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청휘청 외줄타기 엄마라서
엄마는 아이들에게 어떤 존재일까? 엄마가 된 나의 역할은 무엇일까?
사람 엄마가 해야 할 역할을 생각하면 너무 복잡하고 머리가 아프니 우선 동물 엄마를 생각해 보자. 사람도 동물의 한 종이니 거기서부터 시작하면 쉬울 것 같다.
우선 첫째로, 엄마는 자식들에게 '먹을 것'을 주는 사람이다.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본능적으로 자신을 낳아준 어미의 젖을 찾아간다. 동물들도 자기가 낳은 새끼들이 스스로 먹이를 구할 수 있을 때까지 어떻게든(때로는 목숨 걸고) 먹이를 구해와서 새끼들을 키운다. 나도 내 자식들 입에는 어떻게든 몸에 덜 해로운 음식을 최대한 많이 구해서 넣어주고 싶은 강력한 종족보존의 욕구가 있다. 아무리 요리를 못하고 싫어해도 막상 아이가 태어나니 어떻게든 뭐라도 만들어 먹이게 되었다.
둘째로, 엄마는 '입을 것'과 '자는 곳'을 제공하는 사람이다.
동물들도 자신의 새끼들이 추위와 맹수를 피해 따뜻하게 체온을 유지할 수 있게 자신의 몸으로 새끼를 감싸주기도 하고, 최대한 안전한 보금자리를 찾거나 만들어준다. 사람 엄마는 보온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적당한 기능을 하는 옷을 찾아 깨끗이 빨아 아이들에게 입혀 준다. 그리고 안전할 뿐 아니라 최대한 넓고 쾌적한 집이라는 공간을 만들어 주고자 한다.
셋째로, 엄마는 '애정과 관심'이라는 특별한 감정을 자식들에게 주는 사람이다.
머리털 포함 털이 있는 모든 동물들은 태어나자마자 엄마의 쓰담쓰담 손길과 따뜻한 포옹을 충분히 받아야 잘 자랄 수 있다. (그래서 생존에 유리하도록 포유류 새끼들은 모두 커다랗고 동그란 머리에 귀여운 외모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사람 아기, 새끼 고양이, 새끼 강아지 등을 떠올려보면 충분히 말이 된다. 무차별 심장폭행! ) 아무리 영양식단에 좋은 장소에서 키워도 애착을 받지 못하면 아이들의 마음뿐 아니라 몸도 건강하게 성장하지 못한다고 하니 이것 또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 수 있다.
넷째로, 엄마는 자식들이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게 가르쳐 주는' 사람이다.
동물들이 새끼를 키울 때 보면 새끼들이 정말 어릴 때는 젖을 주거나 먹이를 구해다 입에 넣어주지만, 새끼들이 자기 발로 걸어 다닐 수 있게 되면 어떻게 먹이와 물을 구하는지 또 어떻게 천적의 공격을 피하는지 가르쳐 주기 시작한다. 그뿐 아니라 사회적인 동물들의 경우 다른 동물과 의사소통하는 방법도 가르쳐 준다. 어느 정도 크면 강아지도 하면 되는 행동과 안 되는 행동을 어미개에게 배운다.
사람 엄마들은 동물 엄마들보다 조금 더 많이 이것저것 가르쳐주고 싶어 한다. 아무래도 복잡한 인간사회에서 살아가야 하니 배울 것이 더 많을 수밖에 없으니까.
그렇지만 네 번째를 내가 너무 욕심을 내다보면 도움을 주는 대신 지랄만 할 것이 분명히 예상되므로,
나는 딱 두 가지!!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엄마인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책과 미술을 통해서 아이들에게 세상을 보여주기로 했다.
매번 아이들에게 필요한 책을 전문가의 추천과 리뷰들을 다 보고 몇 시간 비교, 분석 고민해서 책을 보여 주었다면 너무 어려웠을것 같다. 나는 표지나 목차를 쓱 보고 볼만하다 싶거나 재미있는 냄새가 솔솔 나는 것 같은 책이면 큰 고민 없이 선택하는 편이다. 아이들에게 책은 '같이 놀 수 있는 종이 친구'라고 생각했기에. 오늘 같이 놀 친구를 찾을 때 큰 고민 안 하는 것처럼!
또 무슨 종류의 책을 얼마나 보는지 같은 것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그냥 마음 가는 대로 보도록 최대한 놔두는 편이었다. 어떤 시기에 학습만화만 본다던지 책을 편식하는 것처럼 보이거나 권장연령에 맞지 않는 책을 볼 때도 별로 터치하지 않았다. 조금 어린 동생에게 맞춰주면서 놀 때도 있고 큰 언니나 형들 틈에 껴서 놀 때도 있는 것처럼!
그리고 절. 대. 책을 보고 난 후에 무엇을 체크해 보려고 질문하거나, 독서감상문을 쓰라고 하거나 하는 어떤 종류의 학습적 요구를 일절 하지 않았다. 독서에 물론 여러 가지 효과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 이전에 그냥 보고 싶어서 보는 것이 제일 아닐까? 어떤 친구를 좋아할 때, 그냥 좋아하는 것처럼! 친구랑 놀고 들어온 애한테 오늘 친구랑 놀았던 것에 대한 문제를 내거나 감상문을 쓰지는 않으니까!
꼬물이는 이야기책을 좋아했다.
나 또한 재밌는 이야기라면 사죽을 못 쓴다. 내가 제일 존경하는 사람은 자기 머릿속에 들어온 이야기를 바깥으로 끄집어내서 세상 사람들에게도 재밌는 이야기를 해 주는 스토리텔링 작가이다. 왜냐? 살다 보면 커가면서 수도 없는 재미없는 시간들을 견뎌야 하는데 그 재미도 없이 어떻게 사냐고!
이야기만큼 사람 마음을 사로잡는 힘이 있는 게 또 있을까? 어쨌든 꼬물이와 나는 둘 다 이야기책을 좋아해서 신나게 읽어주고~ 재밌게 들어주고~ 하면서 많은 시간 같이 책을 볼 수 있었다.
반면에 말랑이는 자연관찰 책을 좋아했다.
말도 못 할 때는 물고기 같은 여러 동물들이 쭉 나열되는 책을 보고 또 보고 하더니 (그것만) 말을 하게 될 무렵에는 로봇과 차가 나오는 시리즈를 계속 보더니(또 그것만! ) 4살쯤 되니 갑자기 공룡에 꽂혀서 공룡책만 보기 시작했다.(오직 그것만!!) 공룡 백과사전, 공룡의 역사 그림책, 공룡 이야기 그림책~한 3년 가까이 꼬박 공룡책을 보여주는 것이 솔직히 지겹기도 했지만 그래도 아이가 관심 있고 좋아하는 것을 실컷 보여주고 싶어서 이것저것 다양한 공룡책을 구해다 주었다.
미술도 책처럼 재미있게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렵게 접근하지 않았다. 책 보다 사실 더 쉽다. 책을 안 좋아하는 아이들은 있어도 손에 뭔가를 쥘 수 있게 되었을 때 낙서를 재미없어하는 아이는 없기 때문이다. 모든 꼬맹이들은 원래 예술가라고 하던데 예술가에게 미술을 어떻게 가르쳐줄까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을까?
나는 애들이 어릴 때부터 어디 놀러 갈 때도 언제든 심심할 때 낙서할 수 있게 색종이나 종이, 색연필 몇 개를 챙겨서 들고 다녔다. 단, 여기서 심. 심. 이 포인트! 심심해야 아이가 그림을 그리게 된다. 핸드폰 영상이나 게임이 없어야 뭘 끄적거리기고 놀기 때문에 핸드폰은 주지도 않고 나도 아이들과 있을 때는 되도록 몰래 살짝만~
그리고 아이들이 초등학생이 되어서는 여러 가지 종류의 미술을 경험하도록 해 주었다. 그림책, 민화, 소묘, 수채화, 추상화, 캐릭터, 일러스트, 캘리그래피, 드로잉 등등. 책을 보고 나와 같이 해 보기도 하고 화실이나 문화센터에 잠깐씩 보내기도 하면서 다양하게 접해볼 수 있도록 유도하였다.
아이들에게 그 시간이 무엇보다 재밌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동네 아이들 몇 명과 같이 몇 달간 팝업북을 만들어 보기도 했고, 지금은 미술을 좋아하는 친구와 같이 집에서 일주일에 한두 번씩 드로잉을 하고 있다. 낙서도 하고, 보고 그리기도 하고, 날씨가 좋으면 공원이나 숲으로 가서 풍경 스케치도 하고, 한 번씩 동물원 같은 색다른 곳에 가서 그려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