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잔 샤키야 《지극히 사적인 네팔》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네팔에서 '나마스테'를 인사로 사용한다는 것조차 몰랐다. 요가를 하면서 '나마스테'를 자주 들었지만 인도식 인사라고 생각했고, 네팔에 대한 나의 이미지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아주 어렴풋하게 동남아시아의 인도와 비슷한 어떤 곳으로 여기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이 책을 읽게 된 건 혹독한 독서에서 조금 머리를 식히는 가벼운 책을 읽고자 하는 마음에서였다. 네팔이란 나라에 대해서 알아가는 게 내 안의 무언가를 바꿀 거라는 기대는 별로 없었다. 하지만 이 책은 그 어떤 책보다 크게 내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
너무나도 먼 네팔
아마 많은 사람들이 네팔을 잘 모를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 익숙한 동남아시아 국가는 관광지로 각광받는 베트남이나 태국 아닐까? 네팔은 수잔의 말대로 '히말라야' 외에는 엄청나게 관광지로 인기가 있거나 우리나라와 교류가 많은 국가는 아니다. 그래서 아주 낯선 나라를 구경하러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발을 내딛은 미지의 세계에는 정말로 다른 삶이 있었다. 완전히 다른 문화가 있었다. 종교적 색채가 상당히 옅은 편인 우리나라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풍경이 이어졌다.
자연과 동물에 대한 존중
무엇보다 내 마음을 헤집어 놓은 것은 자연과 동물에 대한 네팔의 태도였다. 급격하게 물질 사회로 발전해온 한국에서 자연은 뭐랄까 보호해야 하는 것이라고 배웠을 뿐 어떤 면에서는 삶과 동떨어진 어떤 것으로 여겨지는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한다. 가끔 대자연을 마주하면 압도되거나 아름답다고 여김에도 불구하고, 자연은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희생할 수 있는 것으로 여기는 풍조가 강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네팔에서 자연은 신이 깃들어 있는 장소로 신성하게 여겨진다. 단순히 '장소'라기 보단 어떤 의미에서 '인격체'처럼 여긴다. 밟고 올라설 때도 양해를 구하고 감사히 여기고 존중하는 태도에서 나는 이제껏 느끼지 못한 경이로움을 느꼈다. 그리고 그런 태도는 단순히 눈에 띄는 큰 거대한 자연(히말라야나 백두산, 한라산 등)만이 아니라 사물이나 동물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모든 것에 신이 깃들어있다고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태도지만, 그런 마음가짐을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나에게는 그렇게 모든 것을 존중할 수 있는 태도가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수잔이 말했듯이 어쩌면 그러한 점이 네팔 사람들이 순수한 모습을 간직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가까이 다가가서 살피면 보이는 맥락들
멀리서 흘끗 쳐다보았을 때는 그저 개발이 덜 된 곳이라거나 미신을 믿는다거나 현대사회, 과학적 사고, 최첨단 문명과 먼, 비과학적인, 어떤 것이 부족한 곳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현대 사회는 너무나 경제적이고 물질적인 가치를 기준으로 삼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그 가치를 과대 평가한다. 하지만 이렇게 당사자가 내어준 내밀한 부분에 가까이 다가가서 들여다보면 그 곳에는 다른 가치와 맥락이 있다. 어떤 면에서 비이성적이라고 여겨지는 것들도 이제껏 그 나름의 이유가 있었기에 지켜지고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모든 것을 지켜나가야 한다거나 그 모든 것이 좋다, 나쁘다는 가치 평가가 따라올 수 있다는 말이 아니다. 그저 그러한 배경과 맥락을 충분히 알아야만 어떤 사회를 이해할 수 있고, 그렇게 이해해야만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서 고민할 수 있다.
수잔의 말대로 이 책 한 권이 네팔에 대한 모든 것을 다 말해줄 수는 없다. 하지만 《지극히 사적인 네팔》이 알려준 것은 아주 크다. 이 지구 상에 내가 전혀 알지 못했던 삶의 방식과 사고 방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들은 맥락없이 바깥의 기준으로 함부로 평가할 수 없다는 것. 어떤 삶에서든 그 나름의 지혜가 있다. 그 지혜를 이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배웠다.
수잔의 말마따나 현재로선 문제가 되는 전통도 있고 현대 사회에 맞추기엔 지나치게 복잡하고 의미가 없는 관습들도 많다. 그것은 네팔에게 남겨진 숙제일 것이다. 네팔이 어떤 나라로 변해갈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여러가지 문제와 어려움 속에서도 만물을 존중하는 태도만큼은 잃지 않기를 바라게 된다. 나마스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