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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nke Apr 13. 2024

독에 대해 연구하지 않는 독성학(18)

비극으로부터 배우기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수천 명이 사망하고 질병을 얻었으며,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1994년부터 원인이 밝혀져 사용이 중지된 2011년까지 사망자 2만여 명, 건강피해자 95만여 명으로 추산한 재앙이었다. 가습기 살균제가 시판되던 17년 사이에 아이를 낳아 키운 부모로 아이들에게 가습기를 사용했고 제품명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몇 번은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던 기억이 있다. 다른 나라에서는 일어나지 않은 이런 일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며, 독성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 안타깝다.

 동물실험에서 폐 질환에 대한 독성 실험 결과가 없어 무죄라는 판단했다는 기사를 보고 흥분한 후배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다. 유무죄에 관한 판단은 재판부의 몫이고 범죄 성립에는 의도성, 절차 위반 등에 대한 평가와 법률적 기반에 의해 판단하는 것으로 재판부의 몫이니 평가의 대상은 아니다. 다만, 동물실험에서 재현이 어려울 수 있는 이유와 동물실험 데이터를 인체에 적용할 때 주의해야 하는 사항에 관해 이야기해 주었다. 물질 독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러 독성 자료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지만, 물질의 작용기전, 물리 화학적 특성, 대사 능력, 노출경로, 노출 빈도 등에 대한 다양한 검토와 이에 기반한 적합한 모델 개발이 필요하다. 가습기 살균제의 주요 독성은 세포독성으로 세포막의 기능을 저해해 독성이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습기 살균제가 피부에 묻거나 경구로 극소량에 노출되었을 때는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그런데, 폐에 노출은 다르다 특히, 초음파 방식으로 입자화된 물 분자와 같이 흡입되면, 폐포에 직접 노출이 일어날 수 있고 이로 인해 폐포 교체 주기보다 빨리 죽는 세포가 늘어나면 죽은 세포들이 쌓이고 이로 인해 막이 형성되어 산소 교환이 어렵게 된다. 이 상황이 지속되어 죽은 세포가 쌓이면, 세포의 자살 신호가 강화되며 섬유화가 진행될 수 있다. 특정 수용체에 작용해 나타나는 독성은 증상이 혈중농도에 비례하고 대부분 일과성이다. 이들의 작용 강도는 수용체와의 결합력, 대사 능력, 감수성, 생리적 차이 등에 기인하고 혈중농도와 독성이 비례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와 달리 가습기 살균제의 경우, 전신 작용이 아닌 폐포에 국소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폐포에 이르는 양에 의해 결정된다. 호흡 통로의 특징, 면적대비 용적 등 해부학적 특징에도 영향받으며, 세포 주기와 깊은 관련성을 갖는다. 모든 세포는 일정 주기로 사멸하고 재생하는데 외부 요인에 따라 사멸과 재생 속도가 변할 수 있지만,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게 되면 섬유화가 진행된다. 가습기 살균제와 같은 세포 독성이 강한 물질이 폐 세포에 작용해 세포 재생속도보다 죽는 속도가 빨라지면 죽은 세포가 쌓이고 섬유화가 진행된다. 이런 현상이 피부에서 일어나면 흉터로 남을 수 있고, 장의 융모세포에서 일어나면 복통 설사를 일으킬 수 있다. 피부나 장은 죽은 세포가 씻겨나가며 독성물질이 제거되며 새 세포가 자라지만, 폐는 다르다. 씻어낼 수 없어 죽은 세포를 재흡수하고 재활용한다. 재흡수하고 재활용하는 속도보다 죽는 속도가 빠르면 폐에 위막이 형성되어 산소공급이 어려워지고 지속되면 섬유화 되어 산소교환 능력을 상실한다.

 래트(실험용 쥐)를 이용한 동물실험에서 재현이 잘 되지 않는 이유는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첫째, 같은 농도에서 흡입양이 다르다. 랫트는 사람보다 상대적으로 좁은 흡입경로, 많은 털, 큰 용적 대비 표면적으로 인해 같은 조건에서 페포에 도달하는 가습기 살균제 양이 적을 수밖에 없다. 또한 해부학적 차이로 같은 농도에서 폐포 표면에 노출양이 다르다. 폐가 구체는 아니지만 구체로 가정해 보자, 구체의 부피와 표면적 비는 반지름/3이다, 같은 농도로 존재하고 모두 고르게 표면에 도달한다면 반지름이 클수록 많이 많이 도달한다는 의미이다. 폐의 복잡한 해부학적 구조로 인해 정확한 표면적과 체적의 계산이 어렵지만 용적이 커질수록 불리한 조건으로 작용한다. 둘째, 래트는 사람보다 세포주기가 다르다. 생애 주기가 짧을수록 세포 주기도 짧아 같은 양이 폐포에 도달하더라도 죽은 세포가 빨리 처리되어 막 형성 가능성이 적을 수 있다. 셋째 래트와 사람은 생애주기가 달라 만성독성 데이터 해석과 적용에 편차가 크다.  계산의 편의를 위해 래트는 3년까지 살고 사람의 기대 수명을 대략 90년으로 가정해 보자, 어떤 독성물질이 사람에게 30개월에 일어나는 변화를 관측하기 위해 1개월을 관찰해서 결론을 내는 것이 맞나 아니면 래트에서 30개월을 투약하는 것이 맞을까? 가습기 살균제가 위막을 형성하고 섬유화의 진행과 같은 조직학적 변화는 절대 시간이 필요한 일이니 관찰하려면 30개월을 고려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실험이 끝나기 전에 이미 늙었다. 몇몇은 실험도중 죽었을 것이고, 살아 있는 것이라 해도 독성 때문인지 노화 때문인지 구별이 어렵다. 또한 사람보다 세포교체주기가 빠른 랫트는 사람에서 폐의 섬유화가 나타나는 노출량에서도 나타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래트 모델로 가습기 살균제의 독성을 평가하는 모델은 이러한 이유로 적합하지 않다.

 독성학적 관점에서 가습기 살균제 문제의 핵심은 독성 예측이나 동물실험 재현성이 아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에서만 사용이 허가되었느냐는 세스템에 관한 문제이다. 가습기 살균제의 비극은 독성학적으로 투여 경로가 바뀌었을 때, 어떤 위험이 초래될 수 있는지, 예상되는 위험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전문가적 검토가 부재한 시스템가 상업적 목적과 편리함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구를 막지 못해 생긴 비극이다. 가습기 살균제는 이후에 엄청난 물질 규제 법령과 대책을 만들었지만, 정작 그 어느 나라에서도 허가되지 않은 물질이 허가된 시스템에 대한 깊은 고민보다 독성학자의 시선에서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규제책이 만들어졌다. 이 사건으로 사람들에게는 화학물질에 대한 공포를 증가시켰고, 치약이나 화장품에 사용된 CMIT/MIT는 많은 나라에서 여전히 사용이 허용되어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이에 검출되지 않아야 하는 물질이 되었다. 그저 거북이 보고 놀란 토끼 솥뚜껑 보고 놀라니 솥뚜껑 치운 격이다. 과학적이거나 독성학에 기반하지 않은 정서법에 가깝다. 그러나, 이제까지 알려진 독성은 수 ppm의 가습기 살균제가 경구로 투여되었을 때, 특히나 먹는 것이 아니라 입에 머금다 헹구는 것인데 이것이 무슨 영향이 있을까, 설령 일부 삼킨다고 하더라도 음식물 섭취로 인한 자극, 음식물에 포함된 여러 물질들에 의한 영향을 상회하지 않는 수준이다. 아주 약간 융모 세포 교환에 영향을 주겠지만, 치약의 연마제나 계면활성제도 그 정도 영향은 줄 것이라 CMIT/MIT를 규제는 과학적 근거가 빈약하다. 또 입안에 잠시 노출된 CMIT/MIT가 주는 영향은 가글이 주는 자극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때늦은 감이 있지만, CMIT/MIT가 포함된 상품이든 치약이든 물티슈든 사용한 적이 있어 찜찜한 분들이 있다면 걱정 안 해도 된다. 큰 재앙을 일으킨 물질이니, 어느 날 갑자기 엄청나게 위험한 물질이 되는 것이 아니며, 그 속성은 본래대로 있는 것이다. 법적으로는 그럴 수 있어도 과학적으로는 아니다. 피부에 가습기 살균제가 묻은 부위가 섬유화 되거나, 폐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독성이 극단적으로 과장된 다른 사례는 휘발성유기화합물(VOCs, volatile organic compounds) 생리대 논란이다. 휘발성유기화합물은 숲 속에도 많으며, 냄새가 난다면 대부분 휘발성유기화합물이 있는 것이다. 생리대에 VOC는 아마도 펄프 제조과정, 포장용기, 가장 높게는 사용한 접착제에서 유래되었을 것으로 톨루엔 등 벤젠 화합물류가 있을 수 있지만, 그 양의 노출이 평생 건강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는지는 평가되지 않을 만큼 적다. 이 당시 논리라면 여성은 주유소 근처도 가면 안 된다. 이 해프닝은 생리컵의 수요를 일시적으로라도 늘리는 나름의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지만, 전수조사, 자진 수거, 폐기 등 행정력 낭비와 경제적 손실, 폐기로 인한 환경오염을 불러왔다. 물질의 독성에 대한 평가는 여러 요소가 있지만, 물질이 가지는 독성, 노출량, 노출 빈도, 노출경로와 더불어 지연 독성이 있는지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하고 가능한 실험적으로나 경험적으로 입증되어야 한다. 입증된 결과를 외삽할 때는 과소 평가하는 것도 문제지만 과대평가하는 것도 문제다.

 가습기 살균제는 다른 재난과 달리 눈에 직접 보이지 않지만 국가적 재난이고 비극이다. 이런 비극을 막는 최선의 방법은 여러 나라의 독성 관련 규제를 짜깁기 규제 만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규모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독성학자를 양성하고 이들이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비극을 통해 우리 사회가 제대로 학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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