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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떰띵두 Jul 13. 2024

하늘을 보는 이유

볼일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문득 저만치에 묻혀있던 친구가 생각났다. 혜진이 그래 혜진이지 싶다.

내 짝사랑의 아픔을 함께 보듬어 주던 친구.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다 느닷없이 생각이 난다.

열열이 사랑하고 절절이 아파하던 그때 휘청거리던 나를 보듬어 주던 친구.

그 친구가 보고 싶다.

동아리 MT를 함께 했던 그해 겨울.

우리는 소백산 정상 바로밑 산행을 풀고 하루를 묵었다.

그날 참 아팠다.

꾹꾹 늘러 담아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던 부풀어 오른 아픔이었다.

그런 그날 그 터지듯 뿜어져 나온 내 아픔을 다 고스란히 담아 주었던 친구.

그 고마운 친구를 내가 잊고 있었다.

그 친구와 어떻게 연이 끊어졌는지도 기억이 없다.

어디서 무얼 하며 지내고 있을지 궁금하고 보고 싶다.

그날 나는 진탕 술을 먹고 꽥꽥 토렴질을 하면서 울었고 그날 밤 그 친구는 내 등을 두드려주며 끝까지 내 곁을 지켜 주었다.

허물거릴 만큼 기운이 빠져 땅바닥에 처박히듯 널브러져 벌러덩 드러누웠을 때에도 그 친구는 함께 벌러덩 누워 주었고 우리는 그렇게 함께 하늘을 보았다.

그리고 그날 나는 내 인생 최고의 밤하늘을 보았다.

소백산 하늘 아래 드러누워 바라본 그 하늘은 놀랍도록 예뻤고 그 반짝이는 수많은 별들이 바로 내 눈앞에 쏟아져 내리듯 반짝거렸다.

하늘이 이처럼 가까운 곳에 있는걸 처음 알았다.

손을 뻗으면 잡을 만큼 가까운 그 거대한 하늘을 마주한 나는 참 좋았다.

너무 좋아 한없이 울었다.

눈가를 지나 귓가로 주루룩주룩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아무리 울어도 그 친구가 옆에 있어 부끄럽지도 이상하지도 무섭지도 외롭지도 않았다.

미친년 널뛰듯 허우적거리는 내 옆을 든든하게 지켜주었던 그 친구 혜진이.

우리는 새까만 밤하늘을 같이 보았다.

그런 멋진 친구를 그날의 밤하늘 마냥 새까맣게 잊고 살다니 내가 정신이 나간 모양이다.

......

혜진이가 몹시 보고 싶다.

'혜진아! 고마워!

잘 지내고 있니?'


그날 술에 취하고 아픔에 취하고 청춘에 취해 정신없었지만 그때 내가 주절거렸던 그 얘기가 생각난다.


'야! 세상이 공평한 게 뭔지 알아?

그건 누구에게나 똑같은 하늘이 있어서야!

그런 하늘을 보고 살면 행복한 거고 그런 하늘을 못 보고 살면 불행한 거거든. 그니까 오늘 여기서 이 멋진 하늘을 보고 있는 너랑 내가 제일 행복한 거지. 참 재미나지 않아?'

혜진이는 그냥 소리 없이 웃기만 했었다.


그 이후 나는 가끔 땅을 베고 누워 하늘을 보았다.

그런데도 그 친구는 까맣게 잊고선 혼자만의 유희를 즐기곤 했다.

아가와 어른. 남과 여. 큰사람과 작은 사람. 부자와 가난한 자. 배운 놈과 못 배운 놈. 잘난 놈과 못난 놈...

그 무엇에도 공평할 수 있는 세상은 바로 이렇게 땅을 베고 누워 하늘을 깊이 보는 것이라 생각하기에 가끔 차별이 느껴지고 자존감이 떨어지고 자존심이 상하고 왜 나만... 이란 생각이 들 때면 나는 어디서든 땅을 베고 누워 하늘을 보았다.

하늘을 깊이 보다 보면 다독여졌다.

나는 참 공평한 세상에 살고 있음을 알게 되고 그 공평한 세상에서 땅을 베고 하늘을 마주한 나는 참 행복한 거란걸 깨닫게 된다.

그렇게 세상을 나름의 특별한 가치를 담아 잘 살아온 것이다.

그 친구를 그날 소백산 까만 밤하늘의 별밭에다 남겨두고서는 말이다.


혜진이도 나처럼 이렇게 가끔 땅을 베고 누워 하늘을 깊이 보고 있을까?

오늘은 하늘깊이 박아둔 별 하나 찾아내어 내 친구 혜진이가 볼 그즈음의 하늘에 가져다 두고 싶다.

내 친구 혜진이!

혹 세상살이에 투덜거리고 있다면 그날의 행복을 다시 떠올릴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혜진아!

나는 꼭 소백산 새까만 밤하늘 다시 한번 보러 가야겠다..

그날 그 밤하늘에 박아 둔 너를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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