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월요일 9시 30분이면 앞집 할머니께서 혈당을 재러 오신다. 최근 당뇨 전 단계라는 의사 선생님의 이야기에 걱정을 많이 하셔서, 공복혈당, 식후 2시간 혈당을 같이 살펴보고 있었다.
오늘도 9시 10분에 전화가 왔다.
“혈당 재러 가도 될까?”
할머니께서 어깨에노란 은행잎을 붙이고 들어오셨다. 아침을 안 드시고 들깨 털어서인지 기운이 없다며 소파에 풀썩 앉으셨다. 그 순간, 들깨향이 내 눈과 코 사이로 성큼 들어왔다.
잠시 아득해졌다.
'11월이구나-'
풀물이 든 할머니의 손톱 아래 굳은살을 알코올솜으로 닦고, 혈당을 재니, 104가 나왔다. 평소보다 10 정도 높은 수치였다. 물끄러미 할머니를 쳐다보았다.
내가 말없이 할머니를 쳐다보면, 할머니는 브이로그 찍듯이 어제 드신 음식들과 있었던 일들을 말씀해 주신다.
어제 갑자기 서울에서 손님이 왔는데, 아 글쎄 이 손님이 과메기와 삼겹살을 푹 삶아왔단다. 막걸리 한 잔 같이 드시고, 시루떡도 드셨단다.
잘 먹고 갈 줄 알았던 손님이 할머니 밭을 돌아다니며 이것 달라 저것 달라해서 챙겨주는 통에 피곤하셨단다.
오늘 새벽에 비소식이 있어서 어제까지 들깨를 다 털었어야 했는데, 그 사람은 도와주지도 않고 휑하니 서울로 갔단다.
밤에 몸도 피곤하고 못 턴 들깨 때문에 속상하고 잠이 안 와 맥주깡(맥주캔) 하나를 드셨단다. 그래서 그랬단다.
난 빙긋 웃으며 말씀드렸다.
“오랜만에 손님 오셔서, 신경 쓰이고 힘드셨나 봐요. 100은 넘었지만 이 정도는 걱정하지 말아요 우리.
오랜만에 행복하게 맛난거 드셨잖아요. 다음번에는 간소하게 드시고 또 재러 오세요. 그런데, 주무시기 전에 약주 드시는 건 우리 멈춰봐요.”
내 답변을 듣고 할머니는 이내 눈웃음을 짓고는 시장하시다며 일어나셨다.
할머니 팔짱을 끼고 배웅하며 나가는데, 할머니께서 멈춰서 날 보며 말씀하셨다.
“우리 집 국화가 너무 예뻐서 매일 아침저녁 얼굴 비비며 너 이쁘다 이쁘다 해주고 있어. 할아바이도 간암으로 죽고 개도 없고 아무도 없으니, 혼잣말해도 누가 뭐라 해. 그런데, 내가 얼굴을 살살 비벼주면 국화도 좋아하는 거 같아. 향을 솔솔 내주더라고. 점심에 국화 보러 와~”
사실, 지난주 나는 이런저런 이유의 게으름으로 글을 쓰지 못했다. 물 먹은 들깨 마냥 몸과 마음이 축 가라앉아 있었다. 이 책 조금 저 책 조금 찔끔찔끔 읽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