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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해솔 Apr 26. 2023

굳은살이 필요한지 몰랐어요

기타를 제대로 배워본 순간


화면으로 볼 때는 그저 즐기기 바빴는데 기타 연주를 실제로 보고 있으니 나도 기타를 치고 싶어졌다. 그냥 마구잡이로 치는 게 아니라 제대로 된 곡을 치고 싶은 욕구가 마구 피어올랐다.


운 좋게 마침 기타가 근처에 있어고 취미로 연주하는 분을 알게 되어 노래 한곡을 배울 수 있었다. 배운 노래는 전주만 들어도 흥나는 조용필의 <여행을 떠나요>.


배우는 시간은 짧았으나 빨리 연주하고 싶은 마음에 시간을 내서 열심히 연습했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코드 구성이 쉬워서 왕초보인 나도 악보 없이 빠르게 익힐 수 있었다.




원하는 소리를 내기 위해 손가락으로 해당하는 줄을 힘껏 눌렀더니 자국이 깊어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아픈데 이렇게 연주하고 있는 순간이 신기해 기념으로 사진을 남겼다.


기타_연주하는_나_제법_멋져요. jpg


점점 고조되는 박자를 따라 입 밖으로 새어 나오는 웃음도 점점 커졌다. 연습을 하면 할수록 귓가에 들리는 소리가 점점 더 그럴싸해져서 손가락이 너무 아팠지만 멈출 수 없었다. 


나도 이렇게 신나는데 악보만 주어지면, 혹은 주어지지 않더라도 자기가 원하는 곡을 언제든지 연주할 수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재밌을까?





기타를 칠 수 있을 때 연습해야 한다는 강박에 2시간 정도 내리 연습했더니 3일은 손가락 끝으로 자판을 누를 수 없을 정도로 고통이 밀려왔다. 아픔이 사그라지는 동안 손끝이 아니라 지문이 있는 평평한 마디 부분을 이용해 컴퓨터 타자를 쳐야 했다는 안타까운 후일담.


기타 줄을 통해 부드럽게 연주되는 곡 뒤로 이런 아픔을 수반하며 연습했을 사람들을 떠올리니 새삼 더 멋지게 느껴졌다. 고통을 잊을 만큼치고 싶던 곡은 무엇이었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검지, 중지, 약지 손가락 끝이 싸하게 아프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굳은살이 생겼다. 약간 단단해 지다가 하얗게 된 '진짜' 굳은살이 생겨서 약 한 달 정도 유지되었다.


기타 치는 분이 이때가 기회니 많이 배워둬야 한다고 말씀하셔서 실제로 줄을 다시 잡아봤다. 정말 이전보다는 확실히 덜 아팠다. 그런데 나의 마음이 더 연습하고 싶다고 움직이지 않는 이상한 현상.


<여행을 떠나요> 이후 악보 들춰보고 유튜브도 찾아보면서 원하는 곡을 연주하려고 나름 열심히 뒤적였는데 코드는 알면 알수록 어렵고.. 악보는 왜 여기서부터 6번인지 헷갈리고.. 자세는 어디가 잘 못 되었는지 왼쪽 손목이 꺾이듯 아파서 더 이상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억지로 스스로를 부추기고 싶지 않아 또 알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전까지 지금은 그저 해당 코드를 잊지 않게 되새김질하고 있다.




조용필의 <여행을 떠나요>를 연습하는 동안 이 곡을 연주하는 내 모습이 머릿속에 자동으로 그려졌다. 둘러앉은 친척들 사이에서 나는 기타를 치고 있고 할머니와 우리 가족 그리고 친척들은 웃으며 따라 부르는 장면이.


할머니댁에 방문할 때 없는 기타를 만들어서라도 가지고 가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 사이에서 흥을 보태고 싶다. 지금 친척 어른들은 다 아시는 곡일 테니 따라 부르며 웃게 되지 않을까? 게다가 유명한 조용필 노래니까 평생 일만 하셨던 할머니께서도 얼추 들어보셨을지도 모르겠다. 처음 들으셨더라도 손녀 재롱에 웃으며 손뼉 쳐주시지 않을까.


같이 있을 때, 함께 할 수 있을 때 웃을 수 있는 시간을 최대한 만들고 싶다.


나도 몰랐던 지금, 기타를 치고 싶은 나의 마음은 '악보 없이 1곡 연주하기'였나 보다. 그것도 세대 상관없이 대부분 알 수 있는 곡으로.




푸른 언덕에 베낭을 메고 황금빛 태양 축제를 여는 광야를 향해서 계곡을 향해서-

...

메아리 소리가 들려오는 계곡 속의 흐르는 물찾아 그곳으로 여행을 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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