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청휘청 외줄타기 엄마라서
엄마의 엄마인 외할머니는 아이들에게 아주 가깝고도 특별한 대상이다.
자신들의 엄마와 제일 편하고 가깝기 때문에 그 친밀함을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우리 집처럼 아이들이 태어나서부터 어린 시절 내내 가까이서 외할머니가 육아를 같이 도와준 경우 더욱 그렇다.
나도 어린 시절에 외할머니가 우리 집에서 엄마와 함께 우리를 돌봐주셨는데 나에게는 외할머니가 거의 '제2의 엄마'같은 사람이었다.
동물의 세계에도 바다에서 제일 큰 포유류인 고래와, 육지에서 제일 큰 코끼리는 모계사회를 만들어 '할머니'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받는다고 한다. 자연이라는 척박한 환경에서 임신 기간도 길고, 비교적 오랫동안 새끼를 길러야 하는 역할을 암컷이 주로 하기 때문이라고. 나이 든 고래 암컷은 생식 능력이 있어도 사람처럼 폐경을 하고 젊은 암컷이 낳은 새끼를 같이 돌보며 무리에 기여를 한다고 한다. 코끼리도 할머니 코끼리가 지혜를 발휘해 무리를 데리고 물과 먹이를 찾아다니고 새끼를 기르는 것을 적극 도와준다고 한다.
(내가 바다랑 아프리카에서 새끼를 키워 본 경험은 없으니 확실히는 몰라도 지금 한국에서 아이를 낳아서 키우는 것이 고래나 코끼리보다 쉽다고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어른만 되면 나 혼자 실컷 뭐든지 잘할 줄 알았는데 막상 내가 엄마가 되어 보니 또, 여전히, 계속 엄마의 도움이 많이 필요했다.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라는 멀고도 험한 여정에서 엄마의 도움을 적극 받을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육아 초반에는 하나도 제대로 못했던 살림을 엄마가 많이 도와주었다. 그런데 정말 더 큰 도움을 받은 부분은 엄마가 아이들을 애정 어린 마음으로 기꺼이 상대해 주었던 수많은 시간들이었다.
사실 나는 아이와 놀아주는데 재주가 1도 없는 사람이다. (고백합니다. 아이들과 노는 것보다 차라리 설거지를 조금 더 선호합니다) 그런데 우리 엄마는 나와는 많이 다른 성향으로 아이들을 좋아하고 잘 맞춰준다. 꼬꼬마 시절 까꿍놀이부터, 공기놀이, 땅따먹기, 바둑, 화투까지 신나게 아이들과 놀아 주었다.
꼬물이와 말랑이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지금도 외할머니만 오면 서로 같이 놀려고 경쟁한다.
"내가, 내가 먼저~~~~!" 하면서.
엄마인 내가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을 주느라 허둥지둥 바쁜 동안, 외할머니인 우리 엄마는 옆에서 '아이들이 원하는 것,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실컷 주었다.
우리 엄마는 종종 아이들에게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중에 아이들이 특히 재밌어하는 이야기는 외할머니의 어린 시절인 옛날 옛적 이야기, 그리고 엄마인 내 어린 시절 이야기이다.
“뭐라고? 할머니 어릴 때는 아이스크림을 일 년에 한 번 밖에 못 먹었다고!!? 뭐?? 고기도?”
“진짜? 엄마 어릴 때 맨날 이모 놀리고 그랬다고? 우리한테는 싸운다고 잔소리하면서! 깔깔깔~~~“
외할머니에게만 들을 수 있는 엄마의 흑역사까지~
또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 주는 주는 것을 좋아하고 잘하는 우리 엄마는 선생님이 아마 천직일 듯. 숙제 체크도 잘 안 하는 나 대신 아이들 받아쓰기, 글자 쓰기 연습도 시키고, 구구단도 가르쳐 주었다. 주산 연습도 하고 어려운 수학 문제도 같이 풀어준다.
공부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외할머니 덕분에 꼬물이도 말랑이도 조금씩 앉아서 공부하는 습관을 들일 수 있었다.
'아이고 세상에~ 이렇게 잘하는 애들은 처음 봤다!'
'다른 애들은 다 그저 그렇던데~ 우리 알라들이 제일 예쁘다니까' 이러면서 무조건 최고란다.
평범한 우리 아이들이지만 할머니 눈에 만큼은 세상에서 제일 똘똘하고 예뻐 보이는 것이다.
나는 엄마에게 아이들 외모나 성과를 칭찬해주지 말고, 노력이나 과정을 칭찬해 주라고 말하긴 하지만 뭐 할머니니까 저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내심 생각한다.
엄마인 나에게도 엄마가 있다는 사실.
엄마인 내가 아직도 누군가의 딸일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나게 큰 위안과 현실적 도움이다. 고래랑 코끼리들처럼 우리 사람들에게도 외할머니는 무리에서 꼭 필요한 정신적 지주같은 존재이다.
특.히. 나처럼 어른이 되어서도 아직도 ’손이 너무 많이 가는‘ 경우에는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