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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넬하마담hamadam May 05. 2023

룸스타일리스트, 값진 경험

작년 이맘때쯤 인생의 변화를 맞이했다.

은퇴 1년을 남기고 명퇴라는 걸 하고 싶었다.

꿋꿋하게 사명감으로 퇴직을 하겠노라며 마음먹고 선포하고.

그렇게 40여년을 교사로 살았다.


어느 날. 불현듯.

의미 없고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고 1년이라도 빨리 나가 

두 번째 내 인생을 찾고 싶다는 강한 울림이 일기 시작했다.

고민도 많고 불안감도 커졌다.


은퇴. 

말로만 듣던 그 일이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부지런히 결심하고 정리하고 가볍게 나가자며 

그해 8월 퇴직이니 5.6월 병가를 쓰기로 결정했다.

심신이 지친 상태였고 하루빨리 심신수련을 하고 싶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퇴직을 결심하고 제일 먼저 실행에 옭긴 것은 새벽기상이었다.

전형적인 올빼미형인 내가 새벽 5시 기상을 실천하기로 맘먹고 마음과 몸과 약속하고

실행에 옮겼다. 

이제는 제법 나만의 루틴으로 자리 잡은 새벽 기상.

멋있고 자랑스러운 나의 일상.

자랑하고 싶을 정도로 기특하고 대단한 시작이었다.     

5월부터 휴직이 시작되었다.

설렘 반 기대 반 두려움 반, 모든 게 반반인 미완성의 도전이다.

밀려오는 불안함은 대체 무엇일까.

사회로부터 도태되는 듯한 묘한 느낌, 어디 먼 곳으로 유배되어 가는 느낌이다.

40여년을 직장에 몸담았으니 이해도 된다.

출근 안하는 아침이 이렇게 여유롭구나.

이런 꿀맛 같은 세상도 있구나. 며칠은 무아지경이기도 했다.

그런데 식사가 문제였다.

혼자서 밥 먹을 수도 있는데 왜 혼밥이라고 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혼밥은 쓸쓸하고 나처럼 먹는데 진심이 없는 편인 사람은 참으로 힘든 상황의 연속 이었다.


가끔 허전함에 울기도 하면서 그럭저럭 지내던 어느 날.

열정을 쏟을 만한 일이 생겼다.

어느 지인께서 제안을 하신다. 

“혹시 펜션을 운영해 볼래요? 강이 흐르고 산속에 자리 잡은 그야말로 산수가 아름다운 곳에 위치한 펜션이 있어요.” 

남편이 글을 쓰는 사람이라 조용하고 아늑한 곳을 찾고 있을 즈음이기도 했다. 우리는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고 며칠 후 부터 그 곳 생활을 하기로 결정했다.

펜션은 전북 순창군 장군목 근처, 명소인 용궐산 자락에 있었다.

남편은 주변 경관에 반해 설레기까지 하다며 글도 쓰고 쉬엄쉬엄 펜션을 운영하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퇴직 준비하는 나와 오소도손 운영 해보면 좋겠다는 말도 함께 했다.

그렇게 룸 스타일리스트, 생활이 시작 된 것이다.

룸 스타일리스트란 마케팅과목에 나와 있는 용어다. 쉽게 설명하면 청소하는 분을 높게 지칭하는 용어이다. 나에게 첫 번째 별명을 붙여주고 소리 내 본다.

 ‘룸 스타일리스트 하마담’


인생 2막을 꿈꾸는 나는 즐겁게 긍정적인 생각으로 펜션 일을 시작하기로 맘먹었다. 

성대하게 개업식도 하고 마을 분들에게 신고식도 했다. 

우리 부부가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는 생애 첫 도전을 응원하는 것처럼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드디어 첫 날 손님들이 밀려왔다.

산 속이라 5월인데도 저녁과 새벽에는 제법 쌀쌀했다.

대가족들이 여러 팀 오셨다. 즐겁게 드시고 웃고 떠들고 밤새 시끄러웠다.

새벽녘쯤 전화벨이 요란스럽게 울렸다. 늦게 잠든 터라 비몽사몽 눈을 뜨고 전화를 받았다. 

대뜸 첫마디가 우렁차다 못해 고함이 들려왔다. 들어보니 사연은 보일러가 작동이 되지 않아 밤새 오들오들 떨다가 너무 화가 나 전화를 한거였다.

놀란 우리 부부는 허겁지겁 뛰어 내려갔다. 

죄송함에 여러 번 머리를 조아렸다. 그런데 소용이 없었다. 손님은 술에 취해 횡설수설 했다.  

    

아, 세상살이가 이런 거로구나.      


한평생 봉급생활자였던 나는 어이가 없고 정신까지 혼미해졌다. 설득과 설명을 얼마나 했을까. 드디어 손님의 화가 수그러들었다. 혹독한 신고식이었다. 

우리가 운영하게 된 펜션은 아주 오래된 곳이었다.

시설이 많이 낡았고 손 볼 곳이 많았다. 그런 일에 경험이 없었던 우리 부부는 경치가 좋고 밤새 물소리 들리는 그곳만을 본 것이다. 여러 가지를 꼼꼼히 점검하지 못한 우리의 실수다. 호되게 신고식을 치르고 룸 스타일리스트 본연의 자세로 최선을 다해 임했다. 

룸이 나름 많았고 1호실은 복층으로 30여명이 이용할 수도 있는 곳이었다. 성수기 때는 날마다 만실이 되었다. 당일 3시 입실,  그다음날 11시 퇴실이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다음 손님을 위해 우리 부부는 정신없이 청소를 반복했다.

 나는 주방, 남편은 화장실 이하 여러 곳을 맡았다. 땀으로 범벅이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한나절을 청소하고 나면 다음 손님들이 들어오신다. 


우리 부부는 평소에 다툴 일이 없었다. 이 일을 시작하면서는 어땠을까. 평생에 싸울 싸움을 다했다. 

생각과 의견이 달라 싸우고 청소상태가 달라 싸웠다. 최종점검은 주로 나의 몫이었다. 

화장실 청소상태가 맘에 들지 않는다. 고민도 잠시 손에는 고무장갑이 끼워져 있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청소를 했다. 

룸스타일리스트하면서 내가 그렇게 꼼꼼한 사람인 줄 처음 알았다. 

내 생각은 그렇다. 돈을 내고 오는 사람들한테 청결은 기본이고 사소한 일로도 책잡히고 싶지 않았다. 그런 생각이 남편과 이견이나 자꾸 싸우게 되는 것이다.     


이곳은 마당이 자그마치 1300평. 정신이 하나도 없다. 분리배출을 하려면 얼마나 뛰어다녀야 하는지 모른다. 한여름에는 시골 뙤약볕에 머리카락이 타기도 했다. 

벌레와의 전쟁을 날마다 치뤘다. 고된 시간이 지나면 하늘이 보였고 물소리가 들렸다. 

이 순간이 가장 행복했다.


가장 신경 쓰이고 화가 났던 건 분리배출이다. 그즈음 환경공부를 하고 있었기에 더욱 불편했다. 사람은 든 자리, 난 자리가 중요한데 손님들은 이리저리 던져놓고 떠나버린다. 

그 상황이 속상하고 답답했다. 

눈만 뜨면 마당에 풀들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자라 있었다.

가을에는 낙엽이 수북하다. 낙엽을 밟으러 다녔던 길들은 낭만 가득했다. 

현실은 낙엽을 어떻게 치울 지 걱정만 앞선다. 


우리는 그렇게 1년을 운영했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사람에게 어울리는 옷을 찾아 입는 것도 삶의 지혜라는 깊은 깨달음이다.

글 쓰고 영화 시나리오 쓰는 일에 몰입하려고 내린 결정은 낭만의 허구성만 보게 되었다.

남편은 1년 동안 글을 하나도 쓰지 못했다. 초저녁부터 새벽까지 손님 수발을 들어야 했으니까 당연하다. 

치열한 경험을 했고 즐기면서 하는 일은 현실과 괴리감이 있음을 뼈저리게 알게 해주었다. 

기억에 남는 손님들도 있었다. 3대의 가족들이 화목하게 놀다 가시는 모습에 뿌듯하기도 했다. 


룸 스타일리스트는 나에게 값진 경험을 선사했다.      

나의 인생 2막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새로운 도전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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