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감히 둥지를 나선 말레이시아 유학생입니다
'말레이시아의 첫눈', 듣자마자 어이없을 정도로 말도 안 되는 논제입니다. 말레이시아는 적도와 매우 인접해 있는 나라로 당연히 눈은 내리지 않으며, 휴양지로써도 꽤나 인기 있는 동남아 국가들 중 하나입니다. 조금 안타깝게도 저는 이 더운 나라에 관광이 아닌 유학을 하러 오게 되었습니다.
'말레이시아의 첫눈', 동시에 제 첫 자작곡의 제목이기도 합니다. 혹시 이 말이 낭만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으신지요? 지나치게 역설적인 문장들은 종종 마음에 담기곤 합니다. 한국의 아름다운 많은 시들이 모순을 통하여 아름다움이 표현했듯이 말입니다. 어쩌면 인간은 모순적인 존재이기에 사실 그대로 설명해서는 이해될 수 없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저만의 이 패러독스는 눈과 고향의 많은 것들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담겨 있는 말이고 곡입니다. 이곳에 도착한 이후 눈을 비롯해 많은 것들을 한 번도 보지 못했으니까요.
'말레이시아의 첫눈', 아, 역시 그립습니다. 그리움뿐만이 아니더라도 풀어가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 하지 않습니까? 비록 당신과 비교해서 그다지 특이하지 않고 특별하지 않은 인간일지도 모릅니다만, 개인적인 이야기들만은 제 안에 가득히 쌓여 터져 나올 듯합니다. 삼투압의 영향으로 가득히 채워진 적혈구의 마음을 이제 알겠습니다.
너무 시적인 말들을 늘어놓은 것 같아 민망합니다. 다만 모국어를 통하여 다채로운 감정을 드러내는 일도 제가 그리워하던 것들 중 하나이기에 이를 참작해 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오늘은 간단히 제가 어떻게 평범한 고등학생에서 유학생으로 삶의 방향을 순식간에 바꾸게 되었는지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고작 2년 전, 저는 한국에서 어느 고등학교에 다니던 꽤나 촉망받는 인재였습니다. 최고는 아니었지만 공부는 항상 잘하는 편이었고, 부끄럽지만 타고난 재능이 많은 편이라 두각을 드러내는 분야가 적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것을 모두 타인에게 내보이기에는 망설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유학을 결심하게 된 것은 아버지의 지인께서 유학원에서 일하신다는 소식을 들은 때였습니다. 항상 외국의 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꿈이 있었던 저로써는 유학의 리스크조차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한국의 정서와는 맞지 않다는 느낌이 자주 들었고(기회가 된다면 이에 대해 다른 글에서 자세히 설명드리고 싶습니다) 언어와 다양한 인간사에 관심이 커서 타인의 삶에 대한 물음을 종종 던졌습니다. 물론 지금의 제가 본다면 그때의 저는 '다양한 인간의 삶'의 디귿 자도 모르던 사람이었습니다. 다양함의 대명사인 말레이시아에 와 보니 사람들이 자주 일컫는 그 우물 안의 개구리가 바로 저였더군요.
사실 유학을 오는 것은 제 플랜 B에 가까웠습니다. 외국 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자율사립학교나 국제고등학교에서 공부하고 싶었습니다만, 호기롭게 신청한 자사고의 면접장에서 안타까운 탈락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결국 한국의 대학교에 만족해야 하나? 생각하며 절망하기보단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던 날들이었습니다. 저는 제게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기다림의 시간 끝에 말레이시아로 오게 되었습니다.
한국과는 정말... 다르더군요. 처음엔 무엇 하나도 제 상식에 익숙한 모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허구한 날 도마뱀이 천장을 기어 다녔고, 천둥번개가 매일같이 치는 하늘에 카타르시스를 느꼈습니다(새로운 취향의 발견이랄까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는 매 순간 제 머릿속에 셀 수 없이 뉴런들이 이어지는 향연은 짜릿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당연히 좋은 것들만 있지는 않았죠. 다른 교육을 받고 다른 환경에서 자라 온 사람들의 생각 회로는 제가 절대로 이해할 수 없을 구조를 띈 것들도 많더군요. 그러한 느낌을 주는 사람들이 외국인에 한정되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더 많은 것들이 눈에 보일수록 제가 한국에서도 얼마나 많은 것들을 놓치고 있었는지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어른이 되어 가며 청소년기의 마지막 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스스로의 선택에 후회되는 순간도 분명히 많습니다. 지난주에도 실험실에서 효소의 활동 양상을 측정하던 중, 만약 한국에 남아 있었더라며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하얀 실험복을 벗지도 않은 채 이십 분 정도를 가만히 고심하며 앉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곳에서의 이야기를 한 번쯤 심도 있게 풀어나가 보고 싶더군요. 떠나게 된 결정과 가족들과의 대화들, 떠나온 친구들의 이야기, 이곳에서 만난 일본인 친구들과 중국인 친구들, 러시아인 친구들과 현지인 친구들, 이곳의 입시 제도, 영국 대학교를 목표로 두게 된 과정, 연애 문화, 호화로운(?) 기숙사 개인 방 안 저만의 작은 삶, 돈 관리를 하게 된 이야기, 프리랜서 번역가로서 그리고 과외 선생님으로서 시작한 경제 활동, 에이레벨과 캠브릿지 대학교, 작곡과 글쓰기를 시작하게 된 일화들...
제 이야기들은 당신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 고등학생의 입장에서 작성된 글들은 얼마 없더군요(이해하는 바입니다, 지나치게 열심히 살던 제 한국 고등학생 시절에도 그럴 여유는 없었습니다). 고등학생 유학생의 입장에서 작성된 글들도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므로 두 삶을 살아 본 제 이야기는 꽤나 개인적이고 꽤나 창의적일 것 같습니다. 당신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제 이야기의 긴 서론을 읽어 주셔서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평범한 인간의 특이한 삶이 궁금하실 때마다 찾아 주십사 부탁드립니다.
한국의 본가 근처에서 찍은 겨울의 모습입니다. 예쁘죠?
말레이시아에서 보게 된 가게들 중 하나입니다. 이곳의 성격이 잘 표현된 것 같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이야기의 가치를 아는 당신께서 제 이야기에 공감하여 누르는 구독과 라이킷은 현재 말레이시아 유학 중인 제게 큰 도움이 됩니다. 제 이야기를 읽으며 흥미로우셨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