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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랑 Jan 24. 2024

이상한 사람이 소중한 이유

다르게 살아도 괜찮아


 나는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 누군가를 만나 대화를 나누는 것은 한 권의 책을 읽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을 둘러싼 세계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온 경험이 있다. 그 과정에서 저마다의 인생관을 형성한다. 아무 노력도 없이 다른 이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그의 삶의 정수를 알 수 있다니 이렇게 남는 장사가 없다. 이곳 치앙마이에 와서도 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지내고 있다.


 내가 묵던 숙소 아래층에 머물던 부부가 있었다. 부부는 숙소 밖을 잘 나가지 않았다. 치앙마이에 네 달이나 있었는데, 유명한 관광지 중에 거의 가본 곳이 없었다. 나도 그들처럼 게으른 생활을 하고 있었다. 숙소에서 주로 시간을 보냈고, 하는 일이 없었다. 부부는 게임의 NPC들처럼 항상 로비에 있는 의자에 앉아있었다. 그리고 모든 NPC들이 그렇듯 만날 때마다 따뜻하게 인사를 해주셨다.


 부부 중 남편은 24년간 대기업에서 근무를 했다. 그러다 어느 날 몸을 다쳤고 그래서 마음도 힘이 들어졌다. 25년을 채우면 퇴직할 때, 더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었지만 마음이 지옥 같을 때에는 그 시간을 견딘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그는 일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아내와 함께 치앙마이로 왔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공감했다. 나도 휴직 시기를 마음대로 정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 아팠고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휴직을 하게 되었다. 견디는 삶을 살다 보면 이렇게 몸이 멋대로 쉬는 날을 점지해 버린다.


 하지만 부부는 항상 치앙마이의 저녁노을처럼 온화했다. 그들은 이제 꿈은 적게 벌고 적게 쓰기라며 웃어 보였다. 남편은 결혼하고 나서 처음으로 부인과 이렇게 오래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그리고 이 시간을 통해 부인이 얼마나 든든하게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고 했다.


 또 내가 만난 다른 분 역시 아래층에 사는 여자분이었다. 웃을 때마다 눈이 초승달처럼 휘어지는 그녀는, 웨이브가 자연스럽게 진 머리에 사골국 같은 뽀얀 피부가 잘 어우러졌다. 그분은 퇴사 후 1년 동안 여행 중이었다. 자신에게 1년만 휴식 시간으로 주고 싶었지만 쉬다보니 더 욕심이 생겨 더 오랜 시간 쉴 수 있다면 좋겠노라고 말했다.


 나는 물었다. “혹시 한국에 돌아가면 어떤 일을 할지 생각해 보셨어요?” 그녀의 대답은 의외였다. “아니요. 전 그런 생각 안 해요.” 모든 사람들이 다 전전긍긍하고 사는 줄 알았는데, 타고나길 나와 다르게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내가 다음 숙소를 구해서 치앙마이에 남아야 하나 한국에 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도 그녀는 이렇게 말해주었다. “걱정하지 마요. 어떻게든 돼요.”


  많은 이들이 절망하는 이유 중 하나는 다들 인생에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나이가 들어도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가 있다면 공부를 해도 다들 이상하게 안 보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져 휴식을 취하고 있는 사람이 있더라도 신기한 일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또 흔히 말하는 좋은 직장을 그만두고 자기가 행복한 일을 가겠다면 그 또한 다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으면 한다.


 그래서 이상한 사람들은 소중하다. 인생에 정답은 없고 다르게 살아도 된다고 다른 이들에게도 희망을 주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나의 고통이 생각보다 보편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거나, 똑같은 상황에서 견디는 것 말고 다른 선택을 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면 위로를 얻지 않는가.


  내가 만난 분들을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말하면 누군가는 그분들을 욕보인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상하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내가 보낼 수 있는 최고의 찬사다. 모두가 똑같은 트랙을 걸어갈 때에 자신의 마음의 소리를 듣고 다른 길을 찾아가는 용기에 박수를 치고 싶다. 24년간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둔다는 것, 또래 친구들이 다 일하고 있을 때 다 그만두고 훌쩍 여행을 떠나는 것이 얼마나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인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나는 이들이 모두 잘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잘 된다는 것이 꼭 물질적인 성공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각자 자기 마음 편한 대로 잘 살았으면 좋겠는 것이다. 저마다의 이상한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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