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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 Jul 07. 2024

11. ‘(x, y)=(23,0)’

나를 만들어가는 과정

x축을 인생의 시간, y축을 인생의 성장(농도)이라고 칭했을 때,
23살인 지금의 나는 (23,0)으로 다시 무너져 내린 걸까 아님 그만큼 올라온 걸까?


앞으로 찬찬히 회상하고 되짚어가며 당시 생각들을 정리하겠지만, 나는 성인이 된 후 작년 10월부터 올해 6월까지 처음으로 학교를 벗어난 세상에서 사회를 경험했다.

취직을 한 건 아니다. 나와 타인의 내면에 관심이 많은 나는 내면에 대해 시간을 내서 탐색하고 고찰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그것을 공부하는 집단에 들어갔다.

내면에 있는 나의 새로운 모습을 이해하거나 인정할 수 있었다. 동시에 여러 가지의 모습들이 내 안에서 치열하게 대립하였고 그것을 이겨내는 힘든 과정 또한 거쳤다.


다만 나아지고, 성장할 나를 위해 쏟은 이 시간들이 옳고 그름을 분간하기 힘든 이 사회에서는 그저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는 어마무시한 점을 간과한 채 말이다. 분명 그들은 악의를 가지고 나를 대한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그들은 나를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나를 불안에서 꺼내주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행복과 빛이란 이 사회에서 통용될 수 없는 그 집단만의 것이라는 점이 문제였을 뿐. 그들이 말하는 대의라는 것이 문제였을 뿐. 그것을 제외하면 그들은 선하고, 멋있는 사람들이다.


덕분에 많이 배웠고, 얻었고, 성장했다. 하지만 덕분에 넘어졌고, 아팠고, 비참해졌다. 모든 것을 깨달았을 때 몰려온 감정들을 마주하기 어려워 시동을 잠시 꺼버렸다. 그리고 이제야 다시 시동을 걸어본다. 겨울에 시동이 잘 걸리지 않는 자동차처럼 차키를 돌려보지만 생각만큼 빠르게 시동이 걸려주지 않는다. 사람에게 상처받은 나를 점차 사람이 좋아지도록 만들어주었으나 결국 그 끝은 사람에 대한 상처를 흉터가 되게 만들어버렸다. 새로운 도전을 꺼리게 만들어버렸고, 새로운 사람을 향해 문을 닫게 만들어버렸다. 후회 없는 인생을 살아온 내게 후회라는 감정을 심어주었고, 내 자신을 사랑하게 되길 원했던 나를 한심하고 미워하게 만들어버렸다.


내면을 성장하고 단단하게 만드려고 노력한 것이 잘못인 걸까? 아니, 그러기 위해 마음을 먹은 것부터가 잘못인 걸까?

목표를 달성하기는커녕 더 방어적으로 변한 나는 과연 무너진 걸까? (23,0)에 점을 찍어 본다. 여기가 지금 내 위치임을 안다.

이전의 나는 (23,1) 정도는 되지 않았을까?





한참을 생각해 보았다.





아니다.

나는 무너지지 않았다.

그냥 애초에 나는 (23,-1)이었던 것이다. 내가 완벽주의자라 그런 것일 수도. 또한 이상주의자라 그런 것일 수도.

-1이라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에서 너무나 순진하게 살아온 내가 나를 지킬 힘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단단해진 것이다. 나는 (23,0)으로 올라온 것이다.

어떤 이가 보기에는 그냥 미련하고 비참한 경험을 한 것이라고 볼 수도, 또 혹자는 시간을 낭비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분명한 것은 직접 경험한 내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체화시키느냐이다. 나는 분명 그 시간 동안 얻어내고 성장하였다. 나는 직접 경험하고, 그들의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배웠기에 그들을 이해할 수는 있다. 그 행동이 정당화될 수는 없을지라도.


그들의 행동을 이해해 보면, 그들을 원망하게 되는 일은 없다. 따라서 나는 사람을 다시 좋아할 수 있다.

그리고, 나의 도전 정신이 더욱 나를 강해지도록 만들었다. 나는 또다시 도전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나를 갉아먹는 경험은 반복하지 않도록 주의하자.

나는 새롭게 도전하고 부딪혀보고, 또 배워나가고 싶다.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싶고, 더 다양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다. 세상은 하나이지만, 바라보는 관점은 여러 가지이기에. 해외에 나가는 것도 참 좋겠지만, 그럴 상황이 되지 못한다면 충분히 내가 위치한 이곳에서도 배울 수 있다. 넓힐 수 있다. 성장할 수 있다. 환경과 상황이 나를 좌우하지 못한다. 내가 환경과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바라보느냐가 나를 좌우한다. 곧 내 가치관을 형성한다. 내 신념을 만든다. 내 자아를 조각한다.


나는 비로소 (23,0)이 되었다. 하반기에는 (23,0.1)이 될 수도, 내년에는 (24,24)가 될 수도 있다. 그리 긴 인생을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내가 내 이름 석자로서 부끄럽지 않게 어떻게든 살아만 간다면 인생은 늘 상승곡선이라고 생각한다.

오늘의 우리는 어제보다 하루를 더 경험했다. 어떤 형태로든 농도는 짙어질 수밖에 없고, 우리는 그것을 토대로 성장하고 있다.

우리의 인생 그래프를 그릴 때 좋고 편함이 곧 상승이고, 나쁘고 힘듦이 곧 하강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이 고단하거나 힘들고, 좋지 않은 일들을 경험했더라도 분명 그로부터 교훈을 얻었을 것이고 나를 지킬 수 있는 단단한 방어벽을 하나 더 세울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의 인생은 늘 상승곡선이다. 우리는 꾸준히 어떠한 방식으로든 성장하고 있다. 농도가 짙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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