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감 : 잃어버린 것
의미, 재미, 흥미.
돌이켜 보면 마지막 수업으로 향해갈 무렵, 이미 한 달 여 전부터 이 세 가지를 잃어가고 있었다. 복사하기와 붙여 넣기를 반복하며 하루를 보내면서 어느 순간부터 매너리즘이 심해졌다. 특히 ‘나아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는 데서 오는 무기력이 컸다. 분명 하고는 있는데 그대로라는 느낌. 수업은 물론이고 번역 공부와 검도까지 무기력이 번졌다. 지난주에는 생일이 끼어 있어 그나마 나았지만, 이틀 뒤 마지막 수업을 하고 다시 무기력이 찾아왔다.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었고 언젠가는 이 일에서 손을 떼야겠다고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따금 속에서부터 화가 올라왔다. <티처스> 프로그램, EBS <공부 불안>을 포함한 관련 영상도 마주하면 전과 달리 몸서리를 쳤다. 그런 상태가 지난 주말까지 포함해 3~4일 정도 이어졌다.
도장에도 꾸역, 꾸역 갔다. 기본기 수업이 끝나고 검도의 본을 (붙들려서) 따로 했는데, 빨리 집에 가서 저녁 먹고 싶다고 생각했다. 예전에는 힘들어도 이런 생각을 거의 하지 않았다. 어제도 붙들려서 본 하자는 말을 들은 순간 도망가고 싶었다. 유난히 잘 되지 않는 동작을 한 끗 속도 차이 때문에 연이어해야 했을 때는 때려치우고 싶었다. 그 1~2초 차이가 뭐길래. 하지만 얼굴에 표정 하나 띄우지 않고 5번이었는지 10번이었는지 허리 치기만 계속했다. 허리 때문에 승단 심사를 미루면서 그동안 지친 것 같다. 다른 애들이 먼저 대학 가서 연애도 하고 축제도 즐길 때 혼자서 재수한다고 책 보는 수험생 심정이랄까.
뭘 해도 제자리에 그대로 있는 것 같고, 그런 느낌 때문에 또 무기력해지기 싫어서 그동안 억지로 움직였다. 무기력해진다고 가만히 있으면 악순환이란 걸 너무나 잘 알기에. 무기력해진다 싶으면 일어나고, 또 일어나서 청소를 하든 책을 읽든 밖으로 나가든 뭔갈 했다. 그런다고 당장 무기력이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다행히도 주말이 지나고, 다시 주말이 다가오면서 아주 조금씩 옅어지고 있다.
며칠부터 문득 화실에 가서 오랜만에 손으로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사 온 지 거의 1년 만이다. 며칠 동안 어떻게 할까 하다가 원데이클래스로 먼저 참여해 보기로 했다. 어떤 재료로 그림을 그리고 싶은지 묻는 문자를 받았을 때는 이게 뭐라고 설렜다. 유화에 도전해 볼까, 오랜만에 붓을 잡으니까 아크릴화부터 다시 해 볼까. 그렇게 이번 주 토요일 오후에 화실에 가게 됐다. 그림을 그릴 때는 과정과 결과가 눈에 바로 보이니까 뿌듯하다. 그런 느낌이 지금 내게 필요한 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