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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탈희 May 12. 2024

11. 아직도 그만두지 못했습니다.

비혼주의 공무원, 생존

7급이 된 지 2년 넘어서야 세전 연봉이 4천만 원을 넘었다.

온갖 수당을 다 더해도 1달에 100만 원 초반남짓 받던 때와 비교해 보면 이제야 숨통이 트였다.

하지만 물가는 고공행진이라 숨만 쉬어도 나가는 지출은 더 증가했다.


부모님을 모시고 병원 갈 때 경차를 끌고 장거리 운전하기엔 불편해서 준중형차로 바꾸다 보니 매달 할부로 50만 원이 나가고


얼마 전 월세 아파트를 재계약하면서 보증금과 월세가 올라갔다.


올해 봄은 무슨 일인지 결혼 소식이 많아서 4월에는 매주 주말 지인의 결혼식이 있었고 물가상승만큼 축의금 기준도 높아져 지출이 훨씬 더 늘었다.


외식 비용과 옷을 구입하는 비용은 줄였지만,

건강을 위한 지출은 늘었다.

건강보조식품, 기능성 화장품 등...


아무튼, 살아내기 위해 돈은 필요하고 돈을 벌기 위해 싫어도 좋아도 직장을 다녀야 하기에

그만두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면서도 조용히 직장을 잘 다니고 있다.


서른 중반, 스펙이라곤 공무원 경력 8년.

중고신입으로 더 나은 직장을 잡기엔 애매해져 버린 상태.


그러니까 이젠 그만두고 무언가를 새로 시작할 힘도 없이 무기력한 상태로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다.


자꾸만 불평해 봐야 달라지지 않는 현실 속에서 속으로 절망을 삭혀가며 하루를 보내고 또 보낸다.


그런 나에게 결혼은 사치다.


혹자는 육아휴직, 자녀양육을 위한 특별휴가 등 혜택이 많아서 안정적으로 육아를 할 수 있는데, 공무원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지 않으면 어떡하냐 말한다.

특히 부부공무원이면 좋지 않냐고, 둘이 합치면 경제적으로도 좋고 나중에 퇴직하고 연금 받으며 여유롭게 살 수 있지 않냐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일단, 내가 행복하지 않고 무기력한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것은 나 자신과 상대방(배우자)에게 더 많은 부담과 고통을 주는 일일뿐이다.


쥐꼬리 월급에서 벗어나 이제야 숨통이 트였는데,


결혼을 해서

빚을 만들어 갚아나가고,

더 많은 가사노동을 하고,

더 많은 인간관계를 겪어내며,

불만 가득한 직장생활의 고단함을 견디라는 건 너무 가혹하게 느껴졌다.


집안에 물려받을 재산이 있었다면,

자취비용이 나가지 않았다면,

내가 좀 더 허리띠 졸라매고 아꼈다면

지금쯤 더 여유가 있었으려나.


가난한 사람은 공무원이 돼서도 가난하다.

그래도 욕심을 버리면 큰 걱정은 없이 근근이 먹고살 순 있으니 감사해야 하나.


내 선택에 아직도 후회하고 한탄한다.


어쩔 수 없었다고, 과거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했을 거라고, 내 나름대로 합리화해 보지만


서울에서 친구들을 만날 때면 한없이 초라해지고 절망한다.


'넌 그때 디자이너 되려고 엄청 노력했잖아, 근데 공무원이 될 줄은 몰랐어. 정말 의외였어.'


'주변에 디자이너로 일하는 분들 보니까, 힘들긴 해도 좋아하는 일을 하니까 행복해 보이던데. 넌 왜 갑자기 공무원을 했어? 그 직업이 너랑 맞아?'


'왜 지방으로 간 거야? 차라리 서울직 공무원이 되지. 대학 때 지인들과 다 소식 끊기고... 왜 촌구석에서 그런 고생을 참아내며 산 거야?'



질문에 최선을 다해 답해보지만 다 비겁한 핑계일 뿐이다.


어려운 집안형편에 서울에서 대학도 겨우 졸업했는데

스펙을 쌓느라 더 많은 투자비용이 드는 게 겁났고

비정규직으로 살다가 마흔쯤에 무직이 되는 건 아닐까 싶어 겁났다.


그러니까 결국 돈 때문에 도전을 포기했고

돈 때문에 지방에서의 안정적인 삶을 꿈꿨지만


여전히 돈은 없고, 그렇다고 직장이 주는 만족감은 더더욱 없었다.


그만두고 새로운 도전을 하자니 이젠 뭘 해야 할지 모르겠고, 늙고 병들어가는 부모님을 두고 훌쩍 떠날 수도 없다.


여기서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퇴근 후에 혼자 멍하니 연예프로그램과 드라마를 보며 잠시 현실의 고통을 잊는 것뿐이다.






좋은 배우자를 만나면 삶이 달라질까?

아니면 연애라도 하면 행복할까?



우선 내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면, 좋은 사람을 기대하는 것은 욕심이라 생각한다.


돈 많은 상대방을 만나 팔자 피려는 생각은 결국 자신의 욕심에 눈이 멀어 어리석은 선택을 할 확률을 높이기에 그럴 생각도 없다.


비슷한 조건과 형편의 사람을 만난 다하더라도

자녀 없이 살면 모를까... 양가 부모님을 챙겨드리며 녹록지 않은 삶을 견디기엔 힘들 것 같다.


작년에 우리 지역에서는 공공기관 미혼남녀 만남을 기획하여 신청을 받았는데


여직원은 아무도 신청하지 않았고

신청한 남자직원 2명은

모두가 인정하는 문제 있는 사람들이었다.


몇년 전에도 그런 프로그램이 있었고

그 당시 20대 신규여직원들이 뭣도 모르고 참여했다가 후회했다며

다시는 신청 안 한다는 증언을 들었다.


이런 얘기를 꺼내면 분명 넌 얼마나 잘났길래, 남자를 평가하냐.. 시집 못 간 너도 문제 있는 주제에... 등등 비난을 받겠지만,


남녀 갈등을 떠나서


누가 봐도

업무능력이 현저히 낮고 게으른 사람

행실이 불량하고 매일 술자리를 즐기는 사람

의사소통이 안 되는 4차원

자기 관리를 안 해서 냄새나는 사람 등등...


같은 남자도 기피하는 남직원이 꽤 많다.


물론 반대로 연애상대로 기피하는 여직원들도 많지만.




아는 선배가 소개팅을 주선했지만 거절했다.


이젠 나에게 순서가 오는 상대방들은

모든 여자들이 거절하고 남은 사람들이기에

소개팅도 포기했다.


나를 좋아한다며 고백해 온 남자직원이 있었다.

알고 보니 성범죄로 물의를 일으켰다가

피해 여성이 합의해 주어 운 좋게 공직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는 사람이었다.


내가 어디 사는 지를 알아내는 건 너무도 쉬웠고,

본인도 그 아파트로 이사 갈 거라며 주변에 떠들어댔었다.

내 주변 남자직원들에게 나를 좋아한다며 소문을 내고 내 신상과 정보에 대해 계속 캐묻고 다녔다.


같이 밥 먹자는 것도 거절했고

뜬금없이 보내는 메시지도 단답으로 거절했다.


고백을 하길래 만날 마음 없다고 정중히 거절했는데, 마음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겠다나 뭐라나.


무섭고 힘들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이 누군가에겐 폭력이 될 수 있음을 몸소 경험했다.


나의 거절을 거절로 받아들이지 않고

기다리겠다며 계속해서 피 말리게 했다.


인사팀에 고충을 얘기했으나

분리조치가 없었고

젊은 청년들의 엇갈리는 연애사 정도로 취급했다.


그 이후 그 남자직원은 내게 거절당한 게 분했는지

나를 이상한 여자로 몰아서 소문을 냈다.


하지만, 난 그 사람이 또 성범죄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단 걸 알았고.. 알아서 망할 거라고 호언장담했다.


여성의 거절을 거절로 인정하지 않는 남성은 성관계에 있어서도 상대의 거절을 받아들이지 않을 확률이 높다.


아니나 다를까, 다른 성폭행 사건으로 기소되었고 혐의가 인정되어 파면되었다.


그 사건은 트라우마가 되어

내가 좋다고 나타나는 남자는 의심부터 하게 된다.




내가 더 건강하고 긍정적이며

예뻐질 자신이 없다면,

더 열심히 아끼고 돈을 모아서 결혼자금을 만들 자신이 없다면,

좋은 남자를 만날 꿈은 버리는 게 맞다.

양심상 그게 맞다.


정말 예뻤던 나의 20대는

인구 3만이 안 되는 작은 촌구석에서 무참히 짓밟혔고 이제 서른 중반의 나이가 되었다.


또래 남자직원들은 20대 후반의 여직원을 만나 결혼하고 있고


연상의 남자직원은 이제 막 40대로 접어든,

일명 언니들도 꺼리는 아저씨들만 남았다.


나를 만나줄 사람도 없고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도 없으니.

이렇게  많은 노처녀 중 한 명이 되고 있다.




쥐꼬리 월급이어도 혼자 벌어서 혼자 쓰고

부모님께 용돈도 마음대로 드리며

노화를 거슬러보고자 피부관리도 받고

저녁엔 좋아하는 TV프로그램을 보면서

가끔 취미로 이것저것 배우며 사는 것도 나쁘진 않은 것 같다.


싫어도 관두지 못하는 직장생활을 견디기도 벅찬데

더 많은 사건사고가 생기면 더 머리가 터질 것 같아서 그냥, 연애도 싫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꿈 따위 버린 지 오래다.


어느 날은 이렇게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잘 살고 있는 공무원부부를 보면 부럽고


혼자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과거를 후회하며 우울함에 빠져 허우적대다가도

사고 싶었던 화장품을 하나 사고 나면

이 맛에 돈을 벌지 싶은... 금융치료로 잠시나마 우울함이 낫기도 한다.


사실

비혼을 택한 건

무엇보다


혹시나 이직을 할 때

걸리는 게 없어야 하기 때문 아닐까.


만약 사업을 하게 된다면

그래서 망했을 때

나 혼자 망하는 거면 그래도 괜찮을 거 같으니까.


주저앉은 상태이면서도

이직을 꿈꾸는 아이러니한 상태.


현실을 받아들이고 순응하며 살고 있는 듯싶지만

현실을 벗어나고픈 욕망은 여전히 꿈틀대는 상태.



비혼주의 공무원으로

생존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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