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 한국인이 독학 일본어로 일본에 와서 영어를 공부하는 생활
지금의 내 생활을 거칠게 요약한다면 제목과 같을 것이다.
매일 영어 원서를 읽고 올해 초 스페인어를 듀오링고로 시작했고 일본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친다. 이렇게 한 줄로 적어놓으니 소위 말하는 '갓생'을 사는 사람처럼 느껴지지만 그렇지만도 않다. 영어를 유창하게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일본어로 말할 때면 언제나 어휘의 부족함에 말을 더듬기가 일쑤다. 그러니 다시 한번 제목을 보자. 언어는 나에게 '공부'나 '능력'이 아니라 '취미'다. 그러니까 이제는 '잘' 하겠다는 욕심은 가벼워졌고 어떤 즐거움을 위해서 하는 부분이 있다.
과거의 나에게 영어 원서 읽기가 취미가 되어서 매일 영어 원서를 읽는다고 말했다면 나는 절대로 믿지 않았을 것이다. 많은 한국인들이 영어 공부에 대해서는 다들 고유한 자신만의 이야기들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나는 영어에 끔찍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고 내 평생 영어로 된 문장을 서슴없이 읽거나 쓰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나는 일본어를 훨씬 더 편하게 여겼다.
내 학창 시절은 일본 문화가 팔 할을 차지했다. 일본어는 영어에 비해서 한국어와 비슷한 점이 많았고 훨씬 친숙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무엇보다 잘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 일본어를 나와 더 가깝게 만들어주었던 것 같다. 그렇게 단순히 친밀함에서 시작되었던 내 일본어에 대한 여정이 일본 생활로 이어질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하지만 생각하고 마음먹기보다 행동하는 것으로 그 막연한 개념을 현실로 만들었다. 당연히 일본에서 영어 공부를 본격적으로 하게 되리라는 기대가 있었을 리 만무하다.
일본에서 어찌어찌 여기저기 굴러다니다 보니 해외 생활에서 본토의 언어만큼 영어라는 언어가 중요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지금 돌아봐도 끔찍해하면서 영어 공부를 시작했고 정말 많이 좌절하고 괴로워했다. 그런데 어떻게 이제는 영어 원서를 읽는 사람이 되었다. 처음엔 당연히 공부 목적으로 의무처럼 시작했던 일인데 이제는 즐거움을 찾는 행위가 되었고 매달 영어 원서 한 권 읽기를 목표로 천천히, 하지만 꾸준하게 매일 읽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이렇게 축약해서 쓰면 그 사이의 번뇌와 고통이 보이지 않지만 오랜 시간이 걸렸고 많은 굴곡이 있었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지금은 유학 경험은 커녕 여행으로도 영어를 쓰는 국가에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사람이 한국도 아닌 일본에서 혼자 공부해서 영어를 터득해서 영어 원서 독서를 취미로 가진 사람이 되었다.
어느 정도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상태에서 세 번째 언어로 영어를 공부하면서 나는 영어나 일본어가 아닌 '언어' 자체에 대한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한국어와 일본어만 할 줄 알 때는 단순히 한국어와 일본어의 비슷하고 다른 특징들이 재미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내가 그 두 가지 언어 밖에 몰라서 그랬던 것이었다. 한국어, 일본어와는 전혀 결이 다른 영어를 공부하면서 내가 이제껏 한국어와 일본어에 대해서 재미있다고 생각했던 점은 그 두 언어의 특유의 무언가가 아니라 언어 자체가 가진 특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단순히 소통하는 도구로서가 아니라 언어라는 흥미로운 시스템을 알아가는 즐거움을 깨달았다. 그러고 나니 자연스럽게 다양한 언어와 함께 하는 생활이 자리 잡았다.
원래도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언어 공부를 위한 다른 어떤 매체보다 책의 정제된 표현들을 내 속도로 하나하나 확인해 가며 정확하게 읽을 수 있다는 점이 내가 책을 계속 붙잡고 있게 만들었다. 그렇게 내 오랜 독서라는 취미는 영어 공부와 함께 영어 원서 읽기로 확대되었고, 일본어를 더듬거릴 때면 일문 원서 책을 집어 들게 만들었다.
이렇게 글로 써놓으면 번듯하고 그럴싸한 취미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의 언어 실력이 대단하다고 할 수는 없다. 나는 실력을 키우기 위해서 라기 보단 그 언어로 쓰여진 어떤 이야기를 읽기 위해서, 그리고 그 이야기를 표현하는 언어를 눈으로 하나하나 집어 가는 것을 좋아할 뿐이다. 외국어를 읽을 때는 항상 머릿속으로 모국어인 한국어로는 이런 표현이 되겠다, 한국어의 이런 표현이 영어에서는 이런 식이 되는구나! 재미있다! 를 수없이 반복한다. 그러니까 그런 재미를 이야기 하려고 한다. 점수나 유창함으로 보여지는 실력이 아니라 그냥 그 언어의 아름다움, 언어 자체에 대한 흥미로움과 더불어 책을 통해 들여다본 놀라운 세상에 대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