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서 유학 중이라서 부모님과는 떨어져 지낸 지 거의 2년이 다 되어갑니다. 중간중간 방학 때마다 한국의 본가로 돌아가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죠. 그래서 그런지 가족들과 조금 더 애틋해진 구석이 있습니다.
저는 장기기억이 발달된 편이라 어렸을 때의 기억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중 가족들과 보낸 시간들이 제 머릿속에서 종종 반딧불이처럼 깜빡거립니다. 마치 오래된 영화를 재상영하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잊혀 가겠죠. 그렇게 되기 전에 한번 기억에 남는 추억들은 글로 되새겨 보고 싶었습니다. 아, 이 부분은 존대하지 않았습니다, 어쩐지 친근한 말투가 더 잘 어울리더군요. 부모님을 친근한 말투로 대하기 때문일까요.
자, 첫 장면이야. 시기는 아마도 초등학교 때였을까? 언제인지는 모르겠어, 정확한 나이나 시기는 늘 기억나지 않으니까, 그저 그때의 감정과 상황만 있을 뿐이야. 여행이나 캠핑을 자주 가던 우리 가족은 아빠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어딘가의 산속을 달리고 있었어. 다른 차도 없었고, 가을날의 높은 하늘에 창문을 활짝 열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숲을 달렸지. 그때 우리는 감나무가 가득히 열린 나무그루들을 발견해. 아마도 엄마와 아빠는 잠깐 이 감들을 따도 될지 고민했던 것 같아, 하지만 우리는 곧 모두 감 따기에 몰입했지. 동생과 나는 낮은 곳에 있는 감들을 공략하고, 나무를 타려 애써. 이때쯤 나무를 타는 데는 도가 터 있었으니까. 아빠는 어딘가에서 긴 나무막대기를 가져와 엄마와 열심히 감을 건드렸어. 바닥에 떨어진 것을 찾고 주워오는 건 우리들 몫이었고. 근처에 밤나무도 있더라. 떨어진 밤송이를 애써 벌려서 작은 밤들을 주웠지. 나중에 숙박시설에 가서 확인한 감과 밤은 벌레도 잔뜩 있고 아주 달지도 않지만 우리는 아주 큰 것을 성취했다는 것마냥 기세가 등등했어.
다음 장면이야, 우리는 제주도로 여행을 왔지. 바위가 많이 딸린 간조의 바닷가에서 우리는 얕은 바다에 사는 동물들을 구경하며 노는 것을 좋아해. 반바지에 샌들 차림으로, 물에 살짝 들어가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지. 지금은 미화된 기억 속에서는 마치 산호초 섬처럼 알록달록한 바위들 사이에서 보이는 따개비, 물고기, 말미잘 같은 것들이 잔뜩 무리 지어 있었어... 그때 물속을 한참 빤히 바라보던 아빠가 탄성을 지르며 물속에 손을 집어넣던 것을 기억해. 문어였어! 아빠가 바위 밑에 숨어 있던 문어를 잡았고, 곧바로 엄마가 들고 온 검은 비닐봉지 안에 문어가 담겼어. 차에서 가족들을 기다리며 비닐봉지 안의 문어를 품고 있었던 것은 나였고. 꿈틀꿈틀 움직이던 문어는 나중에 라면에 넣어서 맛있게 먹었단다. 비슷하게는 늘 부산의 친할머니 댁에 갔을 때, 근처의 방파제 사이 바위틈에서 작은 게나 조개 따위를 사냥하던 일이야. 아주 어릴 때에는 작고 겁이 없어서 방파제와 바위틈을 요리조리 다니며 성게도, 손바닥만 한 게도 잡으며 놀았지.
홍콩에 갔을 적에는, 쫄래쫄래 엄마를 따라 관광객용 버스를 타고 시장에 가서 열대과일을 잔뜩 샀었어. 람부탄과 망고는 눈에서 별이 튀는 단맛이더라. 집에 가기 전에 망고를 다 먹어야 한다며 전부 동생과 저의 입에 넣어 주던 엄마가 아직도 기억나.
집 근처 놀이터들에는 말할 것도 없지, 어릴 때는 기운이 넘쳐서, 땅도 파고 성도 짓고, 그저 최고 속도로 놀이기구를 오르락내리락거리던 기억도 있어. 아빠와 '겨울에 먹는 아이스크림이 진리'라며 놀이터 앞에서 빠삐코도 먹었어, 아이스크림은 입에만 물고 차가운 손은 주머니에 넣은 채로 말이야. 어릴 적 같이 놀던 친구들도 이름은 잊었지만 얼굴은 전부 기억해.
놀이공원과 워터파크에서는 열심히 키가 작은 어린아이들도 탈 수 있는 놀이기구를 가늠하던 아빠 모습이 기억나. 신발 밑에 휴지를 넣고 키를 커 보이도록 하던 것도.
하하, 동물원에서는 동물들이 생각보다 조용히 가만히 있구나~ 하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어. 가족들과 모든 동물을 다 돌아보려고 계획을 짜곤 했었지.
예쁘다는 공원들에 가서 인라인 스케이트도 타 보고, 보드도 타 보고, 피크닉도 해 보고, 엄마 무릎을 베고 눕기도 했었어. 엄마는 항상 잠들어도 된다고 했지만 나는 왠지 그 시간에 깨어 있는 것이 좋아 일부러 잠들지는 않았었어.
공원에서도 가끔 텐트를 쳤지만, 텐트는 해변이나 산속에서 자주 쳤었어. 삼겹살을 굽고 라면을 먹으며 모기와 싸우던 기억이 많이 있지.
눈밭에서는 눈사람과 썰매를 타고 놀았어, 당연히 눈싸움도 빠질 수 없고. 눈에서 놀러 나가기 위해서 준비하는 일은 모든 사람들이 다 하는 것인 줄 알았어, 스키 바지에 모자, 귀마개, 스키용 장갑, 온갖 방한용품까지... 10년도 더 된 얘기야, 요즘에는 눈이 많이 오지 않으니까.
어린이들을 위한 단체 캠핑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걸. 림보를 할 때는 고개를 숙이고 가는 것이 아닌 하늘을 보고 줄을 넘어가야 한다는 것도 배웠다고.
여행을 가며 배도 타고 비행기도 타고, 비행기 창문 바깥으로 높이 바라본 세상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보고, 라면이 얼마나 맛있는지, 김치는 무슨 맛으로 먹는 건지 알았던 기억도 아직 남아 있어. 솔직히 말하면 짜장면을 처음 먹었을 때는 짜파게티가 훨씬 맛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공주놀이라며 동생과 공주님 옷을 입고 엄마에게 화장을 해 달라고 했던 적도 있어. 엄마와 같이 목욕하던 기억도 말이야. 내 몸이 얼마나 작았길래 어떻게 엄마와 함께 욕조에 들어갔었는지 모르겠다니까. 목욕하며 엄마에게 살인 곰인형이 나오는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것 같은데... 엄마가 왜 웃었던 건지 알겠더라.
그저 단순하게 마트에 가고, 마트에서 시식을 하는 즐거움도 알고, 학교에 갔다가 미술학원에 가는 길을 잘 아는지 확인한다며 뒤에서 따라오던 엄마와, 할머니 댁에서 타던 해먹, 잔디 정원을 뛰어다니며 별을 보던 기억...
아빠는 종종 그러시덥니다. 어릴 적에 다양한 곳에 아이들을 데리고 다녀 봤자 소용없다는 말을 들었다고, 주변 사람들이 그러기를 아이들은 전부 다 잊게 된다고...
엄마는 자주 그러십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 지금만큼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아서, 바라는 걸 전부 해주지 못해 미안하시다고요.
엄마와 아빠가 그럴 때마다 저는 그때그때 생각나는 어린 기억들을 하나하나 읊어 드립니다. 아빠에게는 당신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고, 이렇게나 많이 좋은 순간들이 나의 유년기를 채워주었다고 말입니다. 엄마에게는 돈으로 살 수 없는 수많은 추억들이 나를 행복한 아이로 크게 해 주었다고 말해드립니다. 요즘에는 두 분 모두 그런 제 이야기를 들으려고 일부러 말을 꺼내시는 것 같기도 합니다.
모든 부모님들께서 그런 과정을 거치신다죠? 항상 본인이 부족한 부모였다고 여기는 것 말입니다. 글쎄요, 충분히 자랑스러워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수많은 행복한 기억들이 당신들의 훌륭함을 증명하고 있으니까요. 고작 몇 년 전까지도 아이였던 제가 감히 말씀드립니다.
이야기의 가치를 아는 당신께서 제 이야기에 공감하여 누르는 구독과 라이킷은 현재 말레이시아 유학 중인 제게 큰 도움이 됩니다. 제 이야기를 읽으며 흥미로우셨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