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아파트 보급이 시급하다
미국 집에 대한 환상과 현실
LA 공항에서 내려서 집으로 가는 길.
겨울에도 푸른 잔디와 초록 나뭇잎이 무성한 풍경들이 캘리포니아에 와있음을 실감케 했다.
한국에서 싣고 온 박스와 캐리어를 가득 싣고 한 시간여를 달려,
우리가 미리 계약해 둔 아파트에 도착했다.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자, 한국의 고층 아파트와는 달리
일반 주택들이 모여있는 형태의 넓은 집들이 쭉 늘어서 있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전원주택 단지에 들어선 느낌이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많이 보던 미국 가정집에서 실제로 살아보다니 내심 기대를 했었다.
하지만 실제로 마주한 미국 아파트는 우리와 다른 점들이 많았다.
불행히도 좋은 쪽이 아니라 나쁜 쪽으로...
참을 수 없는 미국 아파트의 불편함
일단 욕실을 제외한 집안 모든 바닥에 카펫이 깔려 있었다.
덕분에 미국에 와서 가장 먼저 구매한 가전제품이 카펫 청소가 가능한 청소기였다.
먼지도 잘 쌓이는 데다가, 바닥에 뭔가를 흘리면 그야말로 대략 난감.
카펫은 일반 바닥과 달리 청소가 쉽지 않다 보니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또 하나, 미국 와서 놀란 건 방에 형광등이 없다는 거였다.
욕실과 주방을 제외한 방에는 따로 조명장치가 되어있지 않아서,
스탠드를 구비하지 않으면 별 수 없이 컴컴한 암흑 속에서 지내야 한다.
스탠드를 켠다고 해도 그리 밝지가 않아서, 형광등이나 LED 등처럼 밝은 조명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은은한 간접조명 불빛은 한동안 영 시원찮게 느껴졌다.
그리고, 욕실 바닥이 타일이 아니라 나무로 되어 있다는 점도 달랐다.
욕실 바닥이나 세면대, 변기를 세제로 박박 닦아서 물로 깨끗이 씻어내야 직성이 풀리는 K-아줌마에게
나무로 된 욕실 바닥 청소가 여간 답답한 게 아니었다.
무엇보다 불편했던 건 미국의 난방 방식이다.
바닥이 아니라 공기가 데워지는 방식이다 보니, 난방을 돌리면 심하게 건조해져서 가습기는 필수였다.
게다가 바닥에 온기가 없으니 보일러를 끄면 얼마 안 가 집안이 썰렁해진다.
1년 내내 따뜻하고 화창하고 맑은 날씨로 유명한 캘리포니아지만, 올해는 유독 쌀쌀하고 비도 많이 내렸다.
우리가 처음 온 1월은 물론이고, 6월인 지금도 저녁에는 두꺼운 겨울 이불을 덮고 자야 할 정도다.
이곳에 사는 분들이 왜 그렇게 전기장판을 챙겨 오라고 했는지 알 거 같았다.
한국에서 꾸역꾸역 극세사 이불을 챙겨 온 게 그나마 천만다행이었다.
보일러가 돌면 얼마 안 가 뜨뜻해지던 한국 집의 바닥 생각이 간절했다.
미국에서 물 걱정, 벌레 걱정을 할 줄이야
게다가 미국의 수돗물은 대부분 석회수다.
세면대나 싱크대에는 하얀 얼룩이 남는 데다가, 요리를 할 때는 반드시 정수된 물을 사용해야 한다.
물 때문인지 이곳에 와서 머릿결이 푸석푸석해지고, 피부도 거칠어졌다는 분들이 많았는데,
우리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이걸 예방하려면 따로 연수기를 설치해야 하지만,
1년살이를 하면서 그것까지 갖출 순 없었다. 덕분에 나의 긴 머리는 점점 빗자루로 변해가고 있다.
이뿐만 아니다. 미국 아파트에는 개미부터 시작해서, 거미, 바퀴벌레, 심한 경우에는 쥐까지
심심찮게 출몰하곤 한다는 사실! 다행히 우리 집은 아직까지 바퀴벌레나 쥐가 나온 적은 없지만,
온라인 단톡방에는 종종 집에서 나타난 정체불명의 벌레들의 이름을 묻는 글들이 올라오곤 한다.
오래된 집들도 많고 나무로 지어지다 보니 벌레들이 서식하거나 침입하기 쉬운 걸까?
한국에선 벌레라면 까무러치던 우리도 얼마 안 가 작은 거미나 개미떼를 보고도 놀라지 않는 경지에 이르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에 와서 오히려
한국의 주거문화가 얼마나 선진화되어 있는지를 역으로 느낄 수밖에 없다.
심지어 아파트 문을 열고 닫을 때도, 미국에서는 지금도 '열쇠'를 이용한다.
집을 나설 때마다 열쇠 꾸러미를 챙기고, 아파트 출입문부터 집 현관문까지 열쇠를 바꿔가면서
일일이 열어야 한다.
그럴 때마다 손가락으로 비밀번호만 띡띡 누르면 열리던 한국 아파트가 얼마나 그리운지.
미국에 와서 한국에 있는 가족들이나 한국의 음식이 그리워질 줄은 알았지만,
한국 아파트까지 그리워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