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 초등학교 2학년.
두 아이의 등굣길에 매일 아침 함께 한다.
둘 다 혼자서도 충분히 학교를 갈 수 있는 나이인 건 알지만,
아직은 아이들도 엄마와 함께 하기를 원하고,
나 역시 아이들과 함께 등교하는 행복을 조금 더 오래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엄마와의 거리가 멀어지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일.
등굣길에 따라나서는 엄마를 반겨줄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겠지 생각하면,
할 수 있을 때 조금이라도 아이들과의 시간을 벌어두고 싶은 엄마의 욕심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은 오늘도 커다란 가방을 어깨에 메고 졸랑졸랑 앞서 뛰어간다.
그러다 엄마가 잘 따라오는지 한번 돌아본 다음,
엄마가 가까워오면 또다시 달음박질을 친다.
그렇게 형제 둘이 앞서거니 뒷거거니 장난을 치며 걷다 보면 금세 학교 앞에 닿는다.
학교 앞 정문이 보이는 공원 끝에 다다르면, 오늘 하루도 재밌게 보내라는 인사와 함께 헤어진다.
그런데 3월까지만 해도 헤어지기 전에 뽀뽀를 해달라고 입을 내밀던 둘째가,
오늘은 이렇게 말했다.
“엄마, 이제 헤어질 때 뽀뽀 안 해줘도 돼.”
갑작스러운 둘째의 뽀뽀 거부 선언에 짐짓 서운해진 내가 이유를 물었다.
“왜 이제 엄마랑 뽀뽀 안 해?”
엄마 마음을 눈치챘는지, 서둘러 달래듯 둘째가 이렇게 말한다.
“어릴 땐, 학교에 가면 엄마가 없으니까 엄마를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어서 뽀뽀를 했는데,
이제는 학교에 엄마가 없어도 괜찮으니까 그래. 엄마는 집에 와서 보면 되잖아. “
등교를 할 때면 꼭 학교 정문 바로 앞에서, 엄마랑 헤어지기 직전까지 뽀뽀를 하고 또 하던 둘째였다.
입술이 건조한 내가 바르는 립밤 향기가 자기 입술에 제대로 묻을 때까지.
그렇게 해서라도 조금이라도 더 오래 엄마의 향기를 기억하려는 둘째가 늘 애잔했다.
그랬던 둘째가, 이제는 엄마가 곁에 없어도, 엄마의 향기를 애써 묻히지 않아도 더 이상 불안하거나 허전하지 않다니.
부쩍 의젓해진 둘째가 대견하고 다행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아이들에게 세상의 전부였던 엄마의 자리는, 아이들이 커갈수록 점점 작아진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더 이상 엄마랑 뽀뽀하지 않겠다는 아이는, 머지않아 학교도 혼자 가겠다고 하겠지.
그리고 얼마 안 가 엄마보다는 친구가 좋다고 할 거고, 언젠간 자기만의 길을 찾아 엄마품을 떠나는 날도 올 거다.
그렇게 언젠가 떠나보낼 걸 알면서도, 알기 때문에.. 엄마인 나는 오늘 더 아이들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 커갈 아이들에겐 오늘이 가장 어린 날이니까.
오늘이 엄마와의 거리가 가장 가까운 날이니까.
오늘 더 많이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수밖에.
오늘 비록 뽀뽀 거부 선언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