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감 ‘하프타임’
하프타임.
스포츠 경기에는 전반전 후 ‘하프타임’이 있다. 후반전에 앞서 전반전 경기 내용을 복기하고 숨도 고르며 재정비하는 시간이다. 아침에 눈을 뜨고 누운 채 오늘의 글감을 확인하고 오후에 다시 남은 글을 읽으면서 하프타임을 소재로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야 할지 막막했다.
그동안 하프타임이 있었던가. 최근 몇 년 동안 그나마 아무 걱정 없었던 하프타임이라 한다면 신혼여행이 될 듯하다. 다녀온 지도 벌써 10달이 다 돼간다. 비행기표와 숙박 시설을 예약한 뒤 현지에서는 발이 가는 대로 움직였다. 그야말로 함께 하는 자유여행이었다.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먹고 싶을 때 먹고, 맛집도 현지인이 가는 데 위주로 찾아보고 마음대로 거리를 걸었다. 이런 여유가 참 오랜만이었다.
돌아와서 지금까지는 항상 뭔갈 했다. 몸도 움직였고 머리도 복잡했다. 결혼과 이사 후 계획을 전부터 세워 뒀지만 이사 오니 막상 현실은 또 달랐다. 지금까지 해 오던 일에서 아무리 생각해도 미래의 내 모습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주변에 다른 지역에서 학원일을 정말 ‘즐겁게’ 하시는 분도 있지만 그런 내 모습은 상상이 되지 않았다. 때론 거기서부터 탁, 하고 암막이 드리워진 듯한 기분이었다. 앞으로를 생각하면 집안일과 일을 병행할 수 있는 쪽을 생각해야 했다. 그렇게 올봄부터 초여름까지 긴 터널로 들어가면서 하프타임이 찾아왔다. 터널에서 나왔을 때는 두 번째 스무 살을 앞두고 조금씩 방향을 틀어야겠다고 생각한 뒤였다.
여름에는 예상치 못하게 검도에서도 하프타임이 찾아왔다. 시합을 앞두고 대련 연습하다가 오른쪽 허리를 다치는 바람에 시합장 대신 정형외과와 한의원을 오가야 했고, 승단심사도 미뤄야 했다. 건강해지려고 해 오던 운동인데 이사 와서는 운동하다가 여기저기 자잘하게 다치면서 몇 달 동안 혼란스러웠다. 나, 왜 검도하는 거지? 그동안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관리가 필요한 상황이다. 슬로 조깅에 근력 운동까지 다시 같이 해야 할 판이다.
연휴가 지나고 그제까지는 괜찮았건만 오늘은 호구를 쓰고 대련하다가 부딪치면서 또 오른쪽 허리가 조금 지르르하다. 필기시험과 본국검법, 검도의 본은 조금만 더 하면 되겠다 싶은 느낌이 드는데 자유 대련만큼은 오리무중, 발목을 잡는 느낌이다. 그동안 어지간히 체력과 코어 근육이 약해졌나 보다. 애들하고 대련하면서 부딪쳐도 이 정도인데 괜찮을까 싶기도 하다. 더 힘들었던 건 기분 탓인지 몰라도 은연중에 ‘겨우 이거 갖고 아프다고 하냐’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듯한 뉘앙스다. 몸이 힘든 건 감수할 수 있지만 때론 말 때문에 마음이 더 힘들다. 이건 정말 변덕스러운 날씨와 기분 탓이어서 지금도 모르겠다.
결혼하고서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이 있는 것도 아니고, 뭐든 매일 조금씩 하면서 일상을 유지하는데도 문득문득 불안할 때가 있다. 실적이나 성과가 당장 나타나는 일도 떼돈을 버는 일도 아니라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원체 부지런한 사람들보다는 게을러 보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마냥 퍼질러져 있는 것도 아닌데 다들 주식이나 코인, 부동산 얘기만 해서 그런가 괜히 또 불안해질 때가 있다. 글 쓰는 일과 번역하는 일은 이런 거랑 거리가 좀, 한참 멀긴 하지. 연휴 동안 긴장이 풀려서 이러는 걸지도 모른다.
운동하고 와서 속상하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고.
이럴 땐 답이 없다. 평소대로 하던 일, 해야 할 일을 하면서 몸을 움직일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