 주변에는 안타깝게도 <종로김밥>이 없었다. 또한 어떤 음식점은 추운 날 냉면을 팔아서, 어떤 음식점은 메뉴가 그냥 싫어서(연구자도 논리가 없을 때도 있겠죠.) 점심 메뉴 후보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30여 분 정도 온갖 트집을 잡으며 삼청동을 헤맨 후에야, 음식점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렇다. 결국 우리는 칼국숫집의 긴 줄 끝에 앉아있었다. 칼국숫집의 텐트 안에는 쾌적하게도 따뜻한 난로도 있었고, 회전율도 매우 좋아 20분 만에 칼국수를 먹을 수 있었다. 30분 동안 대안을 찾겠다고 헤매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진작에 칼국수를 먹었을 것이었다.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오랜 시간 산책을 한 덕인지 따뜻한 칼국수는 기대했던 만큼 만족스러웠다. 칼국수를 먹으면서 느꼈다. ‘아, 이 맛과 비슷한 맛을 찾으러 삼청동을 헤매고 다녔던 것이었군.’



 하고픈 일이 어려워보여도, 막상 해보면 별로 어렵지 않을 때가 많다. 오래 걸릴 것 같은 칼국수집의 입장 대기가 막상 해보면 짧게 끝나는 것처럼. 오히려 차선을 찾느라 헤매는 과정이 더 지치고 수고스러울 수도 있다. 어떤 일을 하고자 하는 열망은 그 일을 했을 때에만 비로소 해소된다. 왜냐하면 바람이라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어, 대안으로 해결하려고 해봤자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추운 날은 칼국수를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던 친구가 삼청동의 모든 음식점들을 퇴짜놓고 다시 칼국숫집으로 돌아갔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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