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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 Jun 07. 2023

길티 플레져


1

길티 플레져란 죄악을 뜻하는 길티(Guilty)와 기쁨을 뜻하는 플레져(Pleasure)가 합성된 신조어다. 어떤 일을 행할 때 죄책감이나 죄의식을 느끼면서, 동시에 쾌락과 즐거움을 얻는 현상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배덕감이다. 타인과 차마 공유하기 힘든, 지극히 개인적이고 은밀한 욕망이다.


내가 피카레스크 작품을 선호하는 이유도 일종의 길티 플레져와 같다. 정의나 선악이라는 관념이 얼마나 흐물흐물한 것인지 보여주는 작품에 쉽게 동화된다. 자신의 욕망에 거짓이 없는 피카레스크적 태도야말로 시대를 관통하는 삶의 지혜는 아닐까 생각한다. 겁에 질려 사는 편이 더욱 위험하다는 말이다. 배는 선착장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지만, 그것은 배의 존재 이유가 아닌 것이다. 그러나 선뜻 사람들 앞에 카라바조나 폴란스키의 작품을 좋아한다고 말하기란 어렵다. 피카레스크적 삶의 태도를 동경하면서도,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현실. 그 괴리야말로 길티 플레져 그 자체다. 그리고 나는 제법 이것을 즐긴다.


요즘은 작품보다 작가의 도덕성이 부각되는 듯하다. 작가에게 논란이 터지면 작품도 함께 매몰된다. 말 그대로 순장이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하는 격언이 있다. 힘든 일이다. 죄를 저지르는 것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은 미워하되 작품은 미워하지 않을 수 있다. 작품에는 아무런 죄가 없기에 용서할 것도 없다. 도덕적이나 윤리적으로 논란이 많은 작품을 아무렇지 않게 감상하는 이유다.




2

혼자 있는 시간이 오면 어김없이 우울이 나를 덮친다. 우울이란 파도에 저항 없이 휩쓸린다. 파도를 빠져나오기 위해 발버둥 칠수록 더욱 깊이 빠지게 된다. 그래서 요즘엔 온몸에 힘을 빼고, 그저 흘러가게 몸을 맡기는 편이다. 아무런 방어기제 없이, 우울이 침식하도록 둔다. 우울을 즐기는 나의 음침한 길티 플레져다. 글을 쓰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창작의 원천이 된다. 글로서 승화한다. 우울을 길티 플레져 삼아 자신의 은밀한 욕망을 실현한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 날 홀연히 떠나버리고 만다.


길티 플레져는 타인의 이해를 요구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이해가 아닌 수용의 영역이다. 사람마다 제각기 다른 길티 플레져를 가지는 이유다. 나의 우울은 불행이 아니다. 때문에 우울을 호소하지 않는다. 나의 삶은 더할 나위 없이 완전하다. 그것엔 아무런 문제가 없기에, 누군가의 위로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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