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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메리 Apr 12. 2024

마라톤 10km 완주하신 엄마

대구국제마라톤대회

  엄마께서 대구국제마라톤대회를 신청하셨다. 엄마의 마라톤 참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엄마께서 메달을 잃어버리셔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내가 기억하기로는 다섯 번째이다. 참가만 하신 게 아니라 매번 10km 완주하셨다. 이번에도 10km 신청하셨다.

  엄마는 60대이신데 발가락은 무지외반증이 있고 무릎은 관절이 안 좋아서 정형외과 다니며 약을 드시고 계신다. 그런데도 왜 마라톤을 좋아하시는 걸까? 한 번도 여쭤 본 적은 없다. 그저 완주 후에 카톡으로 보내오는 사진을 보고 축하 이모티콘을 보낼 뿐이었다.

  엄마는 마라톤뿐만 아니라 등산, 수영, 자전거도 좋아하신다. 전국에 가보지 않은 산이 거의 없다. 백두대간* 완주하셔서 기념패도 받았는데, 그 후에도 등산을 꾸준히 하고 계신다. 수영도 20년 넘게 꾸준히 하고 계신다. 라이딩하신 지도 5년이 넘었다. 어느 날 자전거를 타고 싶다고 하시기에 그냥 동네에서 타고 다닐 자전거를 말씀하시는 줄 알았다. 그런데 라이딩용 자전거를 구매하시더니 라이딩 모임에 나가기 시작하신 것이다.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한반도의 가장 크고 긴 산줄기.


엄마의 백두대간 완주 기념패

  운동을 좋아하는 엄마와는 달리 어렸을 때부터 나는 운동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운동 신경이 없어 운동을 못하니 운동을 안 하게 되었고, 운동을 안 하니 운동을 못하게 되는 악순환이었다. 초등학교 운동회 6년 내내 달리기 꼴찌였다. 그 어렵다는 꼴찌!

  수영도 물을 무서워해서 할 줄 모른다. 딱히 트라우마가 있는 것도 아닌데 어렸을 때부터 겁이 많았다. 그나마 자전거는 잘 탄다. 어렸을 때 친구를 태우고 달린 적도 많다. 그렇지만 엄마처럼 라이딩을 할 정도는 아니다.

  어쨌든 대구국제마라톤대회 나가는 엄마를 응원하러 가기로 했다. 엄마께 응원하러 간다고 하니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같이 참가하는 친구분도 있으니 내가 가는 게 불편한가 싶어 응원을 가야 할지 망설이고 있었다. 그러다 대회 며칠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5km 번호표 받아놨다."

  "갑자기?"

  "까자*나 받아가라꼬."


*'과자'를 뜻하는 경상도 사투리.


  엄마 아는 분께서 마라톤 신청만 하고 참가를 안 하셔서 그분의 번호표를 받았다는 말씀이었다. 번호표가 있어야 마라톤 참가도 할 수 있고 나눠주는 간식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엄마와 전화를 끊고 나서 갑자기 5km는 나도 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지만 몇 달 전부터 조깅을 하고 있었다. 나이가 들어 운동의 중요성을 깨달았는데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운동이 달리기였기 때문이다. 엄마께 다시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도 5km 뛸래!"


  엄마께서 마구 웃으셨다. 엄마는 내가 공부하는 건 좋아하지 않으면서 몸으로 하는 뭔가를 한다고 하면 비웃으면서도 좋아하신다.

  마라톤 당일 푸르스름한 새벽빛이 비칠 때쯤 일어났다. 집을 나선 엄마와 나는 교통이 혼잡할 걸 생각해서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에 탄 사람들 모두 운동복장이었고 모두 같은 역에서 우르르 내렸다.



  대구스타디움이 너무 넓은 데다 스텝들도 안내가 서툴러서 엄마와 나는 물품 보관소 찾으랴, 엄마 친구분 찾으랴, 화장실 찾으랴 바빴다. 마라톤은 풀코스(42.195km), 하프코스(21.095km), 10km, 5km 순으로 출발하였는데,  엄마와 나는 달리는 지점도 늦게 찾아서 이미 10km 주자들이 출발하는 중이었다. 엄마는 거의 후미에서 출발했다. 나중에 얘길 들어보니 엄마는 항상 선두에서 출발했었고 늦게 출발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이전 기록보다 조금 늦게 나왔다.

  나는 엄마가 출발한 후 사회자 안내를 들으며 조금 기다렸다 출발했다. 출발 소리를 듣고 천천히 뛰었다. 조깅할 때마다 혼자 마음속으로 되뇌는 말이 있다.

  

  '나는 내 갈 길 간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주변 사람들이 나보다 빨리 가든 천천히 가든 신경 쓰지 않고 이 말만 되뇌며 뛰다 보면 금방 목표 지점에 도달해 있기 때문이다. 문득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하며 뛰었을까 궁금하다. 아직 엄마에 대해 모르는 게 많다.


  

  어쨌든 5km를 완주한 후 메달을 받고 빵이랑 주스도 받아먹고(가방에 몰래 하나 더 챙김..) 잔디밭에 앉아 엄마를 기다렸다.


5km 완주 후 받은 메달


  나중에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엄마가 완주했을 때 종점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박수 쳐줬어야 한다며, 왜 안 해주냐고 하셨다. 엄마 친구분들이랑은 서로 그렇게 해주는 게 관행(?)이었나 보다. 처음 참가한 거라 몰랐다고 내년에 그렇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엄마 친구분 중에 풀코스 뛰는 분이 계셔서 같이 종점에서 그분이 완주하고 오실 때까지 기다렸다. 엄마는 다른 사람들 완주한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쁘신지 박수 치며 고생했다고 얘기해 주었다. 모르는 사람들인데...

  내가 엄마 친구분을 함께 기다리면서 알게 된 것은 풀코스 주자들이 젊은 층보다 언뜻 봐도 60대, 70대로 보이는 분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다들 대단하시다고 느꼈다. 엄마도 내년엔 풀코스에 도전하겠다고 하셔서 말렸다. 그런데 우리 엄마는 내뱉은 말은 실천하시는 분이라 걱정된다.

  집안의  넷째로, 딸로 태어나신 데다가 자식새끼도 불효자라 고생하며 살아오신 엄마께서 계속 건강했으면 좋겠다.


엄마의 메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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