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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오유진 Oct 11. 2024

깔끔하고 싶지만 그렇지 못합니다(4)-소비와 나의 싸움

불안과 공허 속에서 소비의 의미를 찾는다

해가 지는 서쪽 하늘이 불안하고 서글펐다.

그날은 20일에 받은 월급이 9일 만에 0원이 된 날이기도 하다.


이미 한 달 전의 내가 지금의 돈을 당겨 쓴 결과였다.


불쾌함이 치밀어 올랐다. 이 쳇바퀴를 끊어버리고 싶었다.

낮에 아이들 간식으로 고구마를 쪄놓았지만, 큰 아이는 피자가 먹고 싶다고 했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오늘은 집밥이다라는 다짐 흩어지고, 결국 ‘그래’라고 대답하며, 신용카드를 쥔 손으 집을 나다.


왜 난 거절하지 못하는 걸까? 굶자는 것도 아니고, 집에 있는 것 먹자는 그 한 마디가 왜 입에서 안 나오는 걸까?

마음의 갈등은 메스꺼움으로 드러났고, 어지러운 속을 달래기 위해 하늘을 바라본다.


이 모든 것이 어릴 적부터 경험한 경제적 압박에서 비롯된 걸까?
 그 고통스러운 기억이 지금까지 나의 선택을 가로막고 있는 걸까?


사채업자가 부모님이 장사한 돈을 매일 가져갔고, 나는 그 옆에 서서 닭꼬치 냄새로 축축해진 3만 원을 받아들고, 밀린 월세를 일수 방식으로 주던 내 모습을 떠올린다. 그 기억은 다시 나를 초라하게 만든다.


고춧가루가 묻은 천 원짜리 15장과 오천 원 1장, 찢어진 만원.

 주인아줌마는 내 앞에서 돈을 센 후, 먼저 문을 닫고 들어간다. 그순간 그 천 원짜리 지폐들보다도 더 작고 무력하게 느껴졌다.

돈을 셀 때마다 아줌마의 손끝에서 내가 발가 벗겨지는 것만 같았다. 그 앞에서 잠시 서 있는다. 이 짓이 언제 끝날까? 끝은 있을까?


현금이 들어오는 순간, 누군가가 다 가져가 버릴 것 같은 불안감은 지금도 나를 짓누른다.


결국 아이들에게만큼은 빈곤을 들키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이 내 안에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건강한 해결책이 아니다. 마음의 구멍지지 않는다.


하지만,


직면해 보았다. 나의 쓰임을 기록했고, 거기에 감정을 덧대었다. 어떤 소비는 기쁨을 주었지만, 어떤 소비는 공허함을 주었다.

공허함을 준 소비를 일기로 기록했다.


일기를 쓰는 동안, 감정들이 다시금 떠올랐고,  감정의 근본 이유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 공허함을 이해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그 반복을 막을 힘을 얻기 시작했다.


아울러, 스스로 느끼고 있는 경제문제에 대한 정서적 부담을 조금씩 내려놓아야겠다.

이기적이지 않고, 잘 살아왔다고 다독여주고 싶다.

돈을 쓰고도 불쾌한 감정에 휩싸이는 습관에서 벗어나서 내 소비의 의미를 다시 정립하고 싶다.


10월 20일, 다시 월급을 받는다.


이번에는 무작정 쓰지 않고, 하나하나 내 선택에 주의를 기울이겠다. 그 소비가 나에게 어떤 감정을 줄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살펴볼 것이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돈에 끌려가는 삶이 아니라 내가 주체가 되는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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