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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Do Jun 08. 2023

먼지요정이 너에게 쓰는 편지

04. 딸기잼 맛 약


To; 누군가의 치료제인 너에게


  안녕!


  힘없이 인사하게 되어 미안해. 오늘 나에 하루는 끝이 안 보이는 수평선과 같았거든.

사실 방금 난 친한 친구의 병문안에 다녀왔어.

  

 우리 요정들도 너희들과 마찬가지로 아프면 병원에 다닌다는 사실을 인간들은 신기해하는 모양이더라고. 물론 인간들만큼 병원을 자주 다니는 것은 아니야.


요정은 신체적인 손상이 있을 때는 인간들에 비해 자연치유나 빠른 회복이 가능하거든. 하지만  반대로 심리적인 상처에 훨씬 취약해.

그 이유는 요정들의 신체적인 특징 때문인데, 우리 요정들의 모든 힘은 몸 중앙에 있는 ‘마력’을 담은 ‘마음 주머니’에서 나오기 때문이야.

(너네들은 마음 주머니를 심장이라고 부른다며?)


그래서 만약 ‘마음’과 관련된 병에 걸렸을 때는 마음 주머니의 마력이 점점 빠져나가면서 나중에 텅 비게 되는 사태까지 가면 요정의 목숨에 치명적이기 때문에 마음과 관련된 병은 꼭! 빠른 치료를 해야 해.


내 친구는 오랜 시간 동안 ‘우우울해 병’ 3기를 앓고 있어 병원에 입원한 지 오래되었어.

‘우우울해 병’은 자신이 누군가에게 쏟은 사랑과 시간에 비해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이 없다고 느낄 때 생기는 병이야.


주로 인간들은 자신의 담당 요정들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요정과 인간이 쌍방으로 사랑과 관심을 나눈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모든 요정들은 일을 시작하기 전부터 이에 대해 충분히 교육을 받고, 그렇기 때문에 기대하는 바가 크지는 않지만, 자신의 담당 인간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커지다 보면 결국, 병에 걸리게 되는 요정들이 생겨나기 마련이더라고.


그 친구를 만나러 가기 며칠 전부터 내 부엌은 계속된 요리로 꽤나 엉망이었어.

엄청난 요리를 한건 아니야. 내가 가진 가장 큰 냄비를 한가득 채우는 아주아주 달고 찐득한 딸기 잼을 만들고 있던 중이었거든.


‘우우울해’ 병에 걸린 환자의 병문안을 갈 때는  ‘달콤한 딸기잼’이 필수적인데, 그 이유는 그 잼을 통해 환자의 병의 차도를 알 수 있기 때문이야.

병이 악화되면 발현되는 증상 중 하나가 세상의 어떠한 달콤함도 느낄 수 없는 것 이거든. 전에 방문했을 때 친구가 잼을 새끼손가락에 찍어 찔끔 먹고 오히려 잼이 시다고 한껏 얼굴을 찡그렸다고 하면 친구의 병이 얼마나 위중했는지 감이 오지?

물론 병원에서는 내가 집에서 만든 잼은 친구의 병세에 도움을 주지는 못할 것이라 했지만,

객관적인 사실만이 중요한 게 아니잖아?

중요한 건 미각에서 나오는 달콤함보다는, 그 친구를 떠올리며 했던 나의 행동들이 풍기는 달콤한 향기일 테니 말이야.


그래도 다행히 오늘은 단지 한가득 담아 간 나의 잼을 친구가 한통 거의 다 비워 주었어. 우리는 병원 창틀에 앉아서 잼을 서로 한입씩 한입씩 먹으며 햇빛과 달빛이 서로 반갑게 엉겨 안을 때까지 오래도록 이야기했어. 서로의 안부를 물어보고, 이미 예전에도 자주 나눴던 재미있는 과거의 추억들과 그 속의 인물들을 그리워하며 그렇게 많이 웃었던 것 같아. 하지만 그렇게 웃는 순간에도 내 머릿속에는 단 한 가지 목적은 사라지지 못했어.  그건 바로 ‘어떻게 하면 친구에게 항아리 법칙에 대해서 슬며시 언급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었어.


아! ’ 항아리 법칙’ 이 뭐냐고?

 네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잠시 까먹어서 설명하는 것을 깜빡했다.


‘항아리 법칙’은 이 지구에 잠시라도  머물고 간 모든 생명들은, 그게 요정이던 사람이건 그 어떠한 생명체도 모두 같은 크기의 ‘사랑을 담는 항아리’를 마음속에 가지고 태어난다는 거야. 그래서 모두 공평하게 항아리에 한가득 담기는 사랑을 받고 있다는 거지. 만약 자신의 눈에는 나의 항아리가 다른 이의 것만큼 가득 차 보이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너의 눈이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사랑이 많기 때문이야. 마음속의 항아리는 항상 꽉 차있지만 네가 그것을 인지하느냐 못하느냐의 차이일 뿐인 거지  단 한 명의 예외 없이 모두가 잔뜩 사랑받고 있음을 의미해.


모든 요정들은 이 법칙에 대해서 알고 있어.

이 법칙은 우리가 학교를 들어가서 가장 먼저 배우는 바람을 타는 방법, 인간에게 숨는 법, 과같이 가장 기초적인 교육과정에 함께 들어가 있거든.

하지만 ‘우우울해 병’에 걸리면 이를 잊게 되는 증상을 보이게 돼. 내가 사랑하는 만큼 사랑받지 못한다는 두려움과 속상함에 집중하면 할수록 그 감정이 급속히 커지면서 돌풍과 같은 분노와, 뾰족한 이기심이 자신을 집어삼키게 되는 거야. 그래서 병이 악화될수록 자신의 뾰족한 감정만을 곱씹게 되고, 아예 항아리의 법칙의 개념은 머릿속에서 사라져 버리는 거지.

그래서 ‘우우울해 병’의 치료법은 끊임없는 사랑의 표현과, 달콤한 음식의 섭취,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위 법칙의 내용을 자연스럽게 상기시켜 주는 것이야.


그렇게 잼 단지가 거의 비워졌을 때쯤, 대화의 내용이 서서히 바닥을 보이던 순간, 마치 유령이 우리 사이를 지나간 듯이 침묵이 찾아왔어.


 지금 한번 이야기를 꺼내 볼까…?


하며 주저주저하고 있을 때, 그 순간 내 손에 조그맣고 맨들 맨들 한 것이 포개어지는 것을 느꼈어.

내 손을 내려다보니 친구의 조개껍질같이 생긴 핑크색 맨들 한 손이 내 손에 포개어져 있었어.

마치 내가 무슨 이야기를 꺼낼 줄 안다는 듯 말이야.


'내가 너무 쭈뼛쭈뼛 있었나…? 혹시 이것 때문만에 내가 온 거라고 생각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들기 시작할 때 친구가 말했어


[ 나 사실 기억해, 법칙에 대해서]


나는 화들짝 놀라며 친구를 쳐다보았어. 그러자 친구가 내 손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을 꼭 주더니, 자신의 병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어.

사실 그동안 아팠던 것은 ‘우우울해 병’의 원인도 있었지만 어느 순간 그 병이 지나간 자리에는 분노와 뾰족한 마음보다는, 자신이 사랑한 인간 친구 또한 같은 이유로 아팠겠구나, 그런데도 나는 그 친구가 아플 때 아무것도 하지 못하겠구나,라는 우울한 생각들이 피어나기 시작했데. 이 아픔을 그동안 홀로 감내하였을 인간들의 슬픔과 그럼에도 항아리 법칙을 인간에게 알릴 방법이 없으니 그들의 아픔을 멈추게 할 수 없다는 무기력증이 합쳐져 더 깊은 염증이 마음에 남은 거지.


이러한 이유로 친구는 우우울해 병에 완치가 되었음에도 마음 주머니에 마력이 차오르지 않았던 것이라 설명해 주었어. 설명이 끝나갈 때쯤 친구의 두 눈에서 연 핑크빛 눈물들이 방울방울 떨어뜨리기 시작했어.  

창틀 밑에 살던 꽃들이 친구의 눈물을 먹고 벌써 아침 이슬이 자신들을 만나러 온 줄 알고 고개를 들었을 정도로 많이 말이야.


[너무 알려주고 싶어… 그렇다면 그들이 덜 힘들어하지 않을까?]



우는 친구의 어깨를 토닥토닥 해주면서 내 눈에도 정체 모를 이슬이 맺혔어. 나도 종종 아르바이트로 인간들의 마음을 청소하러 가는데,

가끔 어떤 마음들은 청소가 아니라 봉합과 포옹이 필요한 곳들이 아주 많았거든. 그 마음을 자신의 안에 깊숙이 담고 사는 인간은 얼마나 힘들지 감히 예상조차 되지 않아.

그렇게 우리는 밤하늘을 보며 한참을 눈에서 이슬을 쏟아내었어. 별들이 왜 우냐고 꼬치꼬치 물어보기 전까지 말이야.


이걸 읽고 있는 너에게 부탁이 있어.

혹시 너의 주변에도 내 친구처럼 자신의 항아리가 비었다고 생각해서 슬퍼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 대신 ‘항아리 법칙’을 꼭 알려줄 수 있겠니?

네가 누군가에게 베풀었던 사랑은 분명 다시 너를 향해 돌아오고 있다는 것을 말이야.

돌아오는 길에 잠시 너무 어여쁜 풍경들과 만나서 그들과 행복한 담소를 나누며 몸을 키워가고 있어 조금 늦은 것뿐이라고, 아주 금방 네가 가장 예측할 수 없는 순간에

너의 품에 쏙 안겨 거대한 행복 속에 너를 푹! 빠트릴 거라고 말이야.


 

                  From; 오늘도 딸기잼을 열심히 끓이고 있는

                                                            너의 먼지 요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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