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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L Jan 19. 2024

영어 원서_ 우리를 살게 하는 것

『Hello Beautiful』by Ann Napolitano

 * 스포일러 / 내용 발설 주의 *

전체적으로 줄거리를 언급하면서 쓴 리뷰입니다만, 기본적으로 스포일러를 선호하지 않아 모호하게 표현된 부분이 많습니다.


출시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 goodread에서 심심찮게 인기를 끌고 있는 걸 보았던 차에 오바마 독서 리스트에 오른 걸 보고는 읽기 시작한 영어원서다. 기본적으로 줄거리보다는 대략적인 인상에 관해서만 리뷰를 쓰려고 하는 편인데 이 소설은 주인공의 한 생애를 넓게 다루고 있어 어떤 부분을 딱 집어내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다. 그래서 조금은 주절주절 줄거리를 읊어가며 스포일러가 될 만한 부분을 언급하면서 정리하려고 하므로, 스포일러에 예민한 분이라면 읽지 않으시길 바란다.


보통 내가 책을 읽을 때는 나의 호불호나 그 내용을 통해서 알고 깨닫게 되는 점들이나 그런 것들에 집중해서 항상 뭐든 할 말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 책은 뭐랄까 한 인생을 함께 살아낸 느낌에 가까웠다. 위에서도 살짝 언급했듯 실제로 작품에서는 주인공 윌리엄이 아기였던 때부터 중노년에 이르기까지의 긴 시간을 담고 있다. 굉장히 충격적인 사건들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담담하게 묘사되어 있어 감정이 격렬해지기보다는 읽는 내내 차분한 느낌이 들었다. 아마 자신의 감정을 살피지 않고 스스로를 억누르고 억제하는 윌리엄의 관점이 많이 녹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는 주요 인물 몇 명의 관점을 오가면서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전반적인 문체가 상당히 담담하고 차분하다. 하지만 일어나는 사건들은 그렇게 잔잔한 것들이 아니다. 모든 사건이 어떤 면에서는 상당히 극적일 수밖에 없는데, 그 모든 것을 엄청나게 극적으로 만들다기보다는 인생의 한 부분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가듯 연출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Photo by Eagan Hsu on Unsplash


방치된 채 자란 윌리엄의 인생에 들어온 파다바노 가족

부모에게 애정과 돌봄을 받지 못하고 방치된 채 부모가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삶을 산 윌리엄이 줄리아를 만나고 그 가족들(파다바노家)과 얽히면서 잔잔하고 음울했던 윌리엄의 삶이 자신의 뜻과 다르게 변해가는 내용을 담고 있다.


마치 작은 아씨들을 떠올리게 하는, 각각 다른 성격을 가진 파다바노 가의 네 자매들과 파다바노가의 몽상가 아빠 찰리, 그리고 시니컬한 엄마 로즈는 언뜻 이상적인 가족을 이루는 듯 보이면서도 어느 가족이 그러하듯 내밀한 문제가 가족 구성원들 사이사이에 흩어져 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건강한 가정을 이루어 서로에게 애정을 주고받으며 지낸다. 그런 가족 사이에 윌리엄은 새로운 일원으로 합류한다.


단 하나 확실한 것은 이 이야기가 얼마나 비극적이고 비도덕적이고 꼬여있는가 와는 별도로 파다바노 가의 자매들이 이를 축복으로 이끌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이다. 결과가 좋으니까 다 괜찮다는 식이 아니라, 어려운 상황 속에서 계속해서 함께 하고 화합하고 화해하고 어울리려고 노력한다. 그런 파다바노 가의 일원이 된 윌리엄의 삶은 눈에 잘 띄진 않지만, 놀랍게도 극적으로 변화한다.


윌리엄을 살게 한 사람들, 그들에게 받은 윌리엄의 두 번째 삶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추구하기보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다가 가족이 된 주변의 기대를 충족하기 위해서 살면서 고통받던 윌리엄이 결국 그 삶을 포기하려 했을 때, 윌리엄도 모르는 사이에 그의 주변에 모여든 사람들이(윌리엄의 친구, 농구를 함께 한 동료들, 파다바노가의 자매들) 윌리엄을 구한다. 윌리엄은 그제야 자신이 살아갈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리고 자신의 인생은 자기 모습 그대로 살아야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의 삶을 산다.


윌리엄은 부모가 없었고, 친구도 없었다. 정확히는 자기 주변에 있는 친구들을 보지 못했다. 주변 사람들에게서 거리를 두고 자신의 마음을 내보이지 않았다. 결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하고 얻은 가족들에게도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않았다. 그들의 기대에 맞춰 살았다. 윌리엄은 결혼을 했지만 여전히 혼자였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세상에서 작별하고자 다짐했던 그때에 자신에게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찾아왔다. 그때부터 윌리엄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대로의 윌리엄을 받아들여주는 실비의 존재가 윌리엄을 살게 했다.


Photo by Jon Tyson on Unsplash


나 다운 삶을 찾아가는 여정


100% 개인의 욕망이란 건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에게는 환상이지만, 단순히 주변의 평가와 가치를 그대로 답습할 때 우리는 쉽게 길을 잃는다. 윌리엄은 내가 원하는 걸 하는 삶을 상상하지 못했고, 줄리아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몰랐다. 흥미롭게도 실비를 비롯한 파다바노 가의 동생들은 어렸을 때부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며 나름의 행복을 찾는다. 자신의 의지가 확고했던 동생들은 어린 나이에 다양한 편견에 부딪치고 고난을 겪지만 그래도 자신의 길을 간다. 둘의 이야기가 자세히 나오지 않아 아쉬운 부분이 없잖아 있지만 (메인 플롯과 상당히 동떨어진 이야기가 되었을 테지만) 이야기 속에서 가장 진취적이고 꼿꼿한 모습을 보이는 건 이 어린 두 자매들일 것이다.


주변의 시선, 주변의 기대, 사회적 편견, 사회적 평가…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어쩔 수 없이 환경의 영향을 받아 스스로를 검열한다. 사회 속에서 나의 중심을 확고히 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게 윌리엄과 줄리아는 자신이 원하는 것, 자신이 성취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없다고 믿으며, 혹은 전혀 모른 채로 만났다. 아주 복잡하게 뒤얽힌 긴 여정을 통해서야 둘은 겨우 자신의 길을 찾는다.


막장 전개? 그래도 가슴 울리는 이야기


정확한 줄거리를 상당히 생략했지만, 상당히 막장스러운 전개가 있어서 당혹스러운 부분이 있다. 그리고 어떤 큰 사건 하나에 집중해서 짧은 시간을 묘사하는 내용이 아니기 때문에 지지부진하고 따분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각각의 사건이나 내용보다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워낙 강렬해서 『Hello Beautiful』은 나에게 상당히 인상적인 작품으로 남았다. 내가 상당히 감상적인 사람이어서 그렇겠지만, 나는 지금도 윌리엄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슬퍼서라기보다는 힘든 과거를 거쳐 좋은 사람들 속에서 자신의 삶을 찾은 그의 삶이 뭔가 가슴을 찡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다. 그런 면에서 작가가 어쩌면 당혹스러운 사건들을 묘사하면서도 이토록 강하게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는 점이 놀라웠다.


Photo by Shane Rounce on Unsplash


사람이 사람을 살게 하는 이야기, 사람이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이야기


『Hello Beautiful』에서 재미있는 사실은 줄리아와 결혼을 했지만 윌리엄은 결국 실비로 인해 자신의 인생을 되찾고, 더 크게는 파다바노 가 전체를 얻었다는 점이다. 파다바노 가족들 그리고 친구들이 윌리엄을 살렸고 살게 했다. 홀로 남겨진 삶도, 결국은 사람이 구한다. 사람이 사람을 살게 한다. 윌리엄의 일생을 그리며, 작가는 그 이야기를 하고 있다. 결국 우리의 삶 속에 들어온 사람들이 우리 자신을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그냥 나 자신의 모습 그대로 있어도 된다고 이야기해 줌으로써 우리를 살게 한다고.


윌리엄과 파다바노가와 갈등을 겪고 관계를 끊어냈던 줄리아도 결국 나름의 용서를 하고 관계를 회복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작은 행복을 누린다. 또한, 윌리엄과 파다바노가에게 가장 큰 응어리 중 하나였던 앨리스(책을 읽으면 누구인지 알게 될 인물)도 마지막에 한 걸음 가족 안으로 들어오면서 이들의 희망적인 미래를 암시한다. 그렇게 모두가 이어지고 관계를 맺는 것이 사람을 살게 한다고 『Hello Beautiful』은 모든 등장인물들을 삶을 통해 내내 그렇게 이야기한다.


소제목 그대로다. 나는 이 이야기를 사람이 사람을 살리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이야기라고. 그리고 사람과의 관계, 사랑만이 진정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 살게 한다는 메시지를, 그리고 작가의 인간에 대한 놀라운 사랑을 읽는 내내 듬뿍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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