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검도도 속도보다는 방향)
“글을 쓰면서 어떤 점이 달라진다고 느끼나요?”
며칠 전 하루를 마무리할 겸 잠시 책상에 앉아 곰곰이 생각했다. 몇 달 전에도 비슷한 글감으로 글을 썼다. 한 3달 전쯤이었던 것 같다. 그 뒤로도 글을 쓰면서 어떤 점이 달라졌을까, 생각해 보면 우선 하루를 정갈하게 시작하고 정리한다는 느낌이 든다. 아침에는 손을 움직여 문장을 쓰면서 잠을 깨고 그날 할 일을 머릿속으로 읊어본다.저녁에는 아침에 쓴 문장을 다시 읽고 질문에 답하면서 짧게나마 생각을 정리한다. 이렇게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음으로 넘어가서 그날 필사한 문장이 발췌된 책을 찾아 아주 잠깐 책 소개나 내용을 읽어보기도 한다. 그러면서 책도 가까이하게 된다. 예전에는 공부든 일 때문이든 영어 원서를 주로 읽었는데 글쓰기 모임을 하면서 올해부터는 한국 작가가 쓴 에세이나 소설도 다시 읽게 됐다. 그런 면에서 글쓰기도 번역 공부이고, 글쓰기는 일상으로 자리했다.
글쓰기로 달라진 점이 또 있다면 올해엔 단톡방에 계신 분들과 책 이야기도 하게 됐단 것이다. ‘책’에 대해 누군가와 얘기하기가 생각보다 쉽진 않다. 성격상 5~6명에서 수십 명 있는 오프라인 독서 모임은 부담스러운데 단톡방에선 이따금 책에 대해 묻고 얘기할 수 있어서 좋다. 글에 책 얘기를 써서 올리면 이 책 나도 읽어봤다, 이런 책도 있다, 이렇게 흐름이 이어지고 그 과정에서 내가 몰랐던 책을 알게 되기도 한다. 그러면 검색해 보고 만약 원서가 있으면 같이 찾아보면서 전에 혼자 하다 흐지부지됐던 것들도 다시 해봐야겠단 생각도 한다. 며칠 전엔 모리시나 노리코의 <계절에 따라 산다>를 찾아보며 이 책 읽으려면 일본어 공부해야겠네, 그러다 갑자기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가 생각나 한국어판과 원서를 찾아보면서 이럴 땐 프랑스어가 참 아름답지, 이거 읽으려면 프랑스어 다시 공부해야겠다, 생각한다.
매일 글감을 주제로 글을 쓰면서 무심코 지나쳤던 일상의 조각을 한 번 더 들여다보고 생각하게 된 것도 또다른 변화이다. 지난 주말 오후에는 점심을 먹고 정준희의 <논>에서 황석희 번역가를 인터뷰한 영상을 봤다. 중간에 황석희 번역가의 타투 문구가 나왔다. 손목인지 팔뚝인지에 새긴 거였는데, 문구는 ‘세상을 번역하다’였다. 그걸 보면서 ‘검도를 번역하다’란 문구가 떠올라 잊어버릴까봐 냅다 가까이에 있던 볼펜을 집어 포스트잇에 후다닥 썼다. 세상을 번역하다, 검도를 번역하다. 검도 용어에 그동안 운동하면서 있었던 에피소드나 친정 검도관 관장님의 경험, 관장님께서 하셨던 말씀을 연결해서 에세이로 엮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우리말로 먼저 쓰고 일본어로도 쓰게 된다면 엄청난 프로젝트가 돼버릴지도 모른다. 뭐, 상상은 자유니까, 라고 썼지만 이번에도 고민 끝에 승단 심사를 미루거나 보류해야 할 것 같아 마음 한켠이 무겁다. 승단을 빨리 하고 안 하고가 문제가 아니라 체력과 몸 회복이 먼저일 것 같아서……
아무튼 그렇게 글쓰기로 하루를 시작하고 일상을 다듬고 책과 가깝게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