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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Do May 28. 2023

당신에게 먼지요정이 쓰는 편지

03. 하늘 고래

To; 밤의 수면 밑에서 아직 잠수 중인 너에게


안녕?

내가 너에게 편지를 쓰고 있는 지금은 해님을 맞이하기 일보 직전, 공기의 맛이 햇살로 가득 차기 직전이야.

혀끝에 닿는 따뜻한 온기의 달콤함까지 이 편지에 담고 싶은 건 내 욕심이겠지?


내가 꼭! 다음 주에는 만물상 ‘*파댜르고’( ‘붉은 옷을 입은 남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아저씨한테 ‘갓 딴 햇살 맛 마시멜로’를 한 아름 사서 편지에 같이 넣어줄게!


파댜르고 아저씨는 말이 많거나 재빠르지는 않지만 내가 알고 있는 가장 많은 이야깃주머니를 가지고 있는 요정 중 한 분이야.


그분이 머리 위에 쓰고 있는 길게 솟은 아주 빨간 모자를 벗을 때마다 쏟아져 나오는 별빛과 같은 이야기들은 숲 속 모든 요정들이 밤을 꼬박 새우고

붉은 해가 다시 솟는 것조차 못 느낄 정도로 흥미진진하거든.


하지만 매번 오실 때마다 아저씨가 모자를 내려놓으시지는 않아. 아저씨가 모자를 내려놓게 하려면 아주 세심하고 신중한 나의 ‘묘수’가 필요하지.

그건 바로바로…


나의 최고의 레시피 중에 하나인 ‘행복한 꿈 한 스푼을 넣은 청귤 파이’야!

한 달에 한 번씩 우리 숲에 오실 때마다, 나는 아저씨를 내 보금자리에 초대해.

물론 그전에 많은 준비가 필요해.


일단! 난로에 바짝 마른 나뭇가지들을 깔아서 아저씨가 방에 들어오실 때 ‘타닥타닥’ 하고 작은 불꽃 요정들이 신나게 서로 수다 떠는소리를 들으실 수 있게 하고.

그 바로 옆에 우리 집에 있는 가장 폭신한 소파를 배치해 두어 소리뿐만 아니라 그들의 온기까지 아저씨를 감쌀 수 있게 하지.


그뿐만이 아니야!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앞서 말했다시피 내 최고의 레시피인 ‘행복한 꿈 한 스푼을 넣은 청귤 파이’니까.


 ‘행복한 꿈’은 웬만하면 인간들 머릿속에 남겨 놓아야 할 기억 중 하나이기 때문에 요정들에게 가장 구하기 어려운 식재료라서 나도 큰맘 먹고 만드는 요리야.

파이의 다른 재료인 ‘청귤’ 또한 햇살이 듬뿍 스며들어 새콤하면서도 당도가 충만한 것이어야 하기 때문에 구하기 쉽지는 않은 재료거든.


이번 주는 이 두 재료를 구하기 특히 더 어려운 한 주였어.

요정들이 ‘행복한 꿈’을 얻을 수 있는 기회는 오로지 담당 인간의 머릿속에 ‘행복 기억 용량’이 넘쳐나서 몇 개를 따버려야 할 때인데,

솔직히 요즘 그러한 경우가 거의 없어서 결국은 집에 마지막으로 쟁여 놓았던 병을 써야 했어.

조금 속상하긴 했지만 분명 파이를 먹을 때 보이는 아저씨의 무뚝뚝한 얼굴에 살짝 퍼지는 미소가 더 가치 있다고 생각이 들었거든.


하지만 이번에는 많은 일들이 나의 예상 밖으로 펼쳐졌지. 내가 아저씨에게 ‘행복한 꿈’을 큰 스푼으로 넣었다며 익살맞게 장난칠 때도 아저씨의 얼굴은 오히려 굳어지셨거든.


그리고 아저씨가 말해주셨어. 아저씨의 친구가 많이 아프다고. 그래서 크게 걱정이라고 하셨어.

아저씨의 친구가 누구시냐고 내가 질문하니까 아저씨는 조그마한 손가락으로 하늘에 높이 떠있는 달을 가리켰어. 그러면서 말씀하셨지, 저 달을 끄는 ‘하늘 고래’가 아저씨의 둘도 없는 친구라고.

아저씨의 키와 너무 상반되는 크기의 거대한 친구에 살짝 놀라기는 했지만 얼른 나의 놀라움은 숨기려고 했어. 아저씨의 표정이 너무 침통해 보였거든.


아저씨의 말에 의하면 하늘 고래님의 주식은 ‘행복한 꿈’인데, 사람들이 달을 보고 소원을 빌 때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행복한 꿈’을 하나 먹는 대신 그 소원을 부분적으로 들어주는 방식으로 식사를 해결하셨대.

하지만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달의 존재를 당연시하기 시작했고, 당연한 것에 더 이상 소원 따위는 빌지 않게 되어 제대로 된 식사를 못하신 지 꽤 오래되셨다는 것이야.


그동안 파댜르고 아저씨가 동분서주하면서 여기저기 행복한 꿈들을 긁어모아 하늘 고래님께 드려봤지만 너도 알다시피 하늘 고래는 달의 두 배는 족히 넘는 크기이기 때문에 보통 식사량의 반의 반도 못 미쳐서 결국 시름시름 아프기 시작하셨대.


나와 파댜르고 아저씨가 답답한 마음에 하늘 고래님께 직접 찾아가서 달을 끄는 것을 그만두고 차라리 쉬라고, 그리고 다른 것에 의미를 두어 다른 먹이를 만들어보라고 설득해 보았지만 하늘 고래님께는 이는 애초에 설득이 가능한 문제가 아니었던 것 같아.

앙상한 몸에 비해 크고 평온이 담겨 찰랑거리는 눈이 말해주셨어


아주 미약하지만 가끔 사람들이 보내주는 달에 대한 감사와 위로가 허공에 의미 없이 사라지는 것은 볼 수 없다고, 그리고 말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 이들이 간혹 달에게 건네는 말들을 대답해 주지는 못하더라도 꼭 들어주어야 한다고. 전 세계를 하루에 다 돌 동안, 단 한 명의 누군가는 달을 기다리고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이 여정을 멈출 수 없다고 말이야.


그 이후 이번 주 내내 나는 어떤 이유에선지 밤이 지나 내가 볼 수 없는 저 수평선 너머로 달이 질 때까지

눈을 떼지 못하고 지켜봤던 것 같아. 그게 바로 내가 이 새벽이 아직 얽힌 아침에 너에게 편지를 쓰는 이유지.


만약 너의 주변에 누군가가, 혹은 네가

곁에 누구도 없고 혼자라고 느껴진다면

기억해 줬으면 좋겠어. 세상에 어떠한 존재는 아직

그날 밤 단 하나의 외로운 존재인

너를 위해 온 힘을 다해 하늘을 가르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야



네가 눈을 떠서 이 편지를 읽을 때

너의 태양도 나의 달만큼 찬란하기를 빌며






                             From;  햇빛보다 따스한 달빛 속에서

                                                 잠 못 이루는 먼지 요정이

먼지 요정이 찍은 오늘의 첫 햇빛과 달님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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