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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 관하여

by 이호성

첫 해외여행은 대학 4년 졸업을 앞둔 12월 겨울이었다.

일주일간의 일본 여행. 말 그대로 걱정 반. 기대 반. 비행기는 어떻게 타야 하고, 타서는 어떻게 해야 하며 정작 도착해서는 어떻게 일주일을 지내야 한단 말인가. 그리고 중요한 건 이 모든 걱정을 어떻게 설렘으로 포장하고 쪽팔리지 않고 태연하게 ‘초짜’ 티를 안내를 수 있단 말인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러나 역시 고민의 시간은 거의 소득 없이 에너지를 소비하는 시간으로 끝나버리고 ‘첫 경험’의 날은 다가오고야 만다.


일주일간 도쿄에 있는 대학교 선배 집에서 머무르기로 했다. 선배 입장에서 엄청난 호의를 베푼 것이었지만 그 당시만 해도 나는 그것이 나에게 얼마나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고 타지에서 여행의 편의를 제공하는 것인지 감조차 잡히지 않는 ‘초짜’였다.


공항에서 내린 후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는 공항 직원들의 안내를 받아 수속을 마쳤고, 말로만 듣던 친절하다 못해 미안하기까지 한 일본 사람들의 선의를 경험하며 지하철을 타고 내가 머무를 마을의 언저리까지 도착했다. 마중 나온 선배를 따라 자취하고 있는 보금자리까지 작고 좁은 일본 특유의 골목길을 지나면서 뭔가 경험하지 못한 오감들이 조금씩 자극되고 있다는 느낌을 동물적으로 알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선배가 아침에 출근한 후, 대충 아침을 먹고 여행객이라는 의무감에 문밖을 나섰다.

의무감이라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이방인’이라는 단어가 나를 의기소침하게 만들었고, 무기력하게 집에만 있고 싶다는 살면서 가져본 적 없는 한심한 생각이 움직임을 최소화했다. 그러나 결국 그 ‘의무감’이 나를 밖으로 내보냈고, 그때부터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처음 경험한 감정들이 지금까지 깊이 머릿속에 박혀있다.


그 경험을 기점으로 남들보다 늦었지만 혼자 낯선 곳으로 떠나는 행위가 얼마나 에너지 넘치는 일이고 그것이 나의 감각들에 어떻게 새로운 자극을 전달하는지 알게 되었다.




여행의 이유는 각자 너무나도 다르다. 삶에 지쳐서, 추억을 만들기 위해, 새로운 경험을 해보기 위해 기타 등등 비즈니스를 목적으로 가는 것이 아닌 개인적 사유로 낯선 곳을 선택하는 이유는 그 시기의 상황과 개인의 사고 흐름에 따라 모두 다르다. 그리고 그 목적의 다름이 새로운 곳에서 모두 각기 다른 상황들을 만들어낸다. 마치 우리가 매일매일 살아가는 하루지만 결국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인생처럼 말이다.




하루를 완벽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정말 부러워하곤 했다. 그들의 계획 능력과 의지력과 실행력을 나와 빗대며 자책하고 다그치기도 많이 했었다. 그리고 아직 다가오지도 않은 도착점을 비교하며 그곳을 향해가는 속도와 그 끝에 있는 보상의 차이를 점점 더 스스로 키우면서 스트레스받고 소중한 시간을 허비할 때가 많았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주는 허무함을 잠시나마 원위치시켜주는 것이 여행이었다. 대단하지 않게 혼자서 낯선 곳으로 떠나는 여행. 나를 바꾸고 개조시킨다는 거창한 목표가 아닌, 현실에서 도피하고 눈과 귀를 닫아버릴 작정으로 떠나는 여행이 아닌 그냥 앉은자리에 먼지 같은 게 살짝 쌓여있는 것 같아 좀 털어버릴 심산으로 잠시 떠나보는 여행.


그런 여행들이 나를 좀 더 나답게 만들어 주었다.


그런 이유로. 그 정도의 의미로. 여행은 충분히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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