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실록 이모저모
중국 사신들이 오면 금강산 구경이 코스였다.
사신 황엄·조천보·고득 등이 금강산을 구경하려고 하다(태종 3년 4월 17일)
조선 초기 전체 군사의 수는 대략 29만명 수준이었다. 16세부터 60세까지의 모든 양인 남성이 군역(軍役)의 의무를 졌는데 평상시에는 농사를 짓거나 생업에 종사하다가, 훈련이나 전쟁 시에 소집되는 예비군에 가까운 형태였다. 태종 3년에 보고된 29만여 명이라는 숫자는, 국가가 유사시에 동원할 수 있는 전체 병력 자원의 규모를 보여주는 것이지, 29만 명의 군인이 매일 훈련하며 상시 대기하고 있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병조에서 군사의 수를 보고하다. 총 296.310명(태종 3년 5월 30일)
조선시대 중국은 조선에 대해 문명국으로서 존중심이 있었던듯 하다. 조선인에 대한 인식이 매우 긍정적이었다. 첫째, 공부를 잘한다고 알려졌다. 태종 1년 2월에 중국 사신이 가져온 황제의 조서엔 이렇게 써있다. "너희 조선은 기자의 가르침을 익혀서, 본래 배우기를 좋아하고 의를 사모하는 것으로 중국에 알려졌고..."
중국의 사신 육옹과 임사영이 조서를 가지고 오다(태종 1년 2월 6일)
둘째, 예의지국으로도 통했다. 태평관 잔치에서 추태를 부린 중국 사신을 다른 사신이 꾸짖으면서 이렇게 말한다. "황제께서 우리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조선은 예의의 나라이니 너희들은 용의(容儀 몸가짐)를 조심하라.’ 하시었다. 그 말씀이 아직도 귀에 쟁쟁한데, 너는 어찌하여 이처럼 간사한 짓을 하는가? 내가 마땅히 황제께 아뢰겠다."
임금이 태평관에서 사신에게 잔치를 베풀다(태종 4년 6월 11일)
셋째, 일도 잘한다는 평판이 있었다. 조선에 환관을 구하러 온 사신이 "오직 조선의 화자(火者)가 명민(明敏)하여 일을 맡겨 부릴 만하다."는 황제의 말을 전했다.
흠차 내사 한첩목아 등이 가져온, 황제가 화자를 구한다는 자문(태종 7년 8월 6일)
조선시대 술은 약으로 통했다. 아프면 술을 먹었다. 금주령에도 아프다고 하면 술을 허용했을 정도다.
경상도 도관찰사 남재에게 궁온을 내리다. 약으로 쓰는 술을 허용하다(태종 3년 윤11월 19일 )
불상이 땀을 흘렸다는 등 불상의 기이한 현상에 대한 기록이 많아 니온다.
왕륜사와 흥국사의 불상이 땀을 흘리다(태종 3년 12월 21일)
전라도 부안현 백련사에서 주조한 불상 관음이 스스로 돌아앉다(태종 12년 11월 4일)
비가 안 오면 기우제를 지내는데 중에게 빌게 하고 무당도 모아서 빌게 했다.
중과 무당을 모아 비를 빌게 하였다(태종 5년 4월 29일)
여무(女巫)를 모아 송악(松岳)과 개성(開城) 대정(大井)에서 비를 빌었다(태종 5년 5월 11일)
쌍둥이를 낳으면 실록에 남겼다.
정당 문학 서균형의 종이 세 쌍둥이를 낳다(태종 4년 5월 5일)
일본에서 원숭이를 종종 보냈다. 코끼리도 보냈는데 사람이 밟혀 죽기도 했다. 믿기진 않지만 사람이 침을 뱉어 코끼리가 노하여 그랬다고 한다.
일본에서 보내온 원숭이를 각 진영에 나누어 주다(태종 10년 5월 17일 )
일본 국왕이 우리 나라에 없는 코끼리를 바치니 사복시에서 기르게 하다(태종 11년 2월 22일 )
전 공조 전서 이우가 코끼리에 밟혀 죽다(태종 12년 12월 10일 )
일본에서 불경을 매우 많이 요청했다. 심지어 불경을 주지 않으면 밥을 먹지 않겠다고 뗑강을 부리기까지 했다.
일본 강주 수 판창만가가 토산물을 바치고, 대반야경》보충을 청하다(태종 10년 5월 13일)
태종실록은 세종시대에 만들어졌다. 그래선지 원래 세자가 아니었던 세종이 왕이 되는 빌드업 기사도 보인다. 원래 세자였던 양념의 무능함과 세종의 총명함을 얘기하는데 세종이 왕이 될 복선으로 충분한 내용이다.
세자가 충녕 대군의 충고를 듣고 부끄러워하다(태종 16년 1월 9일 )
상왕을 모시고 경회루에서 술자리를 베풀다. 충녕 대군의 학문에 감탄하다(태종 16년 7월 18일)
조선시대엔 관료를 1년에 두번 평가하는데 날짜는 6월 15일과 11월 15일이다. 오늘날 공무원 인사 평가도 유사하다. 1년에 두번 하고 날짜는 6월 30일, 12월 31일이다. 공무원의 전통은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것이다.
포폄법에 관한 이조의 건의를 승인하다(태종 16년 1월 12일)
윤돈이라는 사람이 과천 현감에서 교대되어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 수원부사 박강생과 금천 현감 김문이 윤돈을 불러 전별주를 마셨는데 그만 김문이 소주를 많이 마셔 죽어버렸다.
박강생·윤돈을 파직하다. 김문에게 소주를 많이 권하여 죽게한 때문이다(태종 17년 윤5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