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갑자기 남편이 머리를 붙잡고 쓰러졌다.
낯설고 물설은 미국 땅에서 우리 가족의 보호자 역할을 톡톡히 해낸 건, 남편이었다.
한국에 있을 때부터 남편은 미국 생활에 필요한 여러 서류를 준비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집과 자동차, 각종 보험과 휴대전화 가입 등 많은 것들을 척척 알아보고 처리했다.
미국에 들어와 며칠 동안, 나와 아이들은 시차 적응부터 시작해 낯선 나라 환경과 날씨에 적응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잠을 자고 일어나도 잔 것 같지 않은, 마치 꿈속을 걷고 있는 것 같은 현실감 없는 날들이 며칠간 이어졌다.
우리가 이렇게 헤매고 있는 사이, 남편은 혼자서 미국운전면허를 따고, 은행 업무를 보고, 아이들 학교 등록과 몇 시간씩 줄을 서서 미국사회보장번호를 받아내는 등 온갖 복잡하고 까다로운 일들을 척척 해냈다.
평소에도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라, 그런 남편을 믿고 의지하며 낯선 타국에서의 삶에 조금씩 적응해 갔다.
그렇게 한 달쯤 지났을까.
미국 생활에 필요한 자격증과 서류들을 모두 갖추고 한시름 놓을 때쯤. 갑자기 남편의 두통이 시작됐다.
진통제를 먹어도 전혀 가벼워지지 않는, 누군가 머리를 꽉 쥐고 누르는 듯 한 지속적이고 묵직한 통증이 이어졌다. 그러더니 며칠 뒤부터는 두통과 함께 메스꺼움이 동반했다. 소화제와 진통제로 며칠을 버티던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어지러움을 호소하며 침대에 쓰러지듯 드러누웠다. 10년 넘게 함께 살면서 그렇게 아파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당장 병원을 가야 할 거 같은데. 시간은 이미 저녁을 향해 가고. 병원은 곧 문을 닫을 시간이고. 미국 면허가 없는 나는 운전을 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아이들만 집에 두고 택시를 타고 병원을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남편이 근처에 사는 대학 후배에게 연락을 했다.
남편의 증상을 들은 후배는 뇌질환일지 모르니 당장 병원을 가봐야 할 거 같다며 서둘러 와 주었고,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집에서 마냥 남편의 연락을 기다려야 했다.
미국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미국에서 병원을 가는 건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일단, 병원을 가려면 미리 예약을 잡아야 하고,
그렇게 병원을 간다고 해도 한국인이 운영하는 병원이 아닐 경우 내 증상을 설명하거나, 의사의 설명을 알아듣기도 힘이 든다.
게다가 개인병원의 경우 의료시설이 낡거나 오래된 경우가 많고, 한국에 비하면 만족할 만큼 제대로 된 치료를 받기가 쉽지 않다는 게 현지인들의 조언이었다.
게다가 병원비는 또 얼마나 비싼지.
아이가 감기에 걸려 동네 소아과를 갔는데 진료비만 100달러 가까이 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보험이 없이는 병원 갈 엄두도 내기 힘들 정도다.
하지만, 당장 남편이 아픈 상황에서 병원 비용이나 의료질을 따지고 있을 겨를이 없었다.
돈이 얼마가 들었든, 어떤 병원이든 찾아서 치료를 해야 했다.
남편이 후배와 병원에 간 동안, 내 머릿속엔 온갖 불길한 걱정들이 오고 갔다.
며칠 전, 남편의 사촌형이 뇌출혈로 갑자기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은 뒤라 더욱 그랬다.
혹시 뇌질환이면 어쩌지, 당장 입원을 해야 한다면 어떡하지, 한국에 가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당장 무엇부터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하지.
불안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찾아왔다.
미국 1년 살이를 준비하느라, 그동안 남편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운 것만 같아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도 함께 했다.
후배와 함께 병원을 간지 두 시간이 넘었을까.
연락이 없는 남편이 걱정되어서 전화를 해보니 병원을 갔다가 약국에 있다고 했다.
다행히 뇌질환 쪽 문제로는 보이지 않았는지, 진통제와 메슥거림을 줄여주는 약 정도를 처방받았는데 약국에서도 어지러움이 있어서 잠시 상태를 지켜보는 중이라고 했다. 통화를 끝내고 아이들과 어두운 밤길을 걸어 남편을 마중 가던 그 시간을 잊을 수가 없다.
불안과 초조, 걱정이 가득하던 그 밤길의 어둠을.
병원에서 처방해 준 약으로는 증상이 크게 나아지지 않았고, 그 이후로도 남편의 두통은 심해졌다 나아졌다를 반복하며 몇 달간 지속됐다.
그 뒤로 멀리 한인 의사가 있는 병원까지 찾아가 진료를 보고,
혹시 뇌혈관에 문제가 있을까 싶어 뇌 CT도 찍어보고,
다행히 큰 이상이 없다는 소견을 들은 뒤로는 한의원을 다니며 치료를 받았다.
그리고 한의사 선생님의 조언대로, 아침저녁으로 2만 보 이상을 걷고, 집에서 할 수 있는 간단한 스트레칭과 폼 롤러를 이용해 뭉친 근육을 풀어주기를 반복했다. 그중에 어떤 게 도움이 됐는지 알 수 없지만, 다행히 남편의 두통은 아주 조금씩 잦아들기 시작했다.
아픈 남편을 곁에서 지켜보는 그 몇 달은
아프면 언제든 손쉽게 가까운 병원을 찾을 수 있고,
몸에 좋은 보양식과 입맛 당기게 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고,
가까운 사람들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한국이 사무치게 그리웠던 시간이었다.
그러니 타지에서는 아프지도 말아야 한다. 서럽고 그립고 사무치게 외로워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