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각자도생 하는 법 배우기
아들 둔 엄마들은 아는 미용실 가기의 어려움
나는 20년 넘게 긴 머리를 유지하고 있다.
긴 머리를 유지하는 이유는 짧은 머리가 어울리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긴 머리가 의외로 손질이 간편하고 미용실을 자주 갈 필요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미용실은 일 년에 두 번..
부스스해진 반곱슬 머리를 펴주거나 긴 머리카락 끝을 잘라줄 때 찾는 게 전부다.
(물론 40대에 들어서면서 급속히 늘어난 새치 때문에 미용실을 찾는 횟수가 늘긴 했지만;;)
근데 결혼을 하고 아들 둘을 낳고부터는 오히려 미용실은 더 자주 드나들게 됐다.
여자 아이들이라면 머리를 길러서 예쁘게 묶어서 키웠겠지만, 남자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잘라줘야 했다.
의자에도 겨우 앉아있는 아이를 데리고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자르는 일은 그야말로 곤욕이었다.
울고 불고 발버둥 치는 아이를 스마트폰으로 어르고 달래 가며 머리를 자르고, 집에 돌아와 아이 둘을 씻기고 나면 그야말로 기진맥진이 되곤 했다.
그래도 시간이 흐르면 어김없이 머리카락은 자라고,
얼마 안 가 앞머리가 눈을 찌르고, 귀 옆머리와 목 뒷머리가 지저분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국에선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두 아들을 데리고 미용실을 드나들었다.
‘미국에 가면 아이들 미용실은 어떻게 하지?’
미국살이를 준비하면서 들었던 여러 가지 걱정들 중 하나였다.
물론 미국이라고 미용실이 없을 리 없고,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가서 머리카락을 자를 수 있겠지만
미국 미용실이 한국에 비해 워낙 비싸고, 마음에 쏙 드는 곳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주변의 이야기를 익히 들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까탈스러운 아들 둘을 데리고 갈만한 미용실이 있을지도 걱정이었다.
-그래도 미국인데.. 설마 머리카락 자를 곳이 없겠어?
-일 년인데 뭐, 아무 데나 가서 대충 자르고 지내야지.
이런 마음으로 일단, 미국으로 건너왔다.
미국에 오기 직전, 한국 단골 미용실에 들러 최대한 짧게 머리를 다듬었지만,
미국에 온 지 한 달이 넘어서자 어김없이 머리가 귀를 덮으면서 조금씩 지저분해져 가기 시작했다.
한국이라면 벌써 머리를 자르고도 남았겠지만, 최대한 버티고 버텼다.
그리고 미국에 온 지 두 달 만에, 일단 남편이 먼저 미용실을 가보기로 했다.
쓰라린 미국 미용실의 첫 경험
한국에서는 꽤 까다롭게 미용실을 고르던 남편이었지만, 미국에서는 그런 걸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미국까지 와서 마음에 드는 미용실을 찾기도 어렵거니와, 미용실 가격이 워낙 비싸다 보니 적당한 가격의 미용실을 찾는 게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주변 한국인들의 추천으로, 집에서 5분 거리의 미용실을 처음 찾았다.
한국인 여성분들이 운영하는 조그마한 미용실이었다.
아주머니들의 수다 소리와 가요가 흘러나오는, 우리나라로 치면 어느 시골 마을의 동네 미용실 같은 분위기였다.
미리 예약한 시간에 맞춰 미용실에 도착하자마자 남편을 의자에 앉히더니, 거침없이 클리퍼(일명 이발기)로 슥슥 머리를 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앞머리 쪽만 가위질을 몇 번 하고 끝이었다.
남편이 원하는 스타일이나 머리 모양 같은 건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아마, 누가 오든 똑같은 방식으로 머리를 잘라줄 거 같았다.
10분 남짓 짧은 시간 안에 이발을 마치고 든 비용은,
팁까지 붙여서 40달러(우리나라 돈으로 5만 원 정도)였다. 우리나라 같으면 남편에 아이들 둘까지 머리를 자르고도 남았을 가격이었다.
가격이 비싸더라도 스타일이 맘에 들면 돈이라도 아깝지 않으련만. 이발을 마치고 나온 남편의 표정은 영 씁쓸해 보였다. 들인 돈에 비해 만족도가 지나치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남편은 그렇다 치고, 두 아들의 머리카락은 어떻게 잘라야 할지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미용실에 가면 아이들이 가만히 앉아있는 걸 힘들어하는 데다, 한국 단골 미용실 이모처럼 아이들 비위를 맞춰가며 친절하게 잘라주기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가정용 클리퍼를 구입하다
남편과 미용실을 다녀온 뒤, 아이들 머리는 차라리 내가 직접 잘라주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미국에 오기 전에도 셀프 미용을 고민해 보긴 했지만, 그땐 차마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실제 미국 미용실을 한번 다녀오고 나니, 기계로 몇 번 쓱쓱 밀고 가위로 다듬어주기만 하는 정도면,
나도 할 수 있겠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렇게 해서, 계획에도 없던 '클리퍼'를 덜컥 구입해 버렸다. 그리고 유튜브 영상을 보며 남자아이 머리카락 자르는 영상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일단, 남자들의 스타일을 좌우하는 옆머리는 가위를 이용해 모양을 잘 다듬어주고,
다른 곳보다 빨리 자라는 뒷머리는 클리퍼를 이용해서 잘라준 다음,
뒷머리가 봉긋하게 살아날 수 있게 덮이는 머리는 길이감을 유지해 주고,
마지막으로 앞머리를 살짝 다듬어주면 된다고?!
머리로 이해했으니, 이제 실전이다!
아이들 머리카락을 처음 잘라보다
주말을 맞아, 아이들 머리카락을 잘라주기로 마음먹고 베란다에 의자 2개를 붙여서 간이 미용실을 만들었다. 아이들의 눈은 스마트폰에 고정시켜 놓고, 조심스럽게 옆머리부터 자르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잘못 잘라서 아이들 인물을 망쳐놓으면 어쩌나, 날카로운 날이 스쳐서 상처라도 나면 어쩌나, 가위질 한 번 할 때마다 긴장이 됐다.
게다가 처음 써보는 클리퍼는 손에 익지 않아서 기계 소리에도 움찔움찔했다.
그러다 보니 아이 한 명 머리 자르는 데 한 시간 남짓 시간이 걸렸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추느라 잔뜩 구부린 허리는 끊어질 듯 아프고, 바닥은 머리카락으로 엉망이 됐지만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물론, 전문 미용실에서 자른 거에 비하면 비뚤비뚤 투박하게 보이겠지만, 아이들 머리를 직접 만져줄 수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뿌듯함과 행복감이 컸다.
아이들도 아직 외모에 그리 민감한 나이가 아니라 그런지, 거울 속 자신의 모습에 그럭저럭 만족해했다.
미국의 비싼 물가 때문에 시작한 셀프 이발이었지만,
덕분에 아이들과 함께 새로운 추억을 하나 더 쌓을 수 있게 된 셈이다.
설사 조금 비뚤고, 좌우 길이가 조금 다르면 어떤가.
머리카락은 금세 또 자랄 테고, 보기 싫은 부분은 집에서 조금씩 다듬어가면 되지.
혹시 또 누가 아나. 한국에 돌아갈 때쯤이면 클리퍼 사용에 익숙해져서 아이들 머리카락은 계속 내가 자를 수 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