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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May 03. 2023

엄마께,

엄마, 전 마음 한구석에 구멍이 났나 봐요. 마개를 찾을 수가 없어요. 모든 게 빨려나가요.      


제가 이 편지를 보낼 수 있을까요? 아마 전 확실하게 숨기려고 태워버릴 거예요. 엄마 아빠가 읽는 건 끔찍해요. 그보다 나쁠 순 없을 거예요. 제가 제게 얼마나 못되게 굴었는지, 엄마의 소중한 딸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알게 되실 거니까요.


엄마, 엄마를 사랑해요. 엄마가 저 때문에 슬프하지 않으시면 좋겠어요. 죄송해요. 제가 엄마를 슬프게 만들어요. 몇 년 전부터 줄곧요. 엄마를 잠 못 이루게 하고 눈가가 붉어지게 해요. 엄마가 잘못 살아서 제가 이렇게 됐다고 하셨죠. 사실이 아니에요. 절대 그럴 리 없어요. 엄마가 제 삶에 문제를 일으킨 게 아니에요. 제가 엄마의 삶을 덜 행복하게 만들어요. 전 엄마를 무척 사랑하지만, 어쩌면 제가 엄마 딸이 아니었다면 더 행복하셨겠죠. 저 같은 골칫거리가 아니라 착하고 성실하고 부끄럽지 않은 딸을 두셨다면요. 


저는 엄마를 사랑하고 엄마도 저를 사랑하는데 왜 저는 엄마에게 거짓말을 하고, 엄마에게서 벗어나고 싶어 할까요. 왜 우리는 서로를 아프게 할까요.  제가 없다면 엄마는 더 행복하실까요?


상담사는 엄마가 저를 어릴 때 방치해서 제가 불안이 심한 거래요. 웃기는 소리죠. 세상에서 엄마보다 저를 사랑하는 사람은 없어요. 그 사람은 어떻게 그렇게 모욕적인 소리를 하죠? 얼굴을 맞은 기분이었어요. 코뼈라도 부러진 것 같았어요. 


가끔 상담사가 한 말이 떠올라요. 여자친구는 헛소리를 왜 진지하게 받아들이냐고 해요. "자기네 부모님은 그러신 분이 아니"라고 해요. 만나본 적도 없으면서.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걸까요? 그냥 알 수 있는 게 있잖아요. 엄마 아빠의 사랑도 그냥 아는 걸까요? 저만 모르고 있는 걸까요?


엄마께 가장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다쳤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대신 집을 가지 않고, 아픈 걸 숨기려고 전화를 안 해요. 출퇴근 잘 하고 운동을 다닐 때는 매일 전화를 드리지만 집에 쳐박혀 있을 시기엔 일주일이고 열흘이고 연락하지 않아요.  제게 연락이 없을 때 엄마가 걱정하시는 건 직감일까요? 어떻게 300km가 떨어진 곳에서도 제가 괜찮지 않다는 걸 아시는 거예요? 제가 뻔한 거짓말을 늘어놓아도 그럼 됐다며 사랑한다고 말하곤 끊으시죠. 저를 믿고 기다리시는 거죠? 가능하다면 영원히 모르시게 하고 싶어요. 제가 얼마나 부끄러운 딸인지요.


엄마, 제가 우울증 때문에 약을 먹고 있다고 말 하던 순간을 기억해요. 직장 내 성적괴롭힘 때문에 퇴사를 하고 싶다고 말씀드리던 때도요. 엄마는 저를 꼭 안아주셨죠. 얼마나 고생했냐고 하셨어요. 엄마가 몰라줘서 미안하다고 하셨어요. 건강이 최고라고, 행복하려고 사는건데 행복하지 않다면 얼른 그만둬야지, 하셨어요. 푹 쉬라고, 집으로 내려오라고요. 엄마 눈가가 붉었어요. 엄마, 왜 저는 이런 딸이라서 엄마를 아프게 할까요. 제가 이상한 건 엄마 잘못이 아니에요.


세 달 동안 청소를 하지 않아서 다섯평짜리 원룸 안에서 신발을 신고 다니던 봄에, 곰팡이 핀 빵쪼가리가 비닐봉지 안에서 굴러다니고 오직 침대 중앙에만 앉을 수 있던 봄에, 제가 입원해있을때요, 엄마는 서울에 올라와 이틀에 걸쳐 쓰레기를 버리고 옷가지를 빨고 바닥을 닦으셨어요. 허리가 아픈 걸 참으면서요. "아빠한테는 비밀이야"하고 찡긋 웃으셨죠.  저는 가끔 그 청소 장면을 그려봐요. 차마 맨발로 들어갈 수 없으니 신발을 신고 들어가셨을테고, 20l, 아니 50l짜리 쓰레기봉투를 사다가 꽉꽉 눌러담으셨겠죠. 다음엔 굴러다니는 수건과 속옷과 양말과 이불을 서너 차례에 걸쳐 빠셨을 테고요. 한 번에 다 빨면 말릴 곳이 없었을텐데 어떻게 하셨어요? 그리고는, 그리고는 뭘 하셨을까요. 창문을 열고 먼지를 털고 화장실에 락스를 뿌리고 바닥에 앉아 좀 쉬셨을까요. 허리를 통통 두들기며. 우리 딸이 어쩌다 이렇게 살고 있을까 찾아내려고 애쓰면서요. 좀 더 자주 찾아올 걸, 내가 너무 신경을 안 써서 우리 딸이 아팠나봐, 하셨을까요.


엄마, 엄마가 서울에 오시지 않은 건 제가 오시지 말라고 해서잖아요. 엄마가 신경을 안 쓴게 아니에요. 엄마가 제 생활을 아는게 싫었어요. 어떻게 사는지 감추고 싶었어요. 혀짤배기 딸이 아닐 때의 저를 모르시길 바랐어요.


엄마는 이제 제게 건강과 행복을 바랄 뿐인데 저는 그것마저도 충족하지 못 해요. 안정된 삶, 그럴듯한 직장, 쏟아부은 만큼의 노동소득, 남편, 아이...... 자식에게 품을법한 기대를 차례차례 접으시고, 이제는 그저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건강하고 행복하기만을 바라시는데, 저는 건강하지도 행복하지도 않아서, 찾아뵐 수가 없어요. 엄마께 어떤 얼굴을 보여드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직장을 다니지도 않고 학교를 다니지도 않고 결혼을 하지도 않고 무슨 작업을 하고 있지도 않은,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매일을 흘려보내고 있는 이유를 대보려고 이런 저런 말을 갖다붙여보지만, 말하는 저도 듣는 엄마도 알아요. 핑계라는 걸, 제가 제 삶으로부터 도망치고 있다는 걸요. 제 삶은 넝마처럼 바닥에 널부러져 있고 아무도 주워가지 않아요. 저도 멀찍이 피해다녀요. 주워들고 싶지 않거든요. 그저 내버려두고 싶어요.


누가 "딸은 요즘 뭐해?"물었을 때 "어, 우리 딸 어디 다녀~" 하고 자랑스레 말할 수 있는 딸이면 좋았을텐데. 적어도 "요즘 애 낳고 쉬고 있어~"라도 할 수 있으면 좋았을텐데요. 대신 엄마는 거짓말을 하시죠. 우리 딸 건강 때문에 잠시 일 쉬고 있고, 논문 쓰고 있고, 결혼 않고 혼자 사는 게 좋다고 하고, 고기를 별로 안 좋아해서 안 먹는다고요. 열심히 가르쳐놓았더니 자기 하는 일이 좋다는데 어떡하냐고, 결혼해서 일 그만두느니 혼자 잘 나가는게 낫다고 말씀하시죠. 엄마 이야기 속의 저는 누군가요?


제가 창피해서 거짓말을 하냐고 물었을 때 엄마는 아니라고 했어요. 그저 귀찮아서 다 말 하지 않는거라고, 남들에게 굳이 시시콜콜 알려줄 필요는 없다고요. 엄마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그런 말을 하냐고 하셨어요.  


엄마는 저를 사랑하고 저도 엄마를 사랑하죠. 우리는 서로를 사랑해요.


엄마, 가끔은 엄마가 절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걱정할 수 없는, 다른 세상에 살고 싶어요. 다른 행성, 다른 시간으로, 아무리 연락하고 싶어도 연락할 수 없어 무소식이 희소식이려니 체념하는 곳으로, 애틋함만 가득한 곳으로, 만날 수 없는 곳으로요.



하지만 엄마를 볼 수 없으면 전 미쳐버릴 거예요. 지금보다 심각하게요.



엄마,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우리가 검푸른 바다 위에서 피오로드를 보고, 오로라 아래서 잠들고, 햇볕 쨍쨍한 해변에서 낮잠을 잘 때까지요. 우리가 마추픽추를 보고 타지마할을 볼 때까지요. 세상의 좋은 것을 모두 볼 때까지 꼭 건강하셔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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