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덜트 원서『A Good Girl's Guide to Murder』
나는 미스터리, 범죄, 추리물을 상당히 좋아하는 편이라 원서를 읽을 때도 추리물에 상당히 마음이 동하는 편이다. 『A Good Girl's Guide to Murder여고생 핍의 사건 파일』은 좋은 평점으로 계속해서 마주치는 작품이었기에 읽기 시작했다.
A Good Girl's Guide to Murder 여고생 핍의 사건 파일 시리즈
이 작품은 『A Good Girl's Guide to Murder여고생 핍의 사건 파일』을 포함해 총 4권 시리즈로 구성된 작품이다. 정확히는 『A Good Girl's Guide to Murder여고생 핍의 사건 파일』을 시작으로 2권의 속편이 있고, 한 권은 외전 격이다. 시간 순으로는 외전인 『Kill Joy』가 가장 앞서지만 전체 내용과 얽히는 부분이 없기 때문에 언제 읽어도 별로 상관은 없고 다른 책들은 『A Good Girl's Guide to Murder여고생 핍의 사건 파일』, 『Good Girl, Bad Blood굿 걸, 배드 블러드』, 『As Good As Dead누가 제이슨 벨을 죽였나』 순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나는 현재 『Kill Joy』와 함께 『Good Girl, Bad Blood굿 걸, 배드 블러드』까지 읽은 상황인데 『Good Girl, Bad Blood굿 걸, 배드 블러드』를 읽고 나서 작가가 전체 시리즈 전체 틀을 꼼꼼히 짜고, 한 권에 들어갈 이야기도 세심하게 배분했다는 것이 느껴졌다. 1권에서 여러 가지 떡밥들을 여기저기 뿌려두는데 그것이 적당히 호기심을 자극하면서도 당장 해당 서사에는 큰 방해를 주지 않을 정도로 적절하고, 그 실마리는 다른 시리즈에서 회수해서 풀어낸다.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모범생 소녀
『A Good Girl's Guide to Murder여고생 핍의 사건 파일』은 이미 지나간 예전의 살인과 그에 이어진 범인의 자살에 이르는 사건을 모범생 소녀가 풀어가려고 시도하면서, 점점 자신이 알고 있던 것과는 다른 이야기들을 마주하면서 사건의 진실에 가까이 다가가는 이야기다. 이 작품은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당사자를 어린 소녀, 그것도 모범생 소녀로 두면서 전형적인 추리 소설의 모습에 변주를 주었다는 점이 소설의 중심을 이룬다. 하지만 모범생 소녀를 주인공으로 두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전복이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이제껏 미스터리 소설에서 탐정이나 형사들이 그 지위에서 할 수 있는 수사의 범위나 그들이 가진 권력, 그리고 다양한 위험에 맞서는 극적인 액션에서는 멀어진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십 대 소녀가 혼자서 살인사건을 파헤치려고 할 때 과연 무엇을 얼마나 할 수 있을까? 오히려 소녀에 언제 어떤 위험에 처할지 몰라 두려움만 가득한 상황이 이어지지 않을까?
작가는 소녀가 취약한 대상이라는 것을 충분히 이용해 긴장감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모범생으로서 알고 있는 관련 지식을 충분히 활용하는 모범생적인 면모를 보여주기 하고-정보 공개 요청- 모범생 명찰을 내려놓고 위험한 행동을 서슴없이 하도록 풀어놓기도 한다. 정말로 위험한 상황에 놓이기도 하고 충격적인 사건에 휘말리기도 하지만, 그래도 뭐랄까 전체적인 톤은 하이틴 소설의 느낌이 난다. 물론 주인공 피파가 겪는 일들이 가볍다고 여길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적절히 밝은 부분을 유지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건 아마 내가 너무 끔찍한 미스터리 소설을 많이 읽어서 기준이 상당히 왜곡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개인적으로는 이런 표현이 적절할지 모르겠으나 귀여운 하이틴 추리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아마 마무리가 너무나도 깜찍했기 때문에 그런 걸 수도 있으리라. 마지막 부분이야 말로 영어덜트 소설로서의 면모를 마음껏 뽐내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어쩌면 좀 더 진중하고 억제된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금방 언급했듯이 이 마지막 장면이야 말로 이 소설을 영어덜트 소설답게 만드는 부분이 될 것이다.
모범생 소녀의 성장으로 이어지는 시리즈
이 작품은 무엇보다 한 사건을 통해서 피파가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 전반에 숨어 있는 어두운 모습들을 마주하게 되면서 단순히 공부를 잘하고 착한 모범생에서 문제를 마주하고 해결하는 주체적인 모범생으로 탈바꿈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서 내가 내내 귀엽다고 표현하는 것은 어떤 비행이나 모험을 감행함에도 불구하고 피파의 핵심 자아인 '모범생'의 모습을 잃지 않기 때문이다. (피파의 부모님은 동의하지 않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 이야기는 단순히 사건 해결 자체가 아니라, 수사 과정을 통해 여러 사람의 이면의 모습, 그리고 동네 전반에 깔려 있는 어둠들을 인식하게 만들면서 그저 모범생으로 학습에 전념하던 피파가 현실 세계를 마주하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어떤 지점에서 피파는 이전의 공부 잘하고 마냥 착하고 부모님 말씀을 잘 듣던 모습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결국은 모험 강행을 택하고 진실을 마주한다. 이런 역경을 헤치면서 너무 많은 것들을 알게 된 피파는 이제 이전의 모습으로는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어떤 의미로는 변해버린 피파에게 조사 과정을 통해 손에 넣은 의문의 파편들은 외면할 수 없는 것들이 되었다. 이것은 독자뿐만 아니라 피파에게도 풀어야 할 어떤 것으로 수중에 남아 있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속편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고 할 수도 있겠다.
충분히 흥미로운 훌륭한 청소년 오락 추리 소설
위에서도 잠깐 말했지만, 일반적인 추리소설의 피가 온몸에서 빠져나갈 듯한 살벌함을 기대한다면 반드시 실망할 소설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 소설은 청소년 소설(Young Adult Fiction)이고 그에 걸맞게 조금은 가볍고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 결코 숨어 있는 미스터리가 단순하다는 뜻은 아니다. 이야기는 구성은 상당히 체계적이고 꼼꼼하다. 그러니까 미스터리는 충분히 흥미롭지만 이야기의 톤 앤 매너의 적당한 무게로 아주 적절하게 즐거운 오락 추리 소설이다.
무엇보다 영어덜트 소설인만큼 외국어로 영어를 공부하면서 읽기에 적절한 난이도이기 때문에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 첫 영어 원서 읽기를 시도할 때 도전해 봐도 좋을 만한 책이다. 한국어판으로 번역되지 않은 작품인만큼 더 도전의식을 불태울 수 있을 것이다. 한국어판이 없는 소설을 원서로 읽었을 때의 쾌감을 꼭 한번 느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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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goodreads.com/book/show/40916679-a-good-girl-s-guide-to-murd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