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주말 만보 걷기를 하고 있다.
규칙적인 건 아니지만 규칙을 만드려고 애쓰고 있다.
이번 주말에도 우리는 만보 걷기를 하고 있다.
매번 동네 주변을 걷다 오늘은 남편이 그런다.
"우리 내일은 다른 동네 가서 걸어볼까?"
그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에 그러자고 했고 드디어 오늘 우리는 다른 동네를 찾아왔다.
주일이라 차도가 좀 막혔지만 남편과 새로운 곳을 걸어볼 마음에 설레었다.
남편의 선택지는 시장!
국제시장, 깡통시장, 자갈치시장!
그렇게 시장을 빙글빙글 두리번두리번 구석구석 살피면서 구경하듯 걷다 보면 만보가 아니라 이만 보는 걷겠다 한다.
오랜만에 해 보는 시장 구경이다.
먼저 국제시장을 구경해 본다.
아주 오래전 친구들과 한번 구경 왔을 때엔 사람에 떠밀려 다니느라 뭘 본건지도 기억에 없었을 만큼 사람천지였는데 오늘은 사람도 그닥이고 가게도 비어 있는 곳이 꽤 있었다.
결혼 전 남편과도 이곳에서 데이트를 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와도 다른 한산함이 느껴지는 시장분위기였지만 나는 남편과 도란도란 얘기 나누며 걸을 수 있어서 좋았다.
이 골목 저 골목 기웃기웃 거리다 모자 가게에 들러 벙거지 모자를 하나 샀다.
남편은 자기 걸 사려는 듯 가게에 들러서는 결국 내 벙거지 모자만 하나 사게 해서는 나왔다.
그리고 깡통시장으로 넘어가 우리는 땅콩 한 봉지를 샀다.
남편이 회사 직원에게서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아마 전국에서 제일 맛난 땅콩집인듯한데 과연 그러할지 확인해 볼 수 있게 되었다.
까만 봉다리에 담아 걸으며 한 톨 두 톨 먹더니 남편이 말한다.
"다시 가서 한 봉지 더 살까?"
맛있는 모양이다.
나는 대답했다.
"아니 그냥 가자
다음번에 땅콩 사러 다시 오게"
남편도 그래 그거 좋네 담에는 땅콩을 사러 오면 되겠다며 흥겨워한다.
걷다 보니 배가 출출해오고 뭘 먹을까 또 여기저기를 헤집고 걸어본다.
자갈치시장에서 먹어 볼까?
썩 내키지 않던 차에 족발집이 눈에 들어왔다.
남편에게 족발을 먹자고 했더니 먹고프냐고 다시 물어온다.
그렇다 하니 군말 없이 족발가게로 들어선다.
작아 보이던 족발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니 속이 깊어 엄청 크다.
손님도 많아 시끄럽다.
다행히 기다리지 않고 자리를 잡고 족발 한 접시를 시켰다.
기대 없이 들어온 족발집.
웬걸 너무 맛나다.
남편도 나도 대만족이다.
뼈를 야무지게 발라먹는 내 모습이 재미난 지 먹는 내내 남편은 웃는다.
기분 좋게 먹고 나오면서 남편은 말한다.
"우리 애들 데리고 여기 한번 더 오자"
남편은 참 예쁘다. 그걸 새삼 다시 느낀다.
그렇게 부른 배를 소화시키려고 우리는 다시 걸었다.
걷다 발길을 멈추고 앞섰던 나를 불러 세운다.
그리고 만 원 한 장을 달라더니 요상한 물건 하나를 사자고 한다.
뭔가 했더니 할아버지가 팔고 있는 세척제였는데 그것이 안경이나 휴대폰 텔레비전 뭐 이런 것에 묻은 자국을 닦아주고 자국을 안 묻게 한다는 거였다.
30밀리 한 병에 칠천 원이라는데 만원을 드리면서 끼고 있던 선글라스를 한번 닦아주는 서비스에 대만족 하고 돌아선다.
그러자 그 앞에 요구르트 아주머니가 있다.
우리는 요구르트 아주머니에게 냉커피를 한잔 사들고 빨대 하나로 번갈아 가면서 쭉쭉 빨아먹으며 시원함을 나누었다.
얼추 걸었다 하고 만보기를 열어보는데 에게 이게 뭐람 이제 겨우 8천3 백보 조금 지났다.
조금 피곤함이 찾아드는데 아직 만보도 아니라니 집으로 가기엔 좀 부족하다.
그러자 남편이 서둘러 백화점으로 가자고 한다.
좀 시원한 곳에서 마저 채워보잔다.
그거 좋은 생각이다 싶어 서둘러 백화점으로 자리를 옮겼고 거기서 우리는 목적이 없었지만 큰돈을 썼다.
나는 둘째 녀석 옷을 쌌고 남편은 친정 식구들 명절 선물을 주문했다고 한다.
아이 옷을 구입한 나에게 남편은 니꺼는 안 사냐고 물어왔고 그런 남편이 나는 예쁘고, 명절선물을 주문한 남편이 나는 고맙고 기특했다.
그래서 한마디 한다
"당신 마음만큼 예쁜 게 또 있을까 싶다. 하늘! 고마워"
쑥스러운지 한마디 한다.
"뭐라카노! 쓸데없는 소리"
우리는 서로를 보고 환하게 웃었고 기분 좋게 팔짱을 끼고 만보기에 13000보가 넘어선 걸 확인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루가 참 홀가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