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뭐가 다른 걸까?
부러움과 존경 사이. 오늘 아침에도 운동화를 신고 집 근처 공원을 걸어가며 생각했다. 요새 누군가를 부러워하거나 존경한 적이 있었던가. 부러움과 존경의 차이점은 뭘까. 하천 산책로로 발걸음을 옮기는 동안 과거에 내가 어떤 것, 어떤 사람을 부러워했는지 돌이켜봤다. 부러움과 존경을 구분하려면 ‘그 대상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요소인지’를 봐야 한다.
내가 부러워하던 또는 부러워하는 대상은 주로 처한 상황에서 내 힘으로 바꿀 수 없는 것인 경우가 많았거나 많다. 한때 코가 작고 예쁜 사람들을 부러워했고 지금도 정도는 덜하지만 그렇다. 한창 시험 준비를 할 때에는 먼저 합격해서 후줄근한 트레이닝복이나 레깅스 대신 오피스룩을 예쁘게 차려 입고 이른바 학교 또는 직장 브이로그나 인증샷을 화려하게 찍어 올리는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한창 검도를 배울 때는 설명을 조금만 듣고도 타고난 운동 신경으로 처음 배우는 동작도 2~3번 연습하고 곧잘 해내서 관장님의 칭찬을 받는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하지만 물려받은 소중한 코는 앞으로 성형할 생각이 없고 내 힘으로 뜯어고칠 수도 없다. 시험 합격 여부도 내 맘대로 결정할 수 없다. 느려터진 거북이로 타고난 운동 신경도 다른 사람의 것과 바꿀 수 없다. 다른 면에서 보면 이들은 나의 ‘결핍’이기도 하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단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그 결핍이 눈에 크게 들어와 밟히던 때가 있었다. 그만큼 부러움도 배가 됐다.
반면에 존경심은 내가 통제할 수 있고 내 힘으로 어느 정도 바꿀 수 있는 데서 오는 경우가 많았다. 귀인 이론에서는 이를 ‘노력’이라고 말한다. 나와 관심사가 겹치거나 상황이 비슷할 때 부러움은 존경심이 되고 때로는 부러움 없는 존경심이 되기도 한다. 내겐 한 분야를 오랫동안 꾸준히 해 온 분들이 그렇다. 아빠께서는 퇴직 전까지 한 직장에서 40년 가까이 근무하셨다. 친정 검도관 관장님도 지금까지 35년 넘게 검도를 하고 계신다. 올 9월 <카라마조프 형제>를 10년 만에 완역한 김정아 번역가도. 물론 개인이 기울일 수 있는 노력의 정도와 크기에도 개인차는 있다. 그래도 어떤 것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다는 건 엄청난 힘이다. 이들의 모습을 보거나 이야기를 접하면서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노력해야 할지도 배운다.
여기까지가 아직 여전히 짧은 경험으로 터득한 부러움과 존경의 차이점이다. 다른 대상이나 사람에 대한 부러움이 옅어진 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 대신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기 시작했을 때였다. 부러움이 옅어지자 결핍에서 오는 질투나 상실감도 같이 희미해졌다. 그러자 어느 순간부터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졌다. 대신 그 자리에는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힘과 내 선에서 통제할 수 있는 요소로서 본인만의 노력을 꾸준히 해 온 사람들에 대한 존경이 자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