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감 : 오늘부터
오고야 말았다, 12월. 올해의 마지막 달이자 새해를 준비하는 달이다. 한 해를 정리하고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말하며 조금은 나 자신에게 느슨해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관대해질 수 있는 달, 1월 1일부터 하려고 계획한 일을 시험 삼아 시도할 수 있는 달, 만년형 다이어리도 내게 잘 맞는지 살펴볼 겸 시험 삼아 가볍게 써 볼 수 있는 달이기도 하다. 뭐든 시도하고 삽질이나 실패를 해도 조금은 너그럽게 넘어갈 수 있는 달이기에 오늘부터는 뭔갈 해봐야겠다고 다짐하는 달이기도 하다.
반대로 이건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해서 덜어낼 수도 있다. 그게 뭘까, 커피가 떠올랐다. 한때는 테이크아웃 잔을 기준으로 하루에 2~3잔 마실 정도로 커피를 사랑했고 지금도 애정하지만 작년 가을에 친정에 잠깐 내려갔다가 한의원에 들른 후로 줄였다. 체질상 잠을 깊게 자는 편이 아닌 데다 머리를 많이 쓰다 보니 피로하면 눈이 가장 먼저 아플 거란 말을 듣고 나서였다. 하지만 대학교 때부터 10년 넘게 그렇게 마신 커피를 하루아침에 끊기가 쉽나. 해서 아침에 작은 머그를 기준으로 딱 한 잔만 마시기부터 시작했다. 그저께는 점심을 먹고 나서도 커피가 당겨서 디카페인 아메리카노를 몇 모금 마셨다가 머리가 북채로 두드리는 듯 아파와서 멈췄다. 이 정도면 내년엔 주말에 커피 마시지 않기, 밖에서 마셔야 할 일이 생기면 디카페인이나 다른 음료로 대체하기로 목표를 잡아도 될 듯하다.
또 뭐가 있을까. 1주일에 한 번은 운동 쉬기. 토요일이나 일요일 중 하루는 쉬려고 한다. 쉬면 불안해지는 건 수험생 시절부터 버리지 못한 강박이다. 평소에도 멍 때리기를 잘 못한다. 조금만 틈이 생기면 빨래든 설거지든 책상 정리든 쓰레기 버리기든 일거리를 만들어서 한다. 주말에도 아침에 일어나면 가만히 쉬질 못하고 식기를 싹 씻으면서 부엌을 정리하거나 화장실을 청소한다. 운동도 마찬가지. 하루라도 쉬면 그새 몸무게가 느는 게 아닌가 한창 불안해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2주 전 주말에 슬로 조깅을 포함, 운동을 아예 하루 쉬고 자기 전에 고관절 스트레칭만 10분 정도 하고 났더니 다음날 오히려 몸이 더 개운한 느낌이 들었고 하루 쉰다고 큰일 나지도 않았다. 그때 휴식도 중요하다는 걸 몸소 느꼈다.
비교하지 않기. ‘남’과의 비교도 덜어내기로 한다. 어제 저녁 무렵, 단톡방에 영화 리뷰 영상이 하나 올라왔다. 책 읽다가 집중력이 떨어졌을 때라 클릭해서 보기 시작했다. 이때만 해도 몰랐다, 이 영상이 날 울릴 거란 걸. 최근에 <매일매일 좋은 날>을 다시 읽었음에도 책에서 노리코가 <길>이란 영화 얘길 했었던가, 하며 보다가 영화 속에서 노리코가 자신보다 어리고 다도를 처음 배우는데도 곧잘 능숙하게 해내는 고등학생을 지켜보며 ‘나, 다도 잘하지도 못하는데 그만둘까’ 고민했다고 독백하는 장면이 나왔다. 여기서 올 한 해 도장에서 있었던 일들이 한꺼번에 생각나면서 목이 콱 막혔다. 어떻게 이렇게 똑같지. 저거 딱 내 얘긴데. 여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콧물이 주룩 흘러나왔다. 어쩐지 친정 검도관 생각이 요새 자꾸 나더만 이 영상 보고 코 풀려고 그랬나. (그리고 노리코는 지금까지 50년 가까이 다도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이번 달에는 새해가 오기 전에 이 세 가지를 조금이라도 덜어내는 데 익숙해지면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수험생으로 한창 교육학과 전공 관련 책을 보며 씨름할 때는 남들보다 높은 점수를 받아서 앞서야만 다음으로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러지 않아도 되고 오랫동안 꾸준히 버티면서 하기가 더 중요해졌다. 이 ’꾸준히 버티기‘마저 쉽지 않은 일이다. 뭐든 멀쩡한 상태보다는 최소한 몸 어딘가 한 군데는 골골대는 상태에서 할 때가 훨씬 더 많을 것이고, 기분 좋은 상황보다는 기분이 뭐 같은 상황에서 할 때도 더 많을 것이다. 그때도 평정심과 부동심을 유지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