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을 살아도 있을 건 있어야지
미국에서 1년 동안 살 집은 구했지만, 집에 있는 살림살이라고는 냉장고와 세탁기, 건조기와 가스레인지, 오븐이 전부였다.
그 외에 필요한 침대나 소파, 아이들이 쓸 책상과 책장,
접시나 냄비, 칼이나 도마 같은 주방용품, 이 외에도 TV나 청소기, 헤어드라이어 같은 전자제품들은 미국에 오기 전부터 열심히 인터넷 카페와 지역 단톡방을 들락거리며 ‘무빙세일’을 통해 구입을 해뒀다.
미국은 우리 가족처럼 1년이나 2년, 단기로 살다가 가는 분들이 많아서 사용하던 가구와 가전제품들을 한꺼번에 묶어서 판매하곤 하는데 이런 걸 ‘무빙세일(줄여서 무빙)’이라고 한다.
무빙을 구하지 못한다면, 필요한 가구와 전자제품들을새로 구입을 해야 하는데, 그 비용을 생각하면 아찔해진다. 물론, 고작 1년 살이를 하면서 모든 걸 갖추고 살 수는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삶의 질을 위해 갖춰야할 물건들도 있기 마련이다.
다행히 좋은 분을 만나서, 중고치고는 쓸만한 물건들을 적당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무빙으로 구입한 물건들을 옮기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차로 몇 번 실어나르면 되겠거니 가볍게 생각했지만, 막상 물건들을 보니 우리 힘으로 나를 수 있는 크기나 무게가 절대 아니었다.
물론, 어떻게든 끙끙대고 차로 몇 번 실어 나르면 전혀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지만, 그러면 일주일 넘게 몸살로 고생할 게 뻔했다. 당장 다음주부터는 아이들도 학교에 보내야 하는데 우리가 아프면 큰일이었다.
결국, 급하게 한인 이사업체를 알아봤다.
소형 트럭 한 대에 인건비를 포함해서 550불을 요구했다. 당시 환율이 1달러에 1300원이 넘어갈 때니까 70만원이 넘는 금액이었다.
무빙을 넘겨주기로 한 곳은 이틀 후에 한국으로 들어가는 비행기를 끊어놓은 상태였고,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렇게 해서 무빙비용 1500달러에 생각지도 못한 이사비용 550달러를 더해서 살림살이들을 구입하는 데 2천 달러가 넘게 든 셈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자잘하게 필요한 것들은 자꾸만 생겨났다.
아이들을 키우는 집이다보니 당장 청소기부터 사야했고, 끼니를 해결할 식재료와 밥그릇 국그릇 같은 식기류들도 필요했다. 씻을 때 필요한 비누와 샴푸부터 아이들이 학교에서 사용할 학용품에 도시락, 하다못해 설탕에 소금같은 양념류까지.
미국와서 한달 동안은 거의 매일 마트를 가는 게 우리 부부의 일상이 되었다. 흡사, 이제 막 결혼한 신혼부부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었달까.
다행히 걸어서 10분 거리에 한인마트가 있었고,
조금만 차를 타고 나가면 코스트코 같은 대형마트나 월마트, 타겟, 홀푸드, 트레이더 조 같은 미국의 대표 마트들이 있었다.
지금이야 식재료는 한인마트, 대용량으로 필요한 식재료(고기나 달걀, 음료나 냉동식품 같은)는 코스트코, 각종 생필품들은 월마트니 타겟, 이외에 유제품이나 신선한 식재료, 유기농 제품들이 필요할 땐 홀푸드나 트레이더 조를 가는 식으로 계획을 세울 수 있지만,
처음엔 그야말로 대혼돈의 카오스, 그 자체였다.
달걀 하나, 우유 하나를 고르려고 해도 무슨 종류가 그렇게나 많은지. 매일 인터넷과 영상을 검색하고, 이것저것 사서 써보고 먹어보면서 우리 가족 입맛에 맞는 걸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했다.
이제는 어디 달걀이 품질이 좋고 가격이 저렴한지,
어떤 우유가 우리 입맛에 맞는지(미국 우유는 종류도 많지만 특유의 비린 향이나 우리 입맛에 맞지 않는 것들도 많았다), 햄은 어느 제품이 덜짜고 먹을 만 한지(미국 햄이나 베이컨이 맛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우리 입맛에는 대부분 너무 짜거나 향신료가 센 제품들이 많아서 실패가 많았다), 휴지나 세제, 샴푸는 어디서 어떤 걸 사야하는지 대충 알게 됐다.
그렇게 필요한 살림을 하나 둘 채워가고, 미국의 마트 장보기 스킬을 습득해가면서
미국생활에 조금씩 적응해갔다.
물론, 얼마 안가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순간들이 잇따라 발생하긴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