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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 May 14. 2023

낮춤의 미학

1

학창 시절엔 제법 승부욕이 강했다. 자존심 때문이다. 당구를 치든, 게임을 하든, 공부를 하든 그 기준을 남에게 두었기에 언제나 만족하지 못했다. 자존심 부려서 잘 된 기억이 있었나 떠올려보면, 그렇지 않았다. 마음이 조급해지고, 끝내 타인에게 상처를 준 기억뿐이라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마음속의 울타리가 높은 사람은 그 안에 다른 이들이 드나드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일종의 방어기제다.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더 높은 탑을 쌓고, 자신을 허용하지 않는 철옹성이 된다. 반면 자신을 낮추고 낮추는 사람은, 이내 그 울타리마저 허물어지기 마련이다. 드나듦이 자유롭다. 그 넓은 들판이 모두 나의 것이자, 곧 길이 된다. 누구나 자신의 정원에서 마음껏 뛰어놀게 내버려 둔다. 마음껏 즈려밟게 둔다.




2

울타리를 낮추는 건, 자존심을 버리거나 자신에게 상처 주는 일이 아니다. 자신을 만만하게 보거나, 함부로 대한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것은 낮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정 울타리를 낮추거나 허문 사람에게는, 낮추었다거나 허물었다는 자각조차 없다. 비교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그곳엔 높고 낮음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에게서도, 타인에게서도 자유롭다. 머리 위에 사람을 두지 않고, 발밑에 사람을 두지 않는다. '넌 자존심도 없냐'는 말을 듣는다 하더라도, 자존심 상하는 일이 없다.


울타리를 허물었다 해서 삶에 의욕이 떨어지거나 자존감이 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은 이전보다 명백히 삶을 바라볼 수 있다. 타인과의 관계에 목을 매었다면, 현재는 그렇지 않다. 모든 행위에 자유롭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당구를 칠 때, 남을 이기기 위해서 혹은 기록을 내기 위해서 치는 것이 아닌 말 그대로 당구를 치기 위해 당구를 친다. 마찬가지로 일을 하기 위해 일을 하고, 밥을 먹기 위해 밥을 먹는다. 모든 행위가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된다. 이처럼 삶의 민낯을 보면, 삶이 담백해진다. 가벼워진다.


내 안의 울타리가 허물어졌던 시점이 정확히 언제쯤인지 인식하지는 못한다. 스스로 내 안의 울타리를 허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울타리를 낮춘 것은 나였지만, 허문 것은 내가 아니다. 어느 순간 그것이 허물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경계 없음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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