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날로그가 좋아

여전히 종이가 좋은 사람

by 몽돌

"다들 패드나 노트북 있지? 그걸로 보도록 해"


며칠전 수업 발표 시간에 있었던 일이다. 앞에서 발표자 분이 발표를 하려고 한글 문서를 띄우려고 하시는데 그날따라 컴퓨터와 빔 프로젝트가 말썽이었다. 발표자분과 함께 다른분들도 같이 기계 오류의 원인을 찾으려 낑낑거리고 있을때쯤 교수님이 시니컬하게 저렇게 말씀하셨다. 교수님의 말씀 이후로 다들 제자리로 뿔뿔히 흩어지고, 발표는 그렇게 까만 화면으로 진행됐다.


수업을 마치고, 친구와 얘기를 하면서도 비슷한 주제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이제 시험 문제도 개별적으로 나눠주는게 아닌 ppt 화면에 교수님이 띄워주시고, 대면 수업인데도 불구하고 비대면으로 시험을 보는 과목들도 많아졌다고 했다. 나는 넌지시 친구에게 "아 그래? 근데 왜 종이로 안 나눠주신대?" 라고 물어보자 친구는 교수님과 같은 말투로 심플하게 대답했다. "종이가 아까우신가봐. 근데 나도 이게 바람직한 것 같아. 환경오염도 덜하고 좋잖아."


맞는 말인 것 같아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 한구석이 찜찜해지면서 작년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작년의 나는 코로나 시국으로 비대면 수업을 하고 난 후의 개강이라 대면 등교가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새학기를 시작한 나는 별안간 바뀐 수업 풍경이 당황스러웠다. 코로나 시국전에는 교탁 앞이나 교실 뒷편에 자연스럽게 마련되어 있어야 할 수업 프린트물이 없었다. 당황스런 마음으로 자리에 앉자 교수님이 들어오시고, 자연스레 화면에는 ppt 자료가 띄워졌다.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하던 와중에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친구들은 일제히 가방에서 갤럭시 탭이나 아이패드, 노트북들을 하나씩 꺼내고 있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필기 앱을 켜서 일제히 펜슬로 필기를 하거나 노트북을 가져온 친구들은 키보드로 교수님의 말씀을 타이핑했다. 맨 뒷자리에서 자연스럽게 ppt 화면으로 수업을 이어나가시는 교수님과 전자기기로 수업을 듣는 다른 친구들을 보면서 나만 혼자 벙져있는 경험을 했다.


초반에는 전처럼 교수님이 올려주신 수업 자료들을 미리 프린트하는 것으로 커버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교수님들이 올려주시는 자료들은 날이 갈수록 방대해져갔다. 혹여 집에서 프린트를 못했을 때는 학교에서 해야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 경우에는 돈이 많이 들었다. 프린트 한장당 100원 꼴이니 장 수가 많아지면 이것도 적은 돈이 아니었다.


결국 나는 현실과 타협하기로 했다. 학기가 시작하고, 한달쯤 지났을까 더이상 무리라고 판단한 나는 엄마카드 찬스를 써서 아이패드를 하나 장만했다. 한 80만원 정도 들었을까. 남은 대학생활 뽕을 뽑겠다고 마음을 먹고 거금을 들여 구매했다. 처음에는 어떻게 써야하나 버벅거렸지만 나름 익숙해진후론 지금까지 잘 쓰고 있다.


이제는 나도 전과 같이 전공책을 들거나 여러 프린트물을 가지고 다니기 위해 l자 화일을 들고 다니지 않는다. 오직 아이패드 하나면 된다. 이제 학생들은 더이상 앞에서 발표하는 교수님이나 발표자를 쳐다보지 않는다. 학생들의 시선은 오직 전자기기로 향한다. 수업전에 교수님이 발표물을 나눠주며 소소하게 스몰톡을 하던 것도, 발표자가 발제문을 나눠주면서 하던 가벼운 눈맞춤도 이젠 없다.


고작 종이 하나 없어졌을 뿐인데 삭막해진 분위기가 조금은 씁쓸해진다.


책장.jpg 책상 바로 옆 책장에 자리한 각종 책들과 프린트물들


친구와 그 일이 있고 나서 집에 돌아온 나는 여러 책들과 갖가지 프린트물이 꽂혀져 있는 내 책장을 바라봤다. 아무리 지금 시대가 디지털화 되고, 전자기기가 더 익숙한 시대가 됐다고 해도 난 여전히 아날로그가 좋다. 왜 종이 프린트물이 더 좋냐고 물어보면 종이만이 주는 그립감과 넘길때의 그 기쁨, 다 읽고 읽은 것들이 쌓였을 때의 넉넉함과 뿌듯함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활은 전자기기와 디지털로 인해서 많이 편해지고, 간소화 되었지만 그로 인해 우리가 잃은 것과 포기하게 된 것은 무엇이 있는지를 곰곰히 생각하게 되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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