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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May 03. 2023

폭식하는 채식주의자(2)

교훈을 얻고 힘을 깨닫기 위해 꼭 과거를 낭만으로 포장할 필요는 없다고 오드리 로드는 말콤 X를 기리는 1983년 연설에서 말했다. 하지만 낭만화는 내가 제일 잘하는 짓이다. 따지고 보면 다 좋았어, 하는 태도. 결국엔 다 나를 성장시켰지, 하는 단순화. 


11년 전 시작한 폭식도 낭만화할 수 있을까? 언젠가는 어쩌면.

하지만 그건 자기 억압의 역사이고 자기혐오의 역사이고 우울과 불안에 휩싸이는 여자의 이야기고 의자 가지 할 데 없이 홀로 사는 어린애의 생존일기다. 올바르게 살고 싶은 신념을 자꾸 배반하는 몸의 기록이다. 


2012년 초로 돌아가자. 나는 대학교 3학년이었고, 일 년가량 만난 남자친구는 군대에 갔다. 친구들은 모조리 휴학했고, 학교 기숙사에서 지역 장학숙으로 옮기면서 낯선 동네 속 낯선 사람들 사이로 떨어졌다. 전공 수업 일곱 개를 들으면서 허덕였다. 아침 일곱 시에 학교에 도착해서 오후 네다섯 시쯤 돌아갔다. 학교 식당에도 외부 음식점에도 채식 메뉴가 없었고, 같이 먹을 사람도 없었다. 두어 번 혼자 식당에서 먹어봤는데 창피함이 압도적이라 다시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아침에 도서관 계단을 올라가며 선식을 먹었고, 기숙사에서 저녁을 먹지 않는 날엔 그걸로 끝이었다. 온종일 말을 하지 않는 날이 늘었다. 입에서 단내가 나고 버석버석 말라갔다. 월경이 끊겼다.


한 달 만에 몸무게가 40킬로대로 떨어졌다. 열일곱 살 이후 처음이었다. 팔뚝에 뼈가 도드라졌고 턱살이 없어졌다. 블라우스 단추가 다 잠겼다. 치마 아래로 드러나는 종아리가 얄쌍해 기분이 좋았다. 거울로 요리조리 얼굴을 살피는 시간이 늘었다. 예뻐진 것 같았다.  꾸미지 않아도 마르고 예쁜 데다 공부까지 잘해, 하고 남몰래 으쓱댈 수 있었다. 그냥 먹지 않으면 된다니. 너무 쉬웠다. 


분명 시작은 외로움과 우울이었을 텐데, 어느덧 외양을 유지하고 싶어졌다. 저녁도 건너뛰기 시작했다. 간식도 안 먹었다. 시험공부하다 야식이 당길 땐 냉장고에서 파프리카를 꺼내먹었다. 아삭, 하고 신선한 즙이 목구멍을 넘어오는 기분이 짜릿했다. 와, 이렇게 건강하게 살다니. 삶을 통제하고 있다는 기분에 도취했다.  

   

어느 저녁, 버스를 타고 가다 ‘칼로 허벅지를 찌르면 아플까?’ 생각했다. 더럭 겁이 났다. ‘이거 위험한 거 아닌가?’ 정신이 번쩍 들었고, 친구에게 도움을 청했다. 밥을 먹으며 내가 위험하니 너에게 당분간 의지를 하고 싶다, 연락하면 받아달라, 말했다. 친구는 알았다고 했다. 연락하는 일은 없었다. 학교 상담실도 갔다. 할머니가 싫다는 얘기만 한 시간을 하며 울었다. 다시 가지 않았다. 전문성도 없는 학생이라 도움도 안 되는 것 같았다. 


학기가 끝날 때쯤엔 수업을 늦기 시작했고, 주말이면 이마트를 가서 시식코너를 돌았다. 기말 과제를 내지 않아 교수님에게 전화를 받고도 끝까지 내지 않았다. F를 맞았다. 아무도 만나지 않고 연락도 하지 않았다. 매일 어두운 바닥에 누워있었다. 시리얼을 사 와 손으로 퍼먹기 시작했다. 룸메이트가 없는 밤에 과자를 먹고 흔적이 남지 않았는지 손으로 바닥을 훑으며 확인했다. 들키지 않으려고 불 꺼진 컴퓨터실에서 야식을 먹었다. 토기가 올라오면 멈췄다가 다시 먹었다. 토는 하지 않았다. 위장이 생각보다 튼튼했다. 한 달 만에 십오 킬로그램이 쪘다. 전에 입던 옷이 맞지 않았다. 창피해서 밖에 나가지 않았다. 울적해서 먹었고 먹어서 울적했다. 먹을수록 수렁에 빠졌는데 빠져나갈 방법을 몰랐다. 그냥 계속 머물렀다. 계속 먹었다. 돼지처럼 구는 내가 끔찍했고 변하는 외모가 싫었고 속이 더부룩해서 기분이 가라앉았다. 그래도 내가 아는 유일한 탈출구는 먹기였다. 나는 먹고 또 먹었다. 


방학에 만난 친구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엄마 아빠는 마치 내가 변하지 않았다는 듯 행동했다. 그저 신경 쓰고 사랑해 주었다. 같이 있는 시간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빨리 혼자가 되고 싶었다. 


다음 학기부터 외국에서 일 년 동안 살게 되어있었다. 나는 세상에 홀로 떨어진 기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식습관은 더 망가졌다. 새벽 세 시에 떡볶이를 해 먹을 수 있었고 누텔라 900그램을 이틀 만에 퍼먹어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었다. 지금 아니면 언제 외국 음식을 먹냐는 생각에 마음껏 먹었다. 한국에 돌아올 무렵 십 킬로그램이 더 쪄있었다. 외로움과 슬픔, 초조함과 불안을 달래려고 음식에 기대는 습관이 생겼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그만두는 법을 몰랐다. 그만둘 수 있다고 생각해보지 않았다.

    

만약, 가족과 함께 살았다면, 나를 신경 쓰는 사람이 옆에 있었다면, 주변에 괜찮은 먹을거리가 있었다면, 채식 인프라가 있었다면, 정신적으로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할 데가 있었다면, 내가 너무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내게 적당히 굴었다면, 친구 중 누구 한 명이라도 남아있었다면, 달랐을까? 

추측일 뿐이다. 바람일지도 모른다. 지금의 나는 최악의 버전이지만 만약 조건이 좋았다면 내 삶도 잘 풀렸을 거라는 기대. 그러나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수많은 ‘나’, 어딘가 있을 평행우주에 사는 ‘나’는 내가 아니라서, 나는 그 삶을 모른다. 내가 살아온 삶만 얘기할 수 있다. 


나는 나다. 내가 좋아하고 되고 싶은 모습으로 스스로를 설명하고 싶지만, 나는 내 습관이고 갈등이고 입이다. 충돌하는 욕망이고 배반하는 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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