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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아이 Dec 07. 2023

'아빠'라는 울타리

휘청휘청 외줄타기 엄마라서

아빠라는 사람은 자식들에게 어떤 존재일까?

예전에는 아빠가 집안의 규율을 담당하는 엄한 역할을 주로 맡고 엄마가 아이들을 부드럽게 감싸주는 '엄부자모'가 사회적으로 보통 권장(?)되었다면 요즘은 그 반대로 엄마가 엄하고 아빠가 부드러운 '엄모자부' 스타일일이 많이 생긴 것 같다.

나만 해도 어릴 때 우리 집은 아빠가 아이들을 혼내고 엄마가 달래주는 패턴이었고, 지금 내가 부모가 된 우리 집은 엄마인 내가 군기반장이라 아이들에게 엄하고 혼내기도 하고 아빠인 남편이 달래주는 편이다.

이상적으로는 사실 누가 혼내는 역할이고 누가 달래주는 역할이고 이렇게 나누는 것보다 훈육은 부모가 같이 해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한 사람이 훈육 반(감정 안 섞고), 공감과 이해 반 이렇게 반반치킨처럼 딱 50프로의 비중으로 아이들을 대하기 쉽지가 않다. 보통의 사람들은 완벽히 균형 잡혀 있기보다는 어디 한쪽으로 조금 치우쳐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불. 균. 형. 하면 대표적으로 바로 나!

내가 빠질 수 없지~(뭐, 자랑은 아니지만)

나의 장점이자 단점인데, 나는 좋은 건 너무 좋아하고 싫은 건 너무 싫어한다. 잘하는 건 엄청 잘하기도 하면서 못하는 건 또 말도 안 되게 못 한다. 엄마의 자질로 보면 사실 단점에 가까운 특징이긴 하다.

아이들을 키울 때도 아무리 신경을 써도 균형 잡힌 태도로 일관적이게 아이들을 대하지 못할 때가 많이 있다.

아이들을 보호해야 하는 마음이 앞서 과잉보호나 과잉 훈육을 하기도 하고. 그것만 하면 다행이게? 과잉 집착, 과잉 불안, 과잉 분노 등등 을 균형과는 거리가 멀고 멀다.

그래서 그런지 나에게는 더더욱 아이들의 아빠라는 존재가 필요하고 중요하다.


우리 집 마음 약한 '아빠'는 아이들의 마음을 무조건 첫 번째로 알아주는 사람이다.

우리 남편은 아이가 엄마한테 혼나서 울 때면, 방으로 데리고 가서 살살 달래준다.

아이가 잘못한 행동을 판단하기 이전에 아직 어리니까 그럴 수 있지~ 이해해 주고, 엄마한테 혼나서 얼마나 속상할까? 하고 공감부터 해준다.

물론 그 순간에는 나도 화가 나 있을 때가 많아서 나랑 같이 편먹고 아이를 혼~쭐내지 않는 남편의 행동이 못마땅하기도 하고 혼자만 나쁜 역할을 하는 것 같아서 왠지 억울하기도 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면 내가 아이를 훈육하면서 제제할 건 하더라도 아이의 감정과 사정도 조금 더 들어줄걸 하는 후회가 들 때가 많다. 그때 나는 비록 그러지 못했지만 남편이라도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다독여주어서 다행이다 싶은 마음이 들면서 말이다.


또 '아빠'는 아이들(특히 아들)과 몸으로 놀아주는 사람이다.

이 부분은 저질체력인 나로서는 범접 불가 영역이다. 얼마나 심하냐 하면 내가 한창 꽃다운 나이일 때도(20-30대 초반) 체력이 보통 할머니들보다도 못한 정도였다.

어린아이들은 너무 귀엽고 이쁘고 다 좋은데 옆에 있는 어른의 기를 쫙쫙 빨리게 하는 희한한 재주가 있다. 아이들 꼬꼬마 시절 내 새끼들이라 사랑스러워도 저녁때만 되면 너무 지쳐서 코로나 시기도 아닌데 '거리두기'를 하고 싶어졌다.

그때 덩치 큰 남편이 퇴근해서 아이들을 내 몸에서 떼 가주면 그것이 나에게는 그 어떤 애정표현보다도 좋았다. 꼬물이를 등에 매달고, 말랑이를 무릎에 앉히고 저녁을 허겁지겁 먹던 그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리고 아들 말랑이는 아빠를 닮아서 초특급 강철체력인데 초등학생쯤 되니 정말 에너지가 미친 듯이 폭발했다. 어느 정도냐 하면 진짜 하루종~~~~~일 정말 쉬지도 않고 계~~~ 속 공을 차거나, 던지거나, 뛰고 싶어 하는 것이다.

나는 주로 내 에너지를 혼자 앉아서 머리를 굴리거나 손을 꼼지락 거리면서 쓰는 편이라 말랑이의 바깥으로 뻗치는 에너지가 너무 부담스러웠다. 어느 날부터는 공만 봐도 속이 메슥메슥거릴 정도로.(우리 집에 공이 10개도 넘는다. 도대체 왜 집에서까지 공을 차냐고ㅠㅠ)

다행히도 우리 집에 공을 좋아하는 사람어른이 한 명 더 있어서 말랑이를 데리고 종종 바깥에 나가서 공놀이 상대가 되어주고 있다. 휴우~


그리고 '아빠'는 엄마가 중심을 잃고 비틀거릴 때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다.

설마 엄마 노릇, 나만 이렇게 힘든 건 아니겠지? 태어나서 수많은 역할을 해봤지만(딸, 언니, 누나, 학생, 선생, 백수, 회사인, 프리랜서, 아내, 며느리, 동네 아주머니 등등) 그중 ’ 엄마‘는 진짜 최고 높은 난의도.

왜 이것만은 꼭 좀 잘하고 싶은데, 이것이 특히 어렵고 힘든 걸까? 왜 자꾸, 왜 하필, 내 가장 나약하고 감추고 싶은 약점을 들춰내냐고?!! 왜?왜?왜!!!

그런 모습을 들키고, 한계를 마주하고 비틀비틀 넘어질 것 같을 때면 남편이 내 손을 잡고 으쌰~ 당겨 주었다.

내가 엄마인데 너무 한 것 같다고 스스로 자책하면,

‘엄마가 너무하는 게 어딨어. 엄만데~ 엄마도 사람인데, 그럴 수도 있지.' 하면서.

(다시 기운 차려서 빨리 자기 새끼들 돌보라고)


모든 아빠들이 다 똑같진 않겠지만 내가 이제껏 겪어보고 지켜본 아빠의 모습은 이렇다.

아빠는 엄마만큼 아이들과 가깝거나 만만하지는 않은데, 엄마 못지않게 자식들을 사랑하는 사람.

엄마처럼 아이들을 졸졸 따라다니거나 세심하게 챙기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은근히 해줄 건 다 해주는 사람.

엄마가 제 자식을 지키는 동안, 자기 아내이자 자기 아이들의 엄마를 한 발짝 뒤에서 지키고 있는 사람.


여보, 그런데 혹시 다음 세상에서 또 만나게 되면 그때는 역할 바꿔보자.

나도 ‘착한 역할’ 한번 해보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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