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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 May 03. 2023

과언무환

1

생각은 많지만, 말 수는 적다. 흔히들 말하는 '내향형' 인간이다. 요즘말로는 MBTI의 'I'형 인간이다. 그래서 사람들과 어울릴 때는 주로 듣는 역할을 자청한다. 대부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 머릿속이 꽉 차 있는 나에게, 또 다른 정보가 들어온다는 것은 제법 견디기 힘든 일이다. 필요한 정보만 머릿속에 남기고, 나머지는 버리는 일련의 과정을 반복한다.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결국에는 다 거기서 거기다. 새로울 것이 없다. 삶을 가까이서 듣는다는 것은 제법 비극이다.




2

과언무환(寡言無患). 말이 적으면 근심이 없다는 의미다. 그러나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자신의 비밀, 심지어는 타인의 비밀까지도 말하지 못해 안달복달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터놓은 비밀이 자신의 약점이 될지 모르는 일임에도, 입이 근질거리는 듯하다. 아무렇지 않게 자랑을 늘어 놓거나, 신세를 한탄한다. 말을 하지 말고 살아가라는 소리가 아니다. 말을 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다만 한 번쯤, 자신이 내뱉는 말의 무게를 생각해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불필요한 문장이 많아질수록 글이 무의미해지듯, 불필요한 말이 많아질수록 언어의 무게는 가벼워진다.


중학생 시절, 친구들만큼이나 선생님과도 터울 없이 지냈다. 영어 수업 시간, '선생님은 재밌는데, 수업은 참 지루한 거 같아요'. 나의 한마디. 선생님을 골려주기 위한 가벼운 농담이었다. 그러나 영어선생님은 직후, 영어 과목을 그만두게 된다. 진로 상담 교사로 전직하셨다는 이야기를 얼핏 전해 들었을 뿐이다. 말은 곧 업(業)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말하지 못해 후회했던 순간보다, 잘못 내지른 말로 인해 후회하는 경우가 많았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듯, 그 말의 무게를 생각하면 함부로 휘두를 수 없는 것이다. 나의 말 수가 적은 이유다. 내가 침묵 속의 고요함을 선호하는 까닭이다.




3

불교에는 업보(業報)라는 말이 있다. 자신이 무심코 내뱉은 말. 자신이 저지른 일련의 행동들. 모든 것은 업이 된다. 나태함, 죄의식, 촌철살인. 입 밖으로 내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 없듯, 한번 쌓인 업은 사라지는 일이 없다. 단지 사건들로부터 하염없이 멀어질 뿐이다. 그렇게, 오래된 과업들이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힌다. 우주가 팽창하며, 별과 별 사이가 보이지도 않을 만큼 멀어지듯, 그럼에도 업은 끊어지지 않는 얇은 실로 이어져 흘러간다. 스님이 묵언수행을 하는 이유, 업을 쌓지 않기 위함이기도 하다.


문장의 호흡을 짧게 가져가려 노력한다. 문장이 길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나의 글은 인간미없이 차갑게 비치기도 한다. 사실은 한 마디나마 업을 내려놓고 가기 위한 내 나름대로의 장치다. 발악이다. 따라서, 지극히 인간적인 문체이자 내가 남기는 인향(人香)이다.


그녀의 옷차림에까지 신경이 무뎌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내가 무슨 업보처럼 죽을 때까지 단일 색조의 털을 덮어쓰고 살아가는 짐승의 일원이 된 것 같은 생각이 얼핏 들었기 때문이었다.

김원우, 짐승의 시간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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