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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해솔 Apr 24. 2023

같은 색깔만 이용하라고요?

첫 클라이밍 도전기


어릴 때 별 다른 장비 없이 건물 외벽을 타고 오르는 사람을 보며 스파이더맨의 후손인가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기네스북에 도전하는 사람인가 호기심을 가지기도 했는데 그들이 하는 운동에 '클라이밍'이라는 정식 명칭이 있다는 걸 아주 나중에서야 알았다.


특별한 도구를 갖추지 않고 오로지 맨손으로 나의 체중을 스스로 지탱하며 목적지까지 도달하는 운동이라니 너무나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힘들 때는 어딘가에 기대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인데 클라이밍은 2인 1조로 팀을 이뤄서 내가 중간까지 올라갈게 그다음부터는 네가 가, 이렇게 할 수 없지 않은가. 그런 룰이 있을 수도 있지만 초보인 나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물렁물렁한 내 마음을 단단하게 잡아주면서 목적지에 도달하는 성취감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아 언젠가 한 번쯤은 해보고 싶은 스포츠로 잡았는데 알면 알수록 시도조차 망설여졌다.


특별한 도구 없이 맨손으로 내 체중을 지탱할 수 있을까? 철봉 턱걸이도 못하는 근력으로 수직 벽에 매달릴 수 있을까? 약간의 고소공포증을 가진 내가 높은 곳을 향해 계속해서 올라갈 수 있을까? 내려올 때는 어떻게 하지? 내려올 힘은 남아있을까?


끝없는 물음표에 답하기 위해 검색을 통해 경험자의 말들을 참고했지만 직접 해보지 않은 이상 완전히 체감하기에는 어려울 것 같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근육은 없지만 일단 해보자는 생각으로 원데이 클래스를 찾아 신청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별다른 입구 없이 거대한 실내 클라이밍장이 펼쳐졌다. 알록달록한 홀드가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고 올라가는 사람들과 그들을 찍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괜히 쭈구렁 해지는 마음. 하지만 그들도 처음이 있었겠지 하는 생각으로 두근두근 첫 클라이밍 시간을 기다렸다.


해당 시간에 신청한 사람이 나밖에 없어 운 좋게 1대1 강습을 받게 되었다. 강사님께서 자주 쓰이는 관절을 보호하기 위해 간단하게 테이핑을 해주셨는데 폼만 보면 운동 자주 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아 의욕이 더 샘솟았다. 미끄럼 방지를 위해 초크까지 묻히니 더 그럴싸해 보여서 쭈구렁 마음은 사라지고 초심자의 열정이 불타올랐다.


배우면서 놀랐던 건 난도 마다 홀드 색상이 다르다는 것. 목표를 향해 아무 홀드나 잡고 올라가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고 홀드가 알록달록한 건 디자인 요소가 아니라 다 뜻이 있었다는 것.


그걸 알고 바라보니 좀 더 새롭게 다가왔다. 저건 사람이 이용하라고 만든 홀드가 맞나? 저 각도가? 저 크기가? 










1시간 정도 강사님 설명을 듣고 시범에 따라 경험해 보면서 레벨 별 난도를 몸으로 익힌 뒤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초크 주머니를 들고 다니며 내게 맞는 난도를 가진 홀드 색상을 따라 루트 파인딩 후 올라가다 내려오다 반복. 


내가 잡는 홀드는 낮은 레벨이라 완등하는데 시간이 많이 소요되지 않았지만 매달리고 내려오는 게 체력 소모가 상당했다. 5분 하고 10분 이상 쉬었던 듯싶다. 쉬는 동안 다음에 할 홀드를 찾기도 하고, 중간에 헤맸던 색상을 다시 보기도 하고, 경험자들의 모습을 보며 속으로 감탄했다. 스파이더맨이다!


팔다리가 긴 분들은 애매한 위치와 크기를 가진 홀드는 건너뛰고 그다음 스텝을 밟으셔서 이것도 신체적인 요소가 어느 정도 중요하다는 걸 느꼈지만 다행히 타격감이 크지는 않았다.


지금 당장 팔다리를 늘릴 수도 없는 일이고 이미 체력적으로 지쳐있던 때라 이 정도면 나는 최선을 다했다는 합리화가 온몸을 지배하고 있어서 가능했던 것 같다. 문득 그런 마음이 들더라도 다시 손에 묻힌 초크를 털어내고 홀드를 잡을 때면 이런 나 왠지 멋지잖아? 우쭈쭈하며 셀프 칭찬 감옥에 가둬두었다.


힘들었지만 마지막으로 ㄱ자로 꺾인 낮은 레벨 코스가 있었는데 매달려 보고 싶어 도전했다가 체력적 한계로 중간에 내려오게 되었다. 이전 같으면 악착같이 했을 텐데 아쉽지만 깔끔하게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떨어지면서 알았다. 내 근력과 체력의 한계를.










종일 한 것도 아닌데 손끝이 아리고 팔이 아팠다. 클라이밍에 도전했다는 순간이 지나가는 게 아쉬워 테이핑 떼는 게 아쉽기도 했다. 목표한 홀드에 도착해서 몸을 삼각형으로 만들고 속으로 숫자를 셀 때는 짜릿했는데 다들 이런 감정을 느끼면서 중독되는 건가? 해보지 못했다면 알 수 없을 감정이었다.


한 번 해봤다고 클라이밍 홀드를 보면 루트 파인딩을 하게 된다. 나는 어떻게 해야 끝까지 도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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