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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돌향 Mar 02. 2024

사랑하고, 다만 침묵할 뿐

사랑의 마음은 침묵으로 공명하며 많은 말을 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말'을 갖게 된 까닭은 살기 위해, 그리고 서로 살리기 위해서일 겁니다.

그러나 지금 세상은 매체를 통해 바라보는 큰 사회이든

내가 일상을 살아가는 작은 사회이든 '말'로 포옹하고 입 맞추는 사람들보다

'말'로 무리를 지어, 선량하고 무해한 타자를 배제하는 살천스런 원을 그리거나

경솔한 '말'로 혐오와 모멸감을 부추기는 경우들이 많은 것 같아요.

훼손된 말이 마음을 할퀴는 세상에서 

문득 ‘말’에 관해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요즘은 ‘말 잘하는 것’이 한 사람의 중요한 능력으로 여겨지고, 

심지어 미덕으로 간주되기까지 하는 세상인 것 같습니다.

말을 많이 해야 무리에 낄 수 있으며 때론 침묵으로 누군가를 배척하기도 하지요.

무리에 끼고, 누군가를 배척하기 위해 경우에 따라선 실없는 소리도 서슴지 않습니다.      


“Love and Be silent"

사랑하고, 다만 침묵할 뿐.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에서 아비인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해 보라고 리어왕이 명령하자 

셋째 딸인 코델리아가 한 대답입니다. 

사랑하고, 다만 침묵할 뿐.     


“당신의 말은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 같아야지, 섣달 그믐날의 요란한 폭죽 같아서는 안 됩니다.”

중국의 문인 주쯔칭이 '침묵'이라는 글에서 한 말이에요.

밤하늘의 별은 다문다문 고요히 반짝이므로 오래 아름답습니다. 

우리의 말은 밤하늘의 별인가요? 섣달 그믐날의 폭죽인가요?      


“은교 씨... 노래할까요?”

소설가 황정은 씨가 쓴 경장편 "백의 그림자"의 마지막 말입니다. 

소설의 주인공 무재와 은교는 사랑의 마음으로 

서로의 삶에 드리운 그림자를 조금씩 걷어내 주지만,

사랑의 마음으로 많은 말을 하지는 않습니다. 

침묵의 공명으로 두 사람은 점차 서로에게 스며들지요.

강화도의 어둔 밤길을 함께 걸으며, 서로를 향한 사랑의 마음이 가장 고조되었을 때

무재 씨는 은교 씨에게 번다한 사랑의 수사를 펼쳐 보이지 않고,

다만, 주저하듯이 이렇게 말할 따름입니다. 

“은교 씨... 노래할까요?”     


3월 1일, 낙관 없는 희망을 잃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삶으로 실천한 분들에게 

무한한 감사와 숙연한 추모의 마음을 보이기는커녕 

옳고 선한 존재들에 대해 그 잔인한 입을 가벼이 놀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의 ‘말’, 우리의 ‘말’에 대해 아프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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